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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지붕 B사감 Mar 27. 2024

새롭게 마주한 세계

꽃잎이 팝콘처럼 팡팡 터지면서 겨울의 우중충한 색을 지우기 시작하던 봄날, 생애 첫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학부모총회에서 봉사단 활동에 관해 설명하던 봉사단 대표는 누구보다도 길게 시간을 할애하여 봉사단의 활동을 소개하며 참가를 독려했다. 학생과 부모가 함께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대표의 발언은 군더더기 없이 매끄럽고 유창했다. 딱히 그의 말에 이끌렸다기보다는 왠지 모르게 해보지 않은 일에 대해 강하게 끌리는 마음이 있었다.

        

학부모 봉사단은 매우 열정적이었다. 춥거나 덥거나 계절에 상관없이 적극적인 참여율을 보였다. 그렇게 열심히 한 결과 고학년 부모의 경우에는 200시간 봉사 시간을 달성한 사람들도 꽤 있었다. 봉사단에 대한 이런저런 잡음이 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내부 사정을 모르고 처음 시작하는 마음은 그저 새로운 경험에 들뜨기만 했다. 타인을 위해 자신의 시간을 들여 노동하는 것은, 생각보다 뿌듯한 경험이었다. 시작하고 몇 회 지나지 않았을 때 가슴이 꽉 차게 충만해지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것을 뭐라고 표현할 길이 없었다. 처음으로 이타성을 발휘하면서 자신이 좋은 인격체라도 된 것처럼 당당해졌다고나 할까.

    

외부인의 눈으로 보기에 복지관의 급식당 운영은 기계적이고 사무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사람을 상대하는 업무라 감정이 개입하는 일이었고 복지를 수혜가 아닌 권리 추구로 생각할 수 있도록 수급자를 대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해 보였다. 정식 직원만으로 급식당 사업이 운영되는 것은 아니었다. 대상자를 확인하고 자원봉사 단체를 섭외, 조율하는 것은 복지사가 담당했지만, 그 외 식당 운영 전반과 도시락 배달 등의 업무는 대부분 공공근로, 자원봉사자의 손길이 필요해 보였다.

     

학부모 봉사단도 복지관 급식당에서 배식과 조리, 도시락 배달과 설거지 등을 담당하면서 급식당 운영의 작은 부분을 담당한 것이다. 도시락을 배달하면서 마주치는 사람은 대부분 요양보호사였다. 이미 운신이 불편하여 복지관 식당까지 직접 나오지 못하는 상황이라 집에서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많았고 장애가 있는 자식과 동거하는 예도 많았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복지관에서 일하는 복지사들을 종종 접하게 되었다. 그들은 우리 단체의 봉사활동에 항상 감사의 인사를 전했고 급식장을 찾은 어르신들을 대하는 모습도 친절했다. 그들이 엄청난 박봉에 시달리면서도 힘든 업무를 해나가는 것을, 그 결과로 이직률이 어느 직종보다 높다는 사실을, 언론을 통해 전해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구직과정에서 그 실체를 확인하고 놀라곤 했다.

     

"국민연금은 받을 수 있으려나, 건강보험료는 왜 자꾸 인상되는 거지, 연금 운용은 왜 그렇게 개떡같이 해서 고갈되고 수령 나이가 늦춰지고 하는 거지? 도대체 세금을 어디에 쓰는 거야? "

     

복지라는 말과 함께 자동으로 재생되는 불평불만의 소리, 마음의 소리이다. 성실하게 세금 납부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원천징수 당하고 있는) 국민으로서 아무리 생각해 봐도 복지 혜택이라고는 쥐뿔도 받지 못한다는 불만이 많았다. 더욱이 노후를 위한 전망마저 불투명하다고 생각되니 세금에 대한 저항이 점점 커져 갔다. 하지만 직접 ‘나’에게 혜택이 돌아오지 않는 안전망이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는 불평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잘 보려고 하지 않았던 사실들을 포착할 수 있었다.

    

시어머니는 노령연금을 매월 받아서 용돈으로 충당한다. 충분하단다. 워낙 돈을 허투루 쓰지 않는 기술을 평생 연마한 덕분인지 적은 돈이라도 여윳돈을 수중에 항상 지니고 계신다. 노령연금을 받기 시작한 때부터 해마다 물가 상승에 따라 인상되고 있으니 자식 대신 국가에서 용돈 받는다고 좋아하신다. 작은이모는 몇 년 전 노인복지 주택에 입주했다. 저렴한 임대료를 지불하고 노인에게 최적화된 주거지에 입주해서 남은 생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자식보다 더 알뜰살뜰 안부와 건강 상태를 물어주는 관리소 직원들이 있어서 엄청나게 만족한다는 전언이다.  

