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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 Aug 09. 2020

처음 너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워터 릴리스>_ 우리는 그렇게 성장하고 성장했다.

워터 릴리스

가끔 아무도 없는 수영장에서 헤엄치는 꿈을 꾼다. 흔들리는 물살이 반짝이는 빛을 만들어내는 공간에서 자유로이 물살을 가르고 빛과 물이 만들어내는 잔영을 온몸으로 맞이하며 헤엄을 치는 꿈을. 꿈속에서는 아무리 헤엄을 치고 물속 깊은 곳까지 들어가도 숨이 차지 않는다. 이 순간이 영원히 지속되길 바랄 정도로 무한히 자유로워질 뿐이다. 하지만 꿈에서 깨어나 맞닥뜨린 현실은 꿈과는 많이 다르다. 헤엄치고 있는 수영장의 물이 생각보다 차갑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마음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는 몸을 탓하게 되고, 턱까지 차오르는 숨을 내뱉기 위해서는 다리를 볼품없이 내저어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된다. 우리는 그렇게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열망을 품으며 물속에 몸을 던지지만 언제나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는 걸 매번 처음 겪는 일처럼 온몸으로 겪어내야 한다. 누군가는 직접 물속으로 뛰어들고, 누군가는 물속으로 등 떠밀려 뛰어들고, 누군가는 누군가가 물속으로 등 떠밀려 주길 바라면서 너와 나는 평생 마르지 않은 물속을 쉼 없이 헤엄치며 헤맨다. 


“너한테 난 뭐야?”

싱크로나이즈드 선수 ‘플로리안’을 본 순간 ‘마리’는 덜컥 사랑에 빠져버린다.
하지만 ‘플로리안’은 모든 남성들의 선망을 받고, 남자들과 자유로운 관계를 맺는 것처럼 보인다.
‘플로리안’의 모든 것이 알고 싶고, 갖고 싶은 ‘마리’.
한편, ‘마리’의 절친 ‘안나’는 수영부 남학생 ‘프랑수아’와 첫 키스를 하기 위해 노력한다.

처음 느끼는 사랑의 감정!
사랑에 빠지고, 사랑에 눈뜬 소녀들의
올여름, 가장 거침없고 감각적인 드라마가 찾아온다



영화는 싱크로나이즈 대회를 준비하고 있는 어린 선수들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대회를 앞두고 있는 어린 선수들은 들뜬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며 서로의 머리를 매만져주고 화장을 고쳐주고 옷매무새를 다듬어준다. 왁자지껄한 대기실 모습 뒤로 지루한 표정으로 객석에 앉아 있는 마리의 모습이 보인다. 금방이라도 자리를 떠날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던 마리는 싱크로나이즈를 하고 있는 플로리안의 모습에 점점 빠져들게 된다. 금방이라도 떠날듯한 얼굴은 곧 깊이 현혹된 표정으로 변하게 되고 자신도 모르게 기립 박수를 칠 정도로 플로리안에게 첫눈에 반하게 된다. 한편 수건으로 자신의 몸을 가리고 있는 안나는 탈의실에서 사람들이 모두 나갈 때까지 자리에 앉아 기다린다. 뚱뚱한 자신의 알몸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부끄럽기 때문이다. 얼마 뒤 탈의실에 혼자 남게 된 안나는 옷을 갈아입기 시작하는데 갑자기 탈의실 문을 열고 들어온 프랑수아에게 자신의 벗은 몸을 보이고 만다. 안나는 부끄러운 감정을 느끼는 동시에 프랑수아가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이처럼 영화는 처음 누군가에게 관심을 갖게 되는 그 찰나의 순간, 그리하여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게 되는 모습을 디테일한 시선으로 섬세하게 담아낸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세 소녀 플로리안, 마리, 안나는 자신 앞에 나타난 사랑을 각자 다른 태도로 바라본다. 싱크로나이즈 팀의 주장이자 모든 남자들의 선망의 대상인 플로리안은 주변 사람들에게 당당하고 여유 있는 어른스러운 모습을 그려진다. 바나나를 먹는 모습을 보고 무안을 주는 친구의 말을 여유 있게 웃어넘기거나 공개적인 장소에게 프랑수아와 스킨십을 나누는 등 표면적인 모습에서의 그는 나이에 비해 성숙한 신체와 남자들과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 이미 사랑이라는 걸 다 알고 있는 애어른처럼 비친다. 하지만 실상은 영화에 나오는 세 소녀들 중 사랑을 가장 두려워하고 어려워하는 인물이다. 어렸을 때부터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온 플로리안은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 배우기도 전에 어른 흉내 내는 법부터 배우게 된다. 언제나 남자들의 관심 혹은 여자아이들의 시기만을 받아온 플로리안은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를 곁에 두지 못한다. 다른 애들과는 다르게 조용히 자신의 옆을 지켜주는 마리의 모습을 보며 플로리안은 조금씩 솔직한 마음을 말할 수 있는 법을 배우게 되고 자신이 욕망하는 사랑이 무엇인지 깨닫기 시작한다. 플로리안과는 반대로 깡마른 몸을 가지고 있는 마리는 조용하고 내성적인 모습으로 비친다. 아직 2차 성징이 오지 않은 듯한 깡마른 몸에 남들 눈에 튀지 않는 마리는 사랑 앞에 소극적이지 않을까 싶지만 누구보다 자신의 욕망 앞에 충실하게 행동한다. 첫눈에 반한 플로리안과 친해지기 위해 무작정 찾아가 연습하는 모습을 구경하겠다고 하는가 하면 프랑수아와 데이트하는 시간을 기다려주는 등 플로리안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애쓴다. 플로리안과 가까워지는 만큼 플로리안을 향한 마음 또한 커진 마리는 플로리안이 먹다 버린 사과를 베어 먹을 정도로 자신의 욕망에 사로잡혀버린다. 


