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편.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

by 하늘담

불교의 세계관, 우주관을 ‘삼계설’로 보통 설명합니다.

삼계는 욕계, 색계, 무색계를 말하는 것으로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세계를 체계적으로 나눈 것으로 보입니다.

그중에서 ‘욕계’는 물질적인 몸과 정신, 그리고 욕망이 지배하는 세계입니다.

욕계를 다시 나누어 보면 지옥, 아귀, 축생, 인간, 아수라, 천상 세계로 나뉜다고 합니다.

이러한 세계가 실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은 욕망이 지배하는 욕계에 속하는 점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인간이 욕계라는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의 의미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앞에서 살펴보았듯 세상을 인식하는 것은, ‘18계’의 상호작용을 통해서입니다.

’18계’는 ‘안,이,비,설,신,의 색,성,향,미,촉,법 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의식’ 을 말하는 것으로, 그룹별로 묶여 인식작용이 일어납니다.

즉, 안/색/안식, 이/성/이식, 비/향/비식 … 의/법/의식

이러한 18계의 그룹별로 단단히 묶는 도구가 ‘욕망’ 입니다.

즉 우리는 ‘욕망’이 일어나는 것만 보고 듣고 인식할 수 있습니다.

회사에서 집으로 퇴근하면서 각자가 보고 들은 것이 무엇인지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요. 모든 장면과 소리를 들은 게 분명 아닐 겁니다. 본인이 보고자 한 것만 인식한 것임을 경험적으로 알 수 있을 겁니다. 이것이 ‘욕망’이라는 필터의 작용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의 속성으로 누구에게나 괴로움이 필연적으로 만들어집니다.

이처럼 괴로움이 발생하는 이유는 각자 나름의 ‘욕망’이라는 필터로 세상을 바라보고, 욕망에 가려서 세상의 실상을 바로 보지 못하고, 붙잡을 수 없는 것에 대해 집착하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붓다께서 출가한 이유는 인간의 괴로움을 해결하기 위해서입니다.

앞장에서 ‘사성제’중 괴로움과 괴로움의 원인, 괴로움의 소멸의 원리에 대해서 설명한 ‘고성제’ ‘집성제’ ‘멸성제’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이번 장에서는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 ‘도성제’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도성제’는 마음의 훈련을 통해서 각자의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붓다의 가르침입니다.

붓다는 ‘8정도’를 실천하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합니다.

8정도(八正道)는 정견(正見), 정사유(正思惟),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 을 말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각 단어 첫글자에 들어가 있는 정(正)이 의미하는 것인데, 그 의미는 ’중도’를 말하는 것으로 저의 앞장의 글들에서 살펴본 연기법, 무상, 무아 등에 대한 통찰을 바탕으로 한 삶을 살아야 된다는 의미입니다.


‘중도‘란 무슨 의견을 낼 때나 행동을 할 때, 이것도 저것도 아닌 중간자적 입장을 취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지혜와 지식으로 과정 과정에 최선을 다하되 결과에 과도하게 집착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삶은 언제나 그렇듯 원하는데로 이루어 질수도 있고, 안 이루어 질수도 있는 것입니다.

‘중도‘란 좋아하는 것은 취하고 싶어하고, 싫어하는 것은 밀쳐내려는 취사간택하려는 마음을 잠시내려 놓는 것입니다.

나 한테 인연따라 오는 즐거움이든 괴로움이든 화나는 마음이든 밀쳐내지 말고 잠시 함께 있어주는게 ‘중도의 수행‘입니다.

화를 발산하면서 남을 괴롭히지도 않고, 억누르면서 나를 괴롭히지도 말며, 취하거나 버리지 않고 잠시 화를 허용해주는 것입니다.

8정도를 상세히 살펴보면

정견 : 바르게 보기

정사유 : 바르게 생각하기

정어 : 바르게 말하기

정업 : 바르게 행동하기

정명 : 바르게 생활하기

정정진 : 바르게 정진하기

정념 : 바르게 깨어있기

정정 : 바르게 집중하기

​8정도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정견’으로,

‘정견’이란 세상의 실상을 바로 보는 통찰을 말합니다.

즉, 세상의 실상을 바로 보는 지혜인 ‘연기법’을 삶 속에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결국은 ‘연기법’에 대한 통찰을 바탕으로 삶을 살아가면 괴로움이 소멸된다는 이야기입니다.

8정도의 실천은 ‘금욕’이나 ‘억제’가 아니라, 삶을 더 자유롭고 지혜롭게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8정도는 바른 견해를 가지고, 양심에 따르는 삶을 살아야 된다는 붓다의 가르침입니다.

양심을 따라는 삶이 왜 중요할까요?

양심을 이야기하는 이유가 도덕, 윤리를 말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은 결국 각자의 마음이 펼쳐내는 세상입니다.

마음은 생각이 아닙니다.

일상에서 매일매일 하는 생각, 말, 행동의 패턴(업, 카르마)이 저장되어 표출되는 의식의 흐름이 마음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이 창조해 내는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이러한 마음을 누가 속속들이 알까요?

신이 알까요?

우리 각자가 자기의 마음을 잘 알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속일 수는 없겠죠.

겉으로는 선행을 하더라도, 그 속마음이 위선인지 아닌지는 본인 스스로가 제일 잘 알겠죠.

이것이 양심을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

각자 각자 붓다의 지혜로 삶이 좀 더 가벼워 지기를 소망합니다.


PS.

붓다의 연기법을 많이 언급하고 있는데, 연기법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인과율이 아닙니다.

제가 쓴 다른글 ‘파동 위를 걷는 마음‘ 매거진의 ‘인과율은 제대로 작동하는 걸까‘ 편을 꼭 읽어 보시기를 권고 드려요. 그러면 연기법에 대한 이해가 되리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