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 앞에서 발표하고 싶은 주제
언젠가 이런 글을 쓰게 될 날을 고대했던 것 같습니다. 뜸 들이지 않고 발표할게요. 배속에 소중한 생명이 자라고 있어요! 이 글이 발행될 때는 아마도 18주 차를 지나고 있겠네요. 출산까지 완전한 안정기는 없다지만 1, 2차 기형아 검사도 모두 통과했고, 꼬물꼬물 태동도 느낄 수 있을 정도가 되었으니 이제는 소식을 전해도 괜찮다는 마음이 듭니다.
고작 2번의 유산을, 심지어 한 번은 화학적 유산으로 끝났기에 유산으로 치지도 않는다지만 그 과정에서 마음은 온통 불안과 걱정으로 가득했어요. 그래서 이번에 찾아온 아이에게 다시 '기쁨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도 마음 편히 기뻐해본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벌써 미안해서 눈물이 나네요.)
특히나 첫 번째 유산 때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고, 내 몸 안에서 일어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유산됐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 때문에 자괴감에 시달렸어요.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구나. 그런 사람이 어떻게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아기가 죽어도 죽은 줄도 모르는 주제에...'
첫 심장 소리를 들었을 때도 누구 말마따나 너무 행복했다거나 감격의 눈물을 흘리지도 않았습니다. '일단 여기까진 통과구나. 다음 주는 괜찮을까, 이번에도 내가 잘 모르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뿐이었으니까요. 입덧이 생겼을 땐 주치의 선생님께 칭찬도 들었어요. 입덧이 있다니 축하한다고, 정말 건강한 아기임에 틀림없다고요.
걱정되는 마음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고 정신은 딴 데 빼둔 채로 몸만 한의원에 앉아있는 날들이 늘어갔지만, 제 마음이 우습기라도 하다는 듯 기쁨이는 무럭무럭 주수에 맞게 자라주었어요. 병원에 갈 때마다 점점 사람의 형태가 되어가는 기쁨이의 모습을 보며 아기가 오히려 "걱정 좀 그만하시라고요!" 라고 응원을 건네주는 것만 같았습니다.
비로소 안심하기 시작했던 건 13~14주 차 무렵이었던 것 같아요. 초음파를 보러 갈 때 기쁨이가 건강할까 보다도 대체 성별이 뭘까가 더 궁금해지기 시작했으니까요. 뒤돌아보니 한의원도 너무 방치했던 것 같아 사부작사부작 정리도 시작했고요. 은사님께 이제 한의원 망한 것 같다고 걱정을 털어놓았더니 그마저도 반갑다고 하셨어요. "드디어 네게 여력이 생겼구나! 나는 그런 고민마저 너무 반갑다."
이제는 뇌도 예쁘게 생겼고, 척추 뼈도 올곧고, 갈비뼈들도 촘촘히 보인답니다. 손가락, 발가락은 물론이고 팔다리도 점점 길쭉해지고 있어요. 벌써부터 몸도 너무 무겁고, 소화도 안되고, 잠도 푹 잘 수가 없어서 힘들고 지쳤었는데, 이렇게 임신 초기부터 다시 떠올려보니 감회가 새롭고 새삼스레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문우분들께도 소식을 전할 수 있게 되어 진심으로 기쁘고 행복해요. 그간 제가 힘들 때 함께 걱정하고 위로해 주셔서 정말 큰 힘이 됐어요. 어떤 말로도 부족할 만큼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참! 기쁨이는 예쁜 딸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