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하 주택의 역사 | 기생충

모든 영화에는 부동산이 있다

by 오성범

서울시민의 약 5%, 그러니까 20만 가구 정도가 지하나 반지하 주택에 살고 있다고 합니다. 1970년대 서울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며 주택난이 시작됐고, 1980년대부터 주택 공급이 역대 정부의 중요한 정책과제가 된지도 어느새 40년이 지났지만 아직 해결되지는 못했습니다. 불과 몇 해 전인 2022년에도 집중호우로 여러 반지하 주택이 침수되었는데 사망 사건까지 발생하면서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기도 했죠.


반지하 주택은 주택난이 극심했던 1970년대에 처음 등장했습니다. 당장 살 집이 없으니 지하실에도 사람이 살 수 있도록 건축법을 완화했습니다. 이전까지 지하실은 주택이 아닌 창고나 방공호로 이용하던 어둡고 습한 공간이었는데, 이곳에도 사람이 살 수 있도록 궁여지책을 낸 것이죠.


반지하 주택은 한국 뿐만 아니라 주택난을 겪는 대도시에서 발생할 수 있는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중국 베이징 역시 1990년대부터 지하 방공호를 주택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허용했습니다. 약 100만 명의 사람들이 이곳에 살고 있는데, 이들을 쥐에 빗대어 '쥐족(라오슈주, 老鼠族)'이라는 비극적인 표현까지 등장했다고 합니다.


영화 <기생충>에서도 서로 다른 두 개의 지하공간이 나오죠. 같은 지하실이지만, 박 사장(배우: 故이선균)의 지하실은 방공호지만 기택(배우: 송강호)의 지하실은 주택입니다. 영화에서 박 사장의 집은 산 아래 언덕에 있죠. 실제로 성북동, 평창동, 한남동, 연희동 같은 고급 단독주택지대는 대부분 산 아래 고지대에 있잖아요. 비가 내리더라도 배수가 잘 되고 침수 걱정이 없습니다. 반면 기택의 집은 배수로보다도 낮은 지하이기 때문에 침수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고요.


10_기생충(4).jpg
10_기생충(2).jpg
영화의 배경인 반지하 집


다른 나라에도 당연히 반지하 시설은 있습니다. 다만 이를 주택으로 이용할 경우에는 채광과 환기를 확보하고 화재에 대비할 수 있도록 요건이 까다롭습니다. 주택으로 이용하지 못하게 하는 경우도 있고요. 한국 역시 2004년 '최저주거기준'이라는 행정규칙을 제정했는데, 최소 주거면적이 3.6평(12㎡)으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12㎡(3m×4m)이면 킹사이즈 침대 2개가 겨우 들어가는 정도의 면적입니다.


최소 주거면적은 2011년 4.2평(14㎡)으로 조금 커지긴 했지만 2025년 현재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일본이나 싱가포르는 최소 주거면적이 한국보다 약 2배 정도 크고, 영국은 3배 정도 크다고 합니다. 면적 외에 채광, 환기 등의 요건도 온도와 습도 등 측정기준을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고요.


최소 주거면적 기준은 주택을 새로 지을 때 건축 설계 및 허가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주거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결코 적지 않습니다. 실제로 서울에 공급된 오피스텔의 전용면적 분포를 살펴보면 최소 주거면적이 포함된 15~20㎡ 이내가 가장 많거든요. 일본이나 싱가포르 수준인 25~30㎡ 이내의 주택은 2/3 수준이고, 영국 수준인 30~35㎡는 1/5 수준으로 적습니다.


한국에서도 최소 주거면적 상향에 대한 입법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면적도 중요하겠지만 집은 단순히 '내 몸 하나 누일 곳'이라는 물리적 공간 이상이지 않을까요? 몸이 차지하는 크기 뿐만 아니라, 몸이 느끼는 온도와 습도까지 고려하는 외국의 성숙한 사고가 부럽습니다.



<기생충>

봉준호 감독, 2019


반지하 주택에 살며 살 길이 막막한 기택(송강호)의 가족은 장남 기우(최우식)가 얻은 과외를 계기로 박 사장(이선균)의 집에서 일하게 됩니다. 아빠 기택은 수행기사, 엄마 충숙은 가사도우미, 딸 기정은 미술 과외를 하며 아슬아슬한 일상을 보냅니다.

그러던 중 기택 가족에 의해 일자리를 뺏긴 가사도우미 문광(이정은)이 찾아오고 숨겨져 있던 지하 공간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사건이 점점 복잡해지는데..


"그거 반지하 냄새야. 이사 가야 없어져."



keyword
오성범 경제 분야 크리에이터 소속 감정평가사 프로필
팔로워 187
이전 02화강남과 강북, 서울과 제주 | 건축학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