안나는 마리와는 다른 결로 자신의 사랑을 욕망한다. 우연히 자신의 벗은 몸을 프랑수아에게 보이게 된 후 자신의 모든 처음을 그와 함께 할 수 있길 바란다. 초대받지 않은 파티에 찾아가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려 노력하는가 하면 이웃집 할머니의 반려견을 산책을 시키며 그와 우연을 가장한 만남을 가지려 하기도 한다. 하지만 프랑수아는 안나의 행동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안나는 보다 더 적극적인 행동을 하며 그와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한다. 영화 안에서 가장 성숙한 신체를 가지고 있는 인물인 안나는 신체와는 다르게 가장 어린아이 같은 모습을 보인다. 프랑수아에게 선물하기 위해 목걸이를 훔치는 모습이나 장난감을 받기 위해 해피밀을 사 먹는 등 어린이와 어른 사이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놓여있는 인물처럼 보인다. 영화를 보며 신기했던 건 세 소녀의 모습 속에서 지난날의 내 모습과 현재의 내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만큼 세 인물의 성격과 상황을 세밀하고 입체적으로 그려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무엇보다 십 대 시절을 경험한, 경험하고 있을 여성이라면 세 소녀들이 서로를 바라보는 마음과 시선에 많은 공감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영화를 보면서 가장 반가웠던 부분은 그동안 터부시 되어왔던 십 대 소녀들의 성에 대한 호기심을 가감 없이 그려냈다는 점이었다. 십 대 소녀를 다룬 많은 작품들은 대게 그들이 성을 어떻게 생각하고 바라보는가를 다루기보다는 그들을 성적 대상화하는 시각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어린이와 어른 사이, 미성숙과 성숙의 사이, 성장한 신체와 아직 그와 비례하지 않은 미성숙한 자아에 초점을 맞춰 섹슈얼한 몸을 가졌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난만한 인물로 그리며 그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고 어떤 욕망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하는 이는 극히 드물었다. 마치 바라보고 싶은 시각으로만 소녀가 존재하길 바란다는 듯이. 그렇기에 그동안 수없이 타자화되고 도구화되어온 십 대 소녀의 성에 대한 이야기를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가 정말 그 나이 때의 소녀들이 갖게 되는 고민과 생각을 솔직하고 세밀하게 그려낸 이 영화가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소녀도 능동적으로 누군가를 사랑하고 욕망할 수 있다는 것, 자신의 처음을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경험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처음의 순간은 우리가 매 순간 살아가는 삶처럼 그리 낭만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을 영화는 말해주기도 한다. 


모든 성장은 아프고 버겁다. 마치 사랑을 처음 시작할 때의 마음처럼. 영화 속 세 소녀들도 처음 겪게 되는 사랑에 가슴 뜨거워지기도 혼란스러워하기도 자신의 마음을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흔들리기도 한다.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이라 여겼던 일에 상처를 받기도 하고,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사람 때문에 속상해하기도 하고,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게 되어 충만해지기도 한다. 그리고 이제 만나지 말자며 단호하게 끝냈던 관계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경험을 하기도 하고, 천장을 바라보며 내뱉었던 누군가의 사소한 말 한마디를 평생 가슴에 품게 되기도 한다. 그들은 이제 지지부진하고 몹시도 흔들리게 만들었던 처음을 지나 두 번째, 세 번째 혹은 몇 번째일지도 모를 매일의 처음을 경험하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아직은 물 위에 둥둥 떠 멍한 표정을 지으며 오늘 겪은 상처와 혼란을 감내하기도 힘이 들지만 자신도 모르는 새에 물에 풍덩 빠져버렸던 것처럼 그들은 또다시 기꺼이 물속에서 헤엄치기를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영화 <워터 릴리스>의 리뷰는 영화 시사회 감상 후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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