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이 일기
작년 12월에는 유산 수술을 했다. 올 12월에는 기쁨이를 만난다. 정말로 이런 날이 왔다!
어쩌다 보니 36주 6일 차까지 일을 했고 딱 37주 0일 차 되는 날부터 일을 쉬었다. 그리고 기쁨이는 38주 2일 차에 만나기로 했다. 내게 남은 시간은 열흘 남짓. 그마저도 기쁨이 맞을 준비로 푹 쉬긴 글렀지만 매일 아침 출근하며 미안해하던 마음은 잠시 접어둘 수 있을 것 같아 그것만으로도 좋다.
마지막 퇴근을 하자마자 우리 부부는 뷔페를 다녀왔다. 이제 출산을 하고 나면 이런 곳은 한동안 올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제 어디를 나가도 온통 아기들만 보인다. '몇 개월 정도 됐을까? 저런 유모차를 타면 이런 곳에 올 때 편하구나. 아이고 귀여워라!' 대화 내용도 많이 달라졌다는 게 느껴졌다. "나중에 기쁨이도 뷔페에 처음 가보는 날이 있을 텐데 얼마나 신나 할까?" 출산과 그 이후가 두렵고 걱정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설레고 기대하는 마음을 마음껏 즐기고도 싶다.
출근을 안 하면 가장 해보고 싶었던 건 사실 늘어지게 늦잠을 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비슷한 시간이면 눈이 꼭 떠진다. 그래도 포근한 이불속에서 좀 더 뭉그적 거릴 수 있다는 것, 아침을 여유롭게 챙겨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참 호화롭다.
어떤 날은 급하게 출근을 하면서 뱃속의 기쁨이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기쁨아, 신경도 많이 못썼는데 이렇게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줘서 정말 고마워."
그 순간 매일 바쁘던 엄마의 모습이 오버랩됐다. 어릴 땐 엄마가 전업주부인 친구들이 그렇게 부러웠다. 우리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셨다고 해서 단 한 번도 집에 덩그러니 혼자 남겨진 적은 없었지만 말이다. 항상 외할머니가 우리 남매 곁을 지키며 먹이고, 입히고, 살뜰히도 챙겨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꼭 엄마의 관심까지 욕심을 내던 욕심쟁이 딸이었다. 그래서 머리가 좀 크고부터는 속으로 다짐하곤 했다. '나는 엄마 같은 엄마는 되지 말아야지.'
허겁지겁 출근해 밀린 일처리를 하는데 나도 엄마랑 똑같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엄마가 내게 자주 하던 말, 그 말이 조금은 이해가 됐다. "우리 똑순이 딸, 정말 고마워. 이렇게 알아서 잘하는 딸이 세상에 또 어디 있을까. 정말 정말 고마워." 어느 순간부터는 그 말이 실은 부담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알겠다. 엄마는 정말 미안하고 고마웠을 거다.
당장 2~3개월 뒤쯤만 생각해도 사실 막막하다. 나는 복귀를 해야 하고 다행히도 남편이 육아휴직을 쓸 수 있다지만 그것도 임시방편일 뿐인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껏 살면서 항상 그래왔듯이 또 주어진 상황에 나름대로 적응하게 될 것이다. 복잡한 마음은 잠시 접어두고 당분간은 기쁨이 맞이 준비에 한껏 설레고 들떠 보련다. "기쁨아 행복한 12월을 만들어줘서 정말 고마워. 우리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자!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