    

작은이모부와 작은 엄마는 노인 요양 등급을 받아 요양원에서 생활한다. 치매라는 힘든 병을 함께 할 기관을 잘 찾은 덕에 가족의 부담이 많이 덜었다. 마지막으로 선천적으로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조카들은 여러 가지 교육을 위한 복지 바우처를 활용하고 있다. 나이와 발달 시기에 맞는 적절하고 효과적인 교육을 받기에 턱없이 부족한 지원이지만 교육을 비롯한 다양한 외부 활동을 지원하는 소소한 정책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더불어 직업훈련과 취업 알선을 통한 사회 진출을 돕고 있다고 한다.  

      

조카가 학교에 입학하자 걱정이 태산 같던 가족들은 학교에서의 하루가 어떠했는지 궁금해했다. 장애가 있는 아이, 그 아이를 학교에서 돌보는 선생 간의 극렬한 갈등이 법정 다툼으로 가는 뉴스를 보면서 조마조마한 마음이었지만, 입 밖으로 한마디 꺼내기도 두려웠다. 각자의 처지에서 고충이 있었을 거라는 막연한 짐작이 있을 뿐, 당사자가 아닌 이상 마땅히 보탤 말이 없지 않은가. 온 가족의 관심과 걱정을 알고 있는 아이의 엄마는 아침 등교 장면을 보내주면서 안심시켰다.

     

“교실 문 앞까지 보조교사가 마중을 나와 아이와 함께 교실로 입실한대.”

“와, 복지국가네. 예전하고는 달라.”


엄마에서 선생님으로 보호자가 바뀌는 순간, 마중과 배웅이 교차하는 시간도 이제는 익숙한 일상이 되어갈 것이다. 다수의 아이와 달라서, 그들보다 느리고 굼뜨다는 이유로 배제하던 과거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 아직도 세상은 다수의 편리에 맞게 돌아가고 천천히 자기 속도로 자라는 아이들은 사회의 보폭을 맞추기엔 버겁다. 과거와 달라졌다고 지금 세상이 ‘완전 복지’에 이르렀는지는 의문이다. 단지, 세상에 없는 존재였던 그들이, 잘 보이지 않던 그들이 세상 밖에 나와 활개를 치는 날을, 그들의 행동과 몸짓을 특이하고 생소하게 주시하는 눈길이 없어지고 익숙한 풍경으로 받아들이는 날을 꿈꾼다.

    

주변을 대충 둘러보아도 장애아동을 위한 교육과 취업 지원, 노년의 기초적인 생활을 위한 경제적 지원, 병간호를 돕는 시설에의 수용 등 많은 사회적 장치를 발견할 수 있다. 복지 대상자와 그의 가족은 이런 상황을 미리 예상할 수 있었을까?

    

아이가 태어나면 모두 별 탈 없이 건강하게 일상을 살아갈 것이라고, 노년의 삶도 자력으로 그럭저럭 잘 지나갈 거라는 막연한 미래를 그렸을 것이다. 자기를 잊어가는 무서운 병에 걸려 가족의 무거운 짐이 되거나 자립하기 힘든 선천적 조건을 타고 태어나는 그들은 특별히 운이 좋지 않거나 불행한 사람이 아니다. 어디서나 흔히 우리 곁에 있는 보통의 이웃이다. 조금만 자세히 둘러보면 가까운 가족 중에서도 이렇게 많은 존재가 보인다. 엄연히 현재를 함께 사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너나 할 것 없이 그들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수 세상에서 미처 경험하지 못한 결핍이 찾아오는 날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날을 위해 고르지 못한 기회를 조금이라도 평평하게 만들어보자는 시도가 복지가 아닐지 생각했다.


복지사에 대한 대우가 형편없을지언정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앞으로 현업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기간이 길지 않겠지만 한 번이라도 금전적인 이유를 떠나서 현재 가장 가치 있게 느끼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 현장에서의 고충을 철저하게 알지 못하니 저지를 수 있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자, 무모하지만 우선 자격증부터 또 따볼까.     


사진: https://instagram.com/js_vfinder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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