강남 개발 vs 신도시 개발 | 강남1970

모든 영화에는 부동산이 있다

by 오성범

2012년 발매되어 글로벌 히트를 기록한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보여주듯, 강남은 '한강의 남쪽'이라는 지리적 명칭을 넘어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부의 중심'을 상징하는 단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서울을 대표하는 강남이 개발된 건 불과 5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 부모님 세대에서 서울의 중심은 강북이었죠. 당시만 해도 서울은 종로구·중구·용산구와 같은 구도심을 제외하면 서쪽으로 마포구와 영등포구, 동쪽으로 성북구, 동대문구, 성동구 정도였습니다.


서울이 동쪽보다 서쪽을 중심으로 발달한 이유는 한강의 영향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서쪽 지역의 마포(麻浦), 영등포(永登浦)의 포(浦)는 배가 드나드는 항구를 뜻합니다. 마포, 영등포 지역이 배로 서울을 드나드는 터미널의 역할을 한 것이죠. 터미널은 보통 도시 외곽에 위치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1970년대 댐과 보가 건설되면서 한강에 배가 다닐 수 없게 되고 서울도 계속 확장되면서 마포, 영등포도 이제 서울의 외곽이 아닌 중심이 되었습니다.


최초로 서울에 편입된 강남지역은 영등포구가 최초로 1936년이었고, 강남구는 1963년으로 두 번째입니다. 편입 당시에는 성동구였고 '강남'보다는 '영동'이라고 불렸습니다. 영등포 동쪽 지역이라는 의미였습니다. 서울 확장의 중심축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북쪽에서 남쪽으로 바뀌게 된 것이죠. 1975년 성동구에서 강남구가 분구되고, 1988년 강남구에서 서초구, 송파구가 분구되면서 오늘날의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가 완성됩니다. 오늘날의 강남이 만들어진 건 196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로 볼 수 있겠죠.


1970년대 강남 개발은 당시 군사, 정치, 경제적으로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이었다고 합니다. 우선 군사적으로는 1968년 북한 공작원들이 청와대 습격을 시도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전쟁 시 대피와 방어에 유리한 한강 남쪽이 주목을 받습니다. 정치적으로는 1961년 5·16 군사정변 이후 10년 가까이 장기집권하고 있던 3공화국 정부가 대규모 개발사업을 통해 정치자금을 확보하려 했고, 경제적으로는 마치 신상품을 개발하듯 새로운 지역에 택지를 개발해서 신규 수요를 확보하고 개발이익을 실현하려는 목적이 있었을 것이고요.


그런데 모든 땅에는 대대로 주인이 있잖아요. 주인이 있는 땅을 내 마음대로 개발하려면 그 땅을 사거나 주인의 허락을 받아야 하고요. 땅을 사려면 돈이 필요하고 허락을 받으려면 설득이 필요하죠. 전자를 '수용'이라고 하고 후자를 '환지'라고 합니다. 그런데 당시 정부는 강남 땅을 수용할 재정이 충분하지 않았죠. 그래서 강남 개발은 '토지구획정리사업'이라는 환지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소유권은 그대로 두고 땅만 개발해서 되돌려주는 방식이죠. 물론 농사 짓던 땅을 건물을 지을 수 있는 땅으로 바꿔주는 대신, 토지 일부를 남겨 공사비를 충당하고 이윤을 남길 수 있습니다. 이걸 '체비지(剩余地, surplus land)'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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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강남 개발 (출처: 서울아카이브)


이렇게 새로운 지역이 개발될 때 돈을 버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개발되기 전에 땅을 미리 사두었다가 개발된 이후에 팔아서 차익을 남겨도 되고, 그때까지 기다리기 어렵다면 개발이 된다는 소문을 퍼트린 후 바로 되팔아 차익을 남겨도 되겠죠. 극중 서태곤 국회의원(배우: 유승목)이 전자라면, 복부인 민 마담(배우: 김지수)은 후자에 속합니다. 두 가지 모두 정보가 곧 돈이었던 것이죠.


2000년대 이후 개발된 김포, 파주, 위례 같은 2기 신도시들도 아직 충분히 자리잡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1970년대 강남도 오늘의 강남이 되기까지 많은 고전을 치뤘습니다. 도시로서 제대로 된 기능을 하려면 무엇보다 살만한 집이 있어야 하고, 교통도 편리해야 하고, 시장이나 병원도 있어야 하고, 아이들이 다닐 학교도 있어야 하잖아요. 강남 개발 이전에 고작 3개였던 한강 다리가 강남 개발과 함께 9개로 늘어나는데, 대부분의 다리가 강남 3구로 연결되어 있을 정도입니다. 1974년 강남고속버스터미널이 개통하고, 1977년 경기고 등 강북의 주요 명문고들이 강남으로 이전하는 등 여러 행정적 지원이 있었고요. 신도시 개발이 이렇게 쉽지 않습니다.



<강남 1970>

유하 감독, 2015


호적도 제대로 없는 고아로 넝마주이 생활을 하며 친형제처럼 살던 종대(이민호)와 용기(김래 원). 유일한 안식처였던 무허가촌의 작은 판자집마저 빼앗기게 된다.

종대가 정부 주요 인사와 닿아있는 복부인 민 마담(김지수)과 함께 강남 개발의 이권다툼에 뛰어들면서 두 사람은 정치권까지 개입된 전쟁터 한 가운데에 놓이게 되는데…


"영동 쪽에 땅을 좀 보고 있는데 같이 반지 좀 돌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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