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질문 하나 마음에 품고

질문 속에 살아가는 삶

by 사월

9월 마지막주 주말, 2018년부터 인연이 되어 꾸준히 공부하고 있는 M&L(Mindfulness&Loving beingness) 학회에서 주최한 한일 공동 심포지엄에 참석하기 위해 멀리 전라남도 장흥에 다녀왔다. 일전에 은사님께서 무엇이든 좋으니 오래도록 한의사로 일하기 위해서는 꾸준히 공부할 수 있는 학회 하나쯤 갖고 있는 게 좋다는 조언을 해주신 적이 있었다. 일하다 보면 일상도, 환자도, 치료 내용도 매일 반복되고 있는 것만 같이 느껴질 때가 많아서 매너리즘에 빠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중심을 잃지 않고, 나름의 보람과 재미를 찾으며 살기 위해서는 나와 마음이 맞는 공부를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과 교류하며 지내는 게 정말 도움이 많이 된다.


누군가에게는 설레고 멋진 경험이었을 첫 번째 직장에서의 기억이 내게는 악몽으로 남고 말았다. 그곳에서 얻은 트라우마로 손떨림과 두근거림, 환자를 향한 두려운 마음과 피해의식 같은 것들이 생기고 말았으니까. 학교를 졸업하고 한의사가 된 지 단 1년 만에 나는 더 이상 한의사로서 살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절망에 빠져 있었다. 바로 그 순간 오로지 이런 나를 치료해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시작한 것이 바로 M&L 심리상담치료 공부였다.


내가 그토록 어린 나이에, 특히 임상을 막 접하기 시작하던 햇병아리 시절에 이런 공부를 할 수 있었음에, 지금은 감사하는 마음이 크다. M&L을 공부하면서 환자를 대하는 기본자세를 배울 수 있었고, 진료실에서 마음가짐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모든 걸 포기해버리려 했던 어린 날의 나를 수렁에서 끌어올려 지금의 나로, 여기까지 올 수 있게 도와준 고맙고도 고마운 공부였다.


처음에는 오로지 내 치료를 위해서, 지금은 전문 세라피스트로 인증을 받기 위한 과정의 일부로 1:1 개인 세라피를 꾸준히 받고 있다. 이번에 심포지엄 참석을 위해 장흥에 내려갔을 때에도 한국에 계신 K교수님과 일본에 계신 Y선생님께서 모두 오셔서 세라피를 받아볼 기회가 있었다.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불안과 주눅 들고 눈치 보는 마음을 테마로 상담을 받았는데, 그 안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철학적인 깊은 대화가 오고 갔다. 정말 소중했던 장흥에서의 기억, 그중 일부를 남겨볼까 한다.


인생은 '나의 작품'

인생이 내 작품이라는 건, 그러니까 나만이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뜻이다. 남이 내 작품에 함부로 손을 댄다면, 그게 과연 진짜 내 작품일까. 사람은 누구나 태어날 때 엄마의 산도를 홀로 지나오고, 죽는 순간에도 혼자서 떠난다. 내 작품에 직접 손댈만한 타인이 존재한다면, 타인의 말에 따라 내 작품의 모양과 색이 달라질 정도라면, 적어도 내가 죽을 때 함께 순장해야 하는 건 아닐까. 그 정도로 중차대한 문제가 아닐까. 그러니 누군가의 말에 내 삶이 흔들릴 정도로 영향을 받고 있다면 멈춰 서서 질문해야 한다. '죽을 때 데리고 갈 거야? 나랑 같이 순장할 사람이야?'


나는 지금 질서 있게 살고 있는가?

순장 질문은 곧 내 삶의 질서를 세우기 위한 첫 단추였다. '삶의 질서' 그 단어가 장흥에서 올라오는 기차에서도, 천안에서 일상으로 돌아온 이후에도 마음속에 콕 박혀 떠나지 않았다. 어쩌면 이리저리 휘둘리며 가장 무질서하게 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지금 질서 있게 살고 있는가?' 살아가는 내내 수도 없이 반복하게 될 것이다. 질문하고 또 답하다 보면 언젠가는 정말 단단한 질서를 지닌 멋진 어른이 되어있지 않을까. 보물 같은 질문 하나가 마음속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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