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학생의 외과병동 실습 일기
2018년, 치열했던 봄날의 일기
2018. 05. 14 월
잠시 잊고 있었다 병동 실습이 힘들다는 것을...
어젯밤 잠을 설치고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서 7시 병동 도착, 한 시간 동안 인계를 듣고 간호사 선생님들을 따라다니다가 점심 식사.
복부 초음파도 관찰하고 채혈, IV(정맥주사), AST(항생제 반응 검사) 등등 기본간호의 많은 부분을 실제로 관찰할 수 있었다.
여긴 중증도가 높은 환자분들도 계셔서
간호사 : 환자분~ 오늘 무슨 수술 하는지 아세요?
환자 : 저 곧 죽어요.
간호사 : (못 들은 척) 무슨 수술 하는지 잘 모르시는구나~
와 같은 대화를 들으며 죽음을 대하는 간호사로서의 바람직한 태도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다.
2018. 05. 15. 화
출근하자마자 인계를 듣고 간호사 선생님들 라운딩 따라다니다가, 10시까지 BST(혈당 검사) 돌고 11시까지 V/S(활력징후 측정) 돈다. 점심을 먹고 물 흐르듯 병동을 흘러 다니다 보면 어느새 퇴근이다.
다만 종종 오랜 병원 생활에 예민해진 환자분들이 계셔 조심을 해야 할 때가 있다.
나 : 환자분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환자 : 왜 자꾸 와서 나를 깨우는 거야!!!
나 : 이것만 하고 갈게요.
환자 : 하지 마!!!
또한 수동 기계로 전체 환자 바이탈(활력징후)을 측정해야 하고 탈의실이 병동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서 계단을 아주 많이 오르락내리락해야 하는 애로사항이 있다.
퇴근길엔 발이 너무 아파서 집까지 걸어오기가 힘들다.
워낙 성인 간호학 과목 자체가 나랑 조금 안 맞는 데다가, 여긴 중증도도 높고 환자분들도 예민하셔서 하루하루가 일 년 같다.
2018. 05. 16. 수
#1.
내 사례연구 대상자분께서 오늘 난동을 부리셨다. 나는 그 옆에 달라붙어서 설득에 최선을 다했으나 새삼 몸보다 마음을 치유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걸 느꼈다.
그나마 환자분께서 다른 사람보단 내 말에 협조적이셨다. 자꾸 수술을 거부하셨는데 그 이유를 들어보니 사연이 안타까웠다. 하지만 의사 선생님께선 강압적인 태도로 환자를 제압하셨고 환자분은 더더욱 격렬하게 반응하기만 할 뿐이었다.
환자분께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퇴원이었지만 의료진은 환자를 끝까지 치료해야 할 의무가 있기에 이를 두고만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수업 시간에 배웠던 윤리적 가치의 충돌이 일어난 것이다.
#2.
그리고 또 다른 환자분께서는 도뇨관을 빼고 화장실을 다녀오면 안 되겠냐며 나를 설득하셨다.
"화장실 안 가셔도 도뇨관으로 소변이 나와요! 원래 도뇨관 삽입하면 자꾸 소변 마려운 느낌이 나는 거예요!"
나의 짧은 의료지식으로 환자분을 한참 설득하였다.
#3.
또 환자 한 분께서는 자는데 자꾸 깨운다며 욕을 하셨다.
"뭐 대단한 거 한다고 와서 날 깨워!!!" 라며 늘 죄 없는 나에게 욕을 한 사발 하시던 환자분...
그래서 나는 방법을 바꿔서 호들갑을 떨기로 했다
"어머 환자분! 아까 혈압 좀 낮았는데 다시 재봐야 해요~ 몸 상태 안 좋아지면 어떡해요! 맥박 꼭 재야 해요 꼭!"
환자분이 귀찮아지신 건지 걱정이 되신 건지 좀 잠잠해졌다.
#4.
발바닥이 너무 아프다. 병동 바닥이 다 무빙워크였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한다. 9시간씩 서 있고 걸어 다니고 뛰어다니는 건 고역이야.
#5.
'수술 전 간호' 중에 제모도 있는데 오늘 신규 간호사 선생님께서 정성스럽게 수술 부위 제모를 하는 동안
나는 내심 쓸데없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간호사가 되어도 저렇게 남 제모를 잘해줄 수 있을까?
2018. 05. 17. 목
오늘의 빅 이벤트는 흉곽 천자를 관찰한 것이다. 외과적 처치를 눈 앞에서 본 건 처음인데 생살을 찢고 파고 꿰매는 것에 조금 놀랐다.
유치도뇨관 삽입도 직접 관찰했는데 간호사 선생님들께서는 어떻게 요도를 한 번에 찾으시는지...
2018. 05. 18. 금
환자분들 중에 미취학 아동이 한 명 있었는데 혈압 한 번 측정하기 위해 애원까지 해야 했다.
"이거 하나도 안 아파! 이거 한 번만 해보자..."
또 어떤 할아버지 환자분께서는 내가 BST(혈당) 측정한다니까 하지 말라면서 나를 때리려고 하셨다.
2018. 05. 21. 월
오늘은 먼저 비위관 삽입하는 걸 관찰했다. 우리가 초롱초롱 쳐다봐서 의사 선생님께서 '해볼래요?' 하셨지만, 너무나 미숙한 햇병아리라서 그저 바라만 보기로 했다.
오늘은 정오 출근 9시 퇴근이었는데 난 병원의 밤이 좋다. 병원에는 밤이 빨리 찾아와서 그 적막이 좋다.
환자 한 분은 Sp02(산소포화도)가 20대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것은 임종이 다가왔다는 뜻이기에 그 환자분 방 앞을 서성이며 계속 지켜보았다. 체인스토크스 (임종 직전의 호흡 양상)를 보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또 환자 한 분은 나보고 실습을 몇 시간 하냐고 물어보셨다. '1000시간이요!'라고 하니까 장난인 줄 아시던데, 진짜 실습 1000시간 해야 간호사 할 수 있답니다.
2018. 05. 23. 수
의사 선생님께서 PICC(말초 삽입형 중심정맥 카테터)랑 PTBD(경피경간 담도 배액술) 드레싱 하시다가 나한테 카트 좀 갖고 와달라고 했다. 드레싱 카트가 바로 옆에 있는데도 너무 당황해서 굳이 밖에서 새 거 가지고 들어갔다.
2018. 05. 24. 목
실습이 다 끝나고 학생들끼리 IV(정맥 주사)를 연습했다. 친구는 내 팔에 성공했는데 나는 친구 팔에 바늘을 찌르는 순간 핏줄이 도망가는 걸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다. 진짜 혈관이 도망갔다니까...
하지만 결국 내 팔의 핏줄도 터져버린 건지, 시간이 지날수록 피멍이 점점 진해지고 있다.
2018. 05. 25. 금
마지막 날이라서 아침 7시부터 정오까지만 근무했다. 막상 또 마지막이라니까 꽤 아쉬웠다.
전날 이브닝 실습이라서 저녁 9시까지 일하고 퇴근했는데, 그러고 나서 바로 데이 실습하려니까 졸려 죽을 것 같았다.
실습 끝나고 바로 학교로 가서 컨퍼런스를 했다. 다행히 큰 지적받지 않고 무사히 마친 뒤 같이 실습한 친구들과 오래간만에 맥주 한 잔 했다.
드디어 험난했던 외과 병동 실습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