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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지붕 B사감 Jul 18. 2023

사뭇 달라서, 꽤나 괴로운

  아이고, 어쩌나... 그이 대신 내가 죽었음 딱 좋겠네... 서예반 할머니가 교실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가방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말문을 연다. 우리 반에서 목청이 가장 크고 대화의 8할을 차지하는 할머니다. 아, 오늘도 조용히 글씨 쓰긴 글렀구나! 에어팟을 만지작거리다가 포기한다. 귀에 꽂고 바깥소리를 차단하고 싶지만, 평균 나이 칠순이 넘는 서예반에서 젊은 회원이 들어왔다고 반가워하던 모습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누구의 죽음을 그토록 안타까워했던가. 자신의 목숨과 바꿀 정도로 사랑하고 아끼는 그 누군가는 가족, 아님 오랜 친구라도 되는 걸까.


  놀랍게도 그 주인공은 대기업 총수였다. 삼성공화국이라고 부를 정도로 이 나라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회사의 대표가 식물인간 상태에 빠지자, 온갖 매체들이 앞다투어 그의 건강악화에 따른 기업운영 나아가 국가경제 미치는 영향을 다루었다. 일개 기업과 공동운명체가 되어 자신의 목숨 따위는 쉽게 내던질 수 있다는 할머니의 결연함에 사실, 어이가 없었다. 할머니는 삼성의 찬란한 업적에 주목하지만, 나는 회사를 위대하게 만드는 수많은 노동자의 피땀눈물이 더 부각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할머니가 생각하는 위인이 식물상태에 빠진 날, 교실은 한숨과 탄식으로 가득했고 나는 구석에서 예서체에 집중하느라 진땀을 뺐다.


  이명박이라고 하면 안 되지...
엄마아빠도 맨날 이명박이명박 하는데...

  갓 중학생이 된 아이가 뉴스를 보다가 무심결에 이명박이 어쩌고 저쩌고 말했다. 오랜만에 찾아온 손녀의 말을 듣던 아빠는 근엄한 목소리로, 이명박 대통령이라고 해야지, 한나라의 대통령인데 존칭을 써야지. 아이가 말끝을 흐리자 아빠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그럼 안된다고 다시 한번 주의를 준다. 팔순이 훌쩍 넘은 아빠는 그 세대 남자의 보수성을 가지고 있다. ‘보수’를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아빠는 조선, 동아일보의 논조에 대체로 찬성하고 한겨레, JTBC는 외면한다. 광화문에서 태극기와 미국 국기를 휘두르며 주변의 모든 소리를 압도하는 시위대의 생각을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것이다. 광화문까지 나갈 정도로 적극적이지는 않지만. 하지만 아빠의 원칙은 쉽게 무너지기도 한다. 대통령을 존대해야 한다는 아주 간단한 원칙도 때에 따라 다른 것이다. 예를 들면, 박근혜, 이명박은 대통령이지만 그 외에 별로 맘에 들지 않는 대통령은 호명하지 않는다. 그저 낮은 목소리로 뭐 저런 새끼들이 있냐며 불평할 뿐. 왜 누구는 새끼이며 누구는 대통령이냐고 따지고 싶지만, 맘 약한 아빠가 얼굴을 붉히며 자리를 뜨게 만들고 싶지 않아 참았다.


  일 년여 동안 해서와 예서, 행서 등의 서체를 익히며 즐거웠다. 커다란 붓을 들고 팔꿈치까지 천천히 움직이며 한 글자씩 써 내려가는 순간에 묵향도 은은하게 풍겨서 마음이 차분해졌다. 매번 잘못된 부분을 지적받아 속상했지만 수년간 서예를 해온 선생님이 춤을 추듯 붓을 조율하는 모습에 매혹되곤 했다. 그러나 2015년 세월호 1주기가 되자 더 이상 참기 힘들어졌다. 세월호 사건은 많은 사람-특히 대다수의 피해자와 비슷한 연배의 학생에게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 등의 커다란 후유증을 남겼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아이와 아이의 친구들은 1주기를 맞이하여 노란 리본을 달면서 추모하는 마음을 모았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더 이상 자식의 죽음을 이용하여 시체장사를 하지 말라는 잔혹한 말들을 쏟아냈다. 마치 유족이 나라를 전복시키는 위협적인 존재라는 듯이. 서예반 목청 좋은 할머니는 당시 유명한 시인이 작성했다는 시를 낭송하며 유족을 비난하는 목소리를 한껏 높였다. 모두가 동의하는 분위기였고 나는 그 이후 서예반을 그만두었다.


  한동안 카톡에서 나의 이름은 ‘ㅂㅅㅁ’이었다. 왠지 묘하게 익명성을 보장받고 싶은 생각에 이름의 첫 자음만 따서 표시했다. 줌으로 독서회를 진행하던 어느 날, 회원 중 한 사람이 만면에 웃음을 가뜩 머금고 재밌는 얘기라며 말문을 열었다. 내 이니셜을 보고 본인의 아들이 이 아줌마 ‘박사모’ 냐며 놀라며 물어보았다는. 당시는 한창 탄핵찬반으로 세상이 시끄러웠으므로 중학생 아들이 첫 자음만 보고도 정치인의 지지단체를 떠올린 것이리라. 나는 순간 아찔했다. 어디에서도 정치성향을 밝히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인데 누가 보면 오해할 만한 이니셜을 대문짝 만하게 선전하고 다닌 꼴이 된 것이다.


   우리 가족은 민감한 정치문제에 대해 함구하는 편이다. 서로가 다른 견해를 주고받으면서 불편한 분위기를 만들고싶지 않기 때문이다. 나도 내 귀에 듣기 편하고 내 생각을 더 공고히 해주는 생각과 정보를 차곡차곡 쌓아가는, 이른바 확증편향에 빠져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의 위험성을 감지하면서도 한쪽으로 경도되는 이유는, 사회인이 되고 나서 어이없고 무참한 사건들을 끊임없이 목도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씨랜드, 삼풍, 성수대교, 세월호 그리고 최근에 발생한 이태원참사사건. 모든 사건의 전모가 밝혀질 때마다 인재였다는 사실에 더 분노했다. 불가항력적인 천재지변이었다면 조금 덜 비참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런 사건은 반복되고 이에 대한 반성은 없다. 오히려 피해자를 사회를 혼란하게 만들고 분열과 불안을 조장하는 세력으로 비난하면서 사건을 지우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세월호 1주기에 서예반 교실을 가득 메운 광기에 가깝던 열기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들은 자신의 손자 뻘 되는 아이들이 수장되는 과정에 어른들이 직간접적으로 가담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이 지지하던 정치인을 위협하는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성향에 따라 진위를 왜곡해서는 안 되는 일도 있지 않은지. 나도 그들이 보인 잔인성에 더 지독한 가정을 들어서 되받아치고 싶었다. 당신의 손자가 그 사건의 희생자라도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고. 당신과 당신의 가족도 희생자가 될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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