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월 Oct 12. 2024

부적 같은 내 반지

어른의 글쓰기

1월의 추운 겨울날 꽁꽁 언 손을 녹여가며 하루 온종일 종로 금은방 거리를 돌았다. 그러다 어둑해진 저녁 마지막으로 들어간 자그마한 공방에서 이 녀석을 처음 만났다. 액세서리에는 통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과연 잘 어울리는 반지를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이나 있으려나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내 것은 분명 알아볼 수 있었다. 이거다! 내가 찾던 느낌이 바로 이거였어! 단아하고 깔끔하면서도 개성 있는 매력을 뽐내는 반지. 동양의 어느 신비로운 나라에 살고 있는 공주가 이런 반지를 끼진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불러일으켰다.  


반지를 고르고 안쪽엔 결혼 날짜를 각인하기로 결혼반지가 나오기까지 2달을 기다렸다. 기다리는 내내 어서 받아보고 싶어서 매일 같이 공방에 가서 찍었던 사진을 들여다보며 설레는 나날을 보냈다. 그런 설렘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분에 넘치게 행복했다. 반지를 받고 나면 금방 사그라들 느낌이라 생각했지만 신기하게도 그렇지 않았다. 그 후로도 반지를 보고만 있어도 너무 예쁘고 좋아서 넋을 놓고 반짝임을 눈에 담곤 했으니까. 내 반지가 세상에서 제일 예쁜 것만 같았다.


나로서는 참 희한한 경험이었다. 어려서부터 항상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느낌을 가득 안고 살았었기 때문이다. 이상하리만치 내가 가진 건 항상 초라하게 느껴졌고, 남들 건 멋지고 부럽기만 했었다. 특정한 누가 부러운 것도 아녔다. 그냥 남이 가진 거면 그게 물건이든, 성격이든 가리지 않고 다 부러웠다. 반대로 말하면 내가 가진 건 다 초라하고 못나게 느꼈다는 뜻이겠지. 어쩌면 반지는 내 소유 중 남부럽지 않았던 생애 최초의 '내 것'이었다. 


맞춘 지 3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반지를 보면 여전히 기분이 좋다. 그래서 외롭고 힘들 때면 항상 반지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반지를 찾아 종로 귀금속 거리를 헤매던 그날, 마지막으로 들어갔던 공방에서 이 반지를 만났던 순간, 반지를 기다리며 설레었던 시간, 반지를 받아 들고 금이야 옥이야(진짜 금인데!) 너무 예쁘고 소중해 끼는 것도 아까웠던 시절, 그리고 남편, 약속, 사랑, 가족. 무엇보다도 반지는 내게 항상 이렇게 말한다. 


"잊지 마. 네게는 네가 원하는 걸 발견할 수 있는 힘이 분명히 있어. 너의 느낌을 믿어도 괜찮아!" 


아직도 반지를 낀 손가락의 감각이 낯설다. 특히나 한의원에 있을 때는 환자 한 명을 만날 때마다 손을 씻다 보니 사실 반지를 끼고 있는 게 편치만은 않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집을 나설 때면 항상 반지를 챙긴다. 내게 결혼반지는 용기이자 위로이자 기쁨이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진득하게, 나답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