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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지붕 B사감 Apr 03. 2024

언제까지 진로 탐색만 하고 있을 거야


반 장난으로 시작해서 취득한 자격증을 장롱 속에 깊숙이 간직한 채 또 다른 자격증에 도전했다. 이번 목표는 사회복지사 자격증이다. 학점은행을 통해 필요한 과목을 이수하고 정기적 시험, 과제 제출 그리고 100시간 실습으로 자격이 주어졌다.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게 한 문장으로 끝나지만, 정식 학위증을 받기까지 긴 시간과 학비를 충당해야 했다.


매일 학교에 가는 것처럼 노트북을 열어 온라인수업에 출석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성실한 삐사감은 수업 진도율을 100%로 만들었다. 때로는 멍한 상태로 강의 내용을 눈으로만 겨우 따라가기도 했지만, 사회복지에서 다루는 내용이 실생활과 너무나 밀착이라 지루하지 않게 따라갈 수 있었다.

     

본인이 삶이 기본적인 ‘사회적 안전망’이라는 사회복지와 얼마나 연결되어 있는지, 그것의 유무에 따른 생활 변화를 상상하게 되었다. 아울러 이런 정책, 제도가 필요한 이유,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운영되고 있는 모습을 자세히 살피는 과정이었다. 수업 참여, 과제 제출, 시험 등의 과정에서 여전히 해법을 찾아가고 있는 해묵은 문제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많았다. 사회적 논의가 거듭되어도, 다른 나라의 사례를 벤치마킹해도 쉽게 해결되지 않을 질문에 대한 고민의 시간이었다.   

   

주로 온라인으로 만나는 강사와 학생은 생생한 현안을 화두로 자기만의 의견을 개진하고 그에 대한 찬반 토론을 진행했는데 과제 제출이나 시험보다도 바로 지금 우리의 생활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문제를 생각하는 기회가 귀중하게 느껴졌다.


아동복지에 있어서 국가 역할의 범위, 잔혹해지는 청소년 폭력 사건에 대한 처벌 강화의 필요성, 사례별 복지사의 개입 문제 등 흑백으로 완벽하게 가르기 힘든 주제로 토론은 진행되었다. 다른 학생의 의견을 열람하는 것보다 자기의 의견을 조리 있게 개진하는 것이 훨씬 어렵게 느껴졌고 근거를 바탕으로 조목조목 반박하는 답글에 감탄했다.

     

이와 같은 토론에 정해진 답은 없을 것이다. 다른 토론 주제와 달리 사례별로 복지사의 개입이 내담자에게 얼마나 영향을 줄 것인지, ‘봉사’를 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로 고착된 복지사의 진정한 역할을 무엇인지에 관한 토론 주제는 종잡을 수 없이 난해하게 다가왔다. 아무래도 현장에서 직접 경험한 자만이 도출할 수 있는 답변이라고 생각되었다. 무리 없이 학과 과정을 끝내자, 100시간 실습이 남아있었다. 코로나 시국이라 기관에서 현장 실습을 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필수적인 과정이었다.

     

겨우 현장 실습 허가를 받은 곳은 20명 남짓한 어르신이 공동생활을 하는 시설이었는데 생각한 것보다 열악한 환경이었다. 노인요양원의 공기는 탁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냄새로 가득했다. 치매 노인이 대부분이라 기저귀로 대소변을 받거나 대소변이 가능한 어르신도 침상 옆에 통을 비치해 두고 처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주방에서 삼시 세끼를 만들고 있어 온갖 냄새가 섞여 있었다.


하지만 냄새 따위는 이삼일 지나자 곧 익숙해졌고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치매라는 병을 앓고 있는 분들에게 적응하는 것이 더 급하고 중요한 과제였다. 병 질환을 제대로 파악해야 비로소 어르신과 소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지만 단시간에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어르신에 관한 모든 일을 직접 처리하고 대응해야 하는 요양보호사들은 퉁명스럽고 손길이 거칠었다. 노동의 고단함 때문인지 지쳐 보였고 어르신에게 적대적으로 대하는 것도 자주 목격할 수 있었다. 정신이 혼미한 상태의 어르신이 잘 알아듣지 못하고 인지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비아냥대거나 폭언을 퍼붓기도 했다. 그들은 항상 말끝마다 불만과 넋두리를 토해냈다. 외부 강사는 요일마다 각기 다른 프로그램으로 어르신과 다양한 활동을 했다. 약간의 신체활동과 인지 놀이 활동을 통해 조금은 건강한 수용 생활을 도모한 것이리라. 그렇다면 사회복지사의 역할은 무엇이었을까?


