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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지붕 B사감 Nov 13. 2023

글 쓰는 마음

읽히고 싶지 않지만, 읽히고 싶은

올해 7월 비가 무척 많이 내리던 시기에 전라도로 여행을 떠났다. 소쇄원에서 오도 가도 못할 정도의 비를 홀딱 맞고 차 안에서 겨우 수습하면서 이동하다가 예상치 않은 메일을 받았다. 브런치 작가 신청이 반려되었다는. 여행을 가기 전 카페에서 작가 신청을 하면서 이런 날이 올 것이라는 생각을 별로 하지 않고 한껏 들뜬 마음으로 써냈던 신청서는 안타깝게도 모시지 못하게 되었다는 메일과 함께 사라졌다.


거센 비를 뚫고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 차 안에서 전에 작성해 두었던 메모를 참조해서 이를 악물고 다시 빈칸을 채워 넣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비장해지고 마음이 급해졌다. 오늘 안에 신청서를 제출해서 최대한 빨리 승인받고 싶다는 생각에 휩싸여 젠장, 괘씸한, 자유롭게 글을 쓰는 공간이라더니...라는 혼잣말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다시 한번 도전한 브런치 작가 신청이 순조롭게 통과되면서 꾸준한 글쓰기가 시작되었다. 마치 작가처럼 매일 짧게나마 글을 끄적이고 부족한 글을 올리고 '좋아요'에 목말라했다.


책이 나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수강하게 된 자서전 쓰기 수업이 또 다른 글쓰기 수업으로 이어졌고 전자책출판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매 단계 굳은 각오와 의지를 다져가며 열중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처음에는 쓸 거리를 찾았지만, 점차 글로 박제해 두고 싶은 순간들이 자연스럽게 포착되기 시작했다.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으면서, 길가에서 스쳐 지나가면서 보게 된 장면에서도 글을 쓰고 싶어지는 뭔가가 보이기도 했다. 그런 날이면 자연스럽게 길이에 상관없이 글을 써서 저장하고 빠져나왔다가 다시 덧붙여 이어 쓰는 식으로 브런치북에 글을 늘려갔다. 그러니깐 매 순간 구체화할 장면을 포착하면서도 흘려보내던 것을 글로 써보는 시간을 가졌을 뿐 새로운 마음가짐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늦여름에 시작하여 가을 문턱에 이르기까지 이어진 전자책 출간 수업은 조촐하게 출판을 기념하며 끝났다. 인터넷 출판사 한 곳에서 이미 책을 찾아볼 수 있었는데 직접 만들어 아마추어 냄새가 풀풀 나는 표지를 발견하는 일은 부끄럽고도 짜릿한 경험이었다. 전자책 출간이라, 실감 나지 않는 현실 속에서도 책 출간 소식을 알리고 싶어졌다. 가족들, 친구들, 글쓰기 수업 선생님.... 사실 이 책을 누가 읽어줄지 싶은 생각에 주저하는 마음이 없지 않았다. 딱 커피 한 잔 값으로 책값을 정하면서도 이것도 너무 부담될 정도로 가치 없는 글을, 디지털 쓰레기를 더한 것은 아닌지 생각이 많아지기도 했다. 하지만 인터넷서점에서 책을 발견하는 순간 바로 공유 버튼을 눌러 모든 단톡방에 간단한 메시지와 함께 공유했다.


약간의 용기가 필요했다. 에세이는 온전히 개인적 실화를 바탕으로 썼으니, 타인에게 보이기 부끄러운 장면이나 감정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가까운 사람들은 읽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강했다. 가족들에게는 책을 사되 읽지는 말라고 부탁하기도 했으니.... 가족방에 있는 엄마는 아직도 책을 출간한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듯하다. 아무런 언급이 없는 것을 보면. 엄마는 평소에도 가족방에서 오가는 사진, 링크, 대화를 대충 몇 개만 이해할 뿐 대충 흐린 눈으로 보고 있다. 누군가 알려주지 않으면, 이북 리더기로 친절하게 보여주지 않으면 이 책의 존재를 알 턱이 없지...


