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비가 많이 왔고 날이 개어가고 있지만 아직 흐리다. 바다가 보이는 창이 예쁜 카페에 와서 앉아 있다. 파도가 계속 와서 부딪치는 바위에 한 무리의 새들이 나란히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고 그 위로 구름 사이에서 삐져나온 햇살이 내리쪼인다. 빠르게 구름이 흐르고 아름다운 순간은 사라진다.
<고슴도치의 우아함>에서는 찰나에서 느끼는 영원에 대한 이야기 나온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예술에서 찾는다. 찰나가 곧 영원처럼 느껴지려면 우리는 과거도 현재 잊을 정도로 압도돼야 한다. 현재에 완벽하게 몰입될 수 있을 정도로 그 순간을 붙들고 싶을 정도로 그 찰나는 아름다워야 하고 그 순간 과거와 미래가 소거된다면 우린 시간성을 벗어난 영원을 느낄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이 그런 영원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까.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연계성을 끊임없이 느끼는 사람들, 그로 인해 고통받으며 과거의 횡포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일상을 살아가는 성실한 사람들만이 영원을 느끼는 찰나가 가져다주는 행복에 압도될 자격이 있다.
연속성을 벗어난다는 것은 인간에게 공포 그 차체다. 이 대열에서 벗어나면 죽을 것 같고 이 삶에 그다지 열정이 없어도 종말의 암시는 언제나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다. 그다지 괜찮아 보이지 않는 삶. 어디 가서 거들먹거릴 수 없는 입장의 초라함. 그것을 견디기 힘든 세월과 나이의 무게. 이 모든 것이 우릴 시간의 연속성에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들고 영원히 구속된 삶을 살게 한다.
<고슴도치의 우아함>의 르네는 자신의 전투력을 감춘 채 전쟁을 피해 영원한 식민지를 선택했고 자살을 선택한 팔로마는 반드시 이기도록 세팅된 전쟁판의 우월한 위치를 경멸하여 무언가에 기여하는 죽음을 꿈꾸고 설계한다. 계속해서 이어지거나 차라리 중단해 버리는 것만이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삶은 이토록 비극적이다. 그 삶에 어떤 틈새도 없었기 때문에 절대 시간을 벗어난 삶을 체험하지 못한다.
삶에 균열을 일으키고 비연속적 삶을 시도하는 사람만이 그 비틀림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고 비로소 성찰이라는 것을 할 수 있다. 현재는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지고 과거의 나는 현재의 나와 분리되며 그때부터 현재의 '나'는 미래의 내가 과거의 나와 다를 것이라는 걸 믿게 된다.
여행은 균열을 일으킨다. 여행자는 일부러 불편을 일부러 두려움을 일부러 낯섦을 찾아다닌다. 편하지 않은데 비용이 들고 만족할 수 없는데 욕망하게 된다. 그리고 그토록 고통스러웠던 나의 일상은 여행이라는 동굴에서 진주가 되고 안식처가 된다. 비싼 값을 치르고 일상의 가치를 다시 사서 돌아오는 것이 여행이다. 균열을 일으키지 않는 삶은 우리를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상태로 만든다. 일상과 똑같은 것을 누리는 여행은 우리의 일상에 균열을 내는데 실패한다. 모르는 사람과의 대화, 예측한 적 없는 만남 그리고 무엇보다도 공포와 불안이 가득한 삶을 우습게 볼 수 있는 용기.
저렇게 짧게 스치는 햇살을 맞으며 부서지는 파도가 끝도 없이 밀려오는 몇 마리의 새들을 바라보며 잠깐 일상을 잊는다. 새들에게 저것은 일상일까. 여행일까. 아마 새들에겐 그런 균열이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새들에겐 예술도 없다.
자신에게 몰입하여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정신적 충만함을 이룬 사람은 필연적으로 고독하다. 그것이 옳을까. 르네는 그걸 자발적 고독이라고 믿었지만 병든 소외임을 사실 알고 있었고 팔로마는 소통할 대상의 부재라고 믿었지만 관계의 가능성을 소거한 어리석음이었다. 인간이 진정으로 사회성을 획득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오직 길들이는 것만이 목적인 교육의 바닥에서 나 역시 절망을 느끼고 그 세계를 닫아버렸지만 자유는 고통이고 고립이기에 등에 칼이 열개 꽂히고 머리 위로 칼비가 내리는 듯한 시간에 속수무책 엎드려 있어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는 것만이 삶의 균열을 일으키는 유일한 길임을 다시 생각해 본다. 문을 닫으면 안전하고 고독하며 문을 열면 위험하고 외롭지 않다. 미끄러지듯 열리며 닫히는 벽이며 동시에 문이 되는 미닫이로 넘나들 수 있어야 관계와 삶은 건강함을 획득한다. 고독하며 동시에 함께하는 것. 고독을 버리지 않으면서 교류하는 것. 이어지며 동시에 닫히는 것만이 건강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행도 그렇기를 바란다. 예술도 그렇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