기관에 상주한 사회복지사는 건강보험공단 시스템을 운영하는 사무적인 업무 이외에 기관에서 생활하는 어르신과 거의 직접 접촉하지 않았다. 실습 동안 그의 업무가 공교롭게도 서류를 처리하는 일에만 한정되었던 것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 업무는 단조로워 보였고 사무실에서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100시간의 실습은 요양보호사를 돕거나 외부 강사의 수업을 보조하는 것, 그 외에 기관의 청소와 같은 잡다한 업무로 거의 채워졌다. 기관마다 복지사의 역할은 상이하겠지만 이 기관의 복지사는 기관 내 구성원 중 가장 사무적이고 가장 자유로워 보였다. 어르신과 요양보호사의 갈등에서도 항상 멀리서 방관하는 자리에 있었다.

      

실습수업을 시작하면서 담당 교수는 이 자격증이 요즘 국민 자격증이라며 누구나 소지한, 흔하디 흔한 자격증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덧붙이면서 한쪽 주머니엔 운전면허증, 한쪽 주머니엔 사회복지사 자격증이라나! 이 말은 100시간 실습을 앞둔 예비 복지사들을 격려하는 말이었을까, 기죽이는 말이었을까. 공교롭게도 그날 온종일 진행된 대면 강의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 되었다.   




100일 동안 100세를 넘긴 할머니가 돌아가셨고 두 분이 새로 입소했다. 비어있던 할머니의 침상은 다른 사람으로 채워졌다. 평균나이 80세를 넘기는 입소자들은 배회 공간을 서성이거나 방 친구와 대판 싸우거나 삼키지 못할 정도의 빠른 속도로 밥을 입에 구겨 넣다가 식사 자리를 어지럽혔다. 그러다가 장구 선생님이 오면 신명 나게 창을 따라 하고, 공놀이를 하다가 도로 감정이 상해 토라져 버렸다. 기관에서 탈출을 기도했지만, 건널목 앞에서 방향을 잃고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기도 했다. 아동, 청소년, 노인, 장애인, 여성을 흔히 사회복지의 대상자로 본다면 실습 기간을 통해 노인 복지의 단면을 경험한 것이다.

     

여러모로 소진되는 시간이었다. 책으로 공부하는 것과 현장은 살벌하게 다를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상상 그 이상이었고 자신감은 온몸에서 쏙 빠져버렸다. 늙었다고 불행한 것은 아니겠으나 기관에 입소한 어르신은 자기 자신을 잃어가는 불행한 병에 압도되어 있었다. 시간이 흐르는 것을 무력하게 기다리는 그들의 모습을 외면하고 싶어졌다. 누구에게나 찾아올 노화, 그리고 어쩌면 닥칠지도 모르는 치매를 안고 살아가는 노년의 삶은 어떠해야 할지, 이 기관에 있는 어르신의 하루는 최선인지, 막연해서 불안했다. 그리고 이런 기관에서 일하는 모습이 쉽게 그려지지 않았다.     

 

늙어가는 것은 마치 계단을 하나 내려가는 것과 같다는 비유를 본 적이 있다. 신체적 쇠약에 따라 인지적, 정신적 능력도 쇠퇴해 가는 과정을 표현하는 말이었다. 늙어가는 것은 다른 세계로 이동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계단을 내려서려는 순간이란, 익숙했던 세계와 낯설지만, 새로운 세계의 경계에서 어느 쪽도 편하게 느껴지지 않는 순간을 맞이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누구나 내려가야 할 계단, 즉 본인에게도 닥칠 미래라는 것을 아는 만큼 생생한 그 현장이 무서웠다.   

나이가 들고 성숙해졌다고 감정이 마냥 뭉툭해져서 모든 일을 편하게 수용할 수 있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아직 경험하지 못한 모든 곳에서 여전히 미숙했고 세상은 여전히 두려운 곳이었다. 그렇게 실습을 거치며 선명하게 도드라지는 자기를 발견했다. 지금이라도 자기를 찾겠다고 나선 길 위에서, 탐색만으로 끝날 것 같은 위기를 느꼈다. 언제까지 탐색만 하고 있을 거냐는 질책의 목소리가 아우성처럼 들리는 듯했다.


사진: https://instagram.com/js_vfinder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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