이런 것이 나와버렸네요. 한 번 읽어달라고(사달라고) 졸라봅니다. 커피로 페이백해드릴게요:)

거의 10년간 독서회를 함께하고 있는 친구들에게도 링크와 함께 이런 말을 남겼다. 조금 창피하고 반응이 두려웠지만 평소에 쥐어짜도 없던 애교를 더해서. 그런데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독서회 단체방에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설마, 잘못 보낸 건가? 다시 단체방에 들어가 확인해 봐도 인터넷 서점 링크와 역겨운 살살거림이 섞인 멘트만 떡하니 보였다. 뻔뻔스럽게 자세히 설명하는 글을 덧붙여 다시 보낼지 싶기도 했지만 결국 이미 도달했을 링크와 멘트를 삭제하는 것으로 마음을 정리했다. 그렇게라도 해야지 그들과 다른 대화를 이어 나갈 수 있었다.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대화방은 다시 활성화되었고 평소처럼 잔잔한 일상을 전하거나 다음 북클럽 일정을 전하는 대화가 오갔다.


이 사건(?)의 전말은 밝힐 수 없을 것이다. 마침 그때 통신 오류로 그들에게 전달되지 않았는지, 그들이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려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평소처럼 다른 이의 책을 소개하는 것으로 생각했는지 삐사감은 도저히 나서서 알아볼 수 없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납득할 만한 답이 나오지 않았고 그들과의 관계가 생각보다 소원했던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자 그동안 보였던 자신의 태도에 문제가 있었던 거라는 생각에까지 미쳤다. 그래서 책이 출간되고 며칠간 조금은 찜찜하고 서글픈 기운이 맴돌았다. 본인 스스로 고작 전자책이라며 별일 아닌척했지만, 종이책만큼의 성취감은 없다손 치더라도 뭔가 세상에 출현시켜 결정(結晶)을 보았다는 생각에 괜스레 마음이 부풀기도 했기 때문에 서운함은 배가되었다.


찰나의 순간을 박제!!


출판을 즈음에서 일어난 작은 에피소드로 맘속에 작은 파문이 일다가 이내 침착해졌다. 조금은 침잠되는 시간 속에서 긴 세월 책과 가깝지도 않았던 사람이 글까지 쓰게 된 연유도 생각하게 되었다. 몇 달 동안 조금은 숙제처럼 글을 꾸준히 쓰고 있지만 글쓰기의 동력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글을 쓰지 않던 시간에는 뭘 했지? 아마도 식사 시간에 친구가 되어준 먹방 유튜브를 보다가 끝없이 이어지는 여러 영상을 즐기면서 시간이 흐르는 것을 잊기도 했을 것이다. 몸과 마음 모두 화면 속에 맡긴 채 텅 비운 상태로 빠져들어 있던 시간이 있었다.


멍하니 화면 속만 바라보는 무가치하고 쓸모없는 자기를 갑자기 인식하는 순간이 있었다. 그런 순간이 주는 불쾌함을 자주 느끼고 의식하게 되면서였을까? 돌이켜 생각해 보면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그런 텅 빈 시간은 많이 줄었다. 그리고 책을 정성껏 읽게 되었다. 서너 권의 책을 한꺼번에 읽다가 멈추기를 반복하던 지난날의 독서법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다. 완독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처음만 읽거나 중간에 어느 한 토막만 읽고 중단한 책들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깊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는 것이 없이 패스트푸드나 패스트패션처럼 시간에 따라 흐르다가 사라지는 독서이기도 했다. 다시 읽는 책도 물론 없었다. 책을 끝까지 읽었다고 진정으로 그 책을 자기 나름대로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할 수는 없겠다. 하지만 여러 차례 듣고 밑줄 긋고 생각해 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러면서 그전보다 본인의 시간이 덜 공허해졌다. 비어있는 순간을 글쓰기로 채워가는 일이 생각보다 재미있고 의미 있게 느끼는 동안 읽고 쓰는 일은 계속될 것 같다. 그래도 될 것 같은 기분이다. 그러니 너무 서글퍼지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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