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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담 Oct 27. 2020

제주도 시골길을 걷다.

2020년 10월 제주도 여행 day3

오늘은 꿈꾸는 섬 게스트 하우스를 떠나 종달리로 이동하는 날이다 조천리에서 종달리로 가려면 201번 버스를 타고 공항 반대편으로 이동하면 된다. 오늘은 걸어서 아침을 먹으러 갔다가 종달리로 갈 예정이라서 조천리의 골목골목을 지나 다시 함덕 해변으로 가는 산책로에 진입했다. 제주도의 어느 시골 마을이나 그렇겠지만 돌담과 옛날 집이 아름답게 어우러진 골목을 지날 때마다 사진을 찍느라 자꾸만 발걸음이 멈췄다.

조천 골목의 집들

작년에 종달리 지미 오름을 넘어 하도리까지 걸어 간 적이 있었다. 그때 그 길이 마치 유럽의 시골 풍경 같다고 느꼈었다. 그런데 오늘 걸은 길도 그랬다. 왼쪽을 보면 바다가 펼쳐져 있고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저기  너머를 보면 시내의 건물들이 보였다. 땅에는 밭에 나는 채소들과 돌담과 그냥 땅과 나무와 꽃들이 계속해서 새로운 모습으로  펼쳐졌다. 정말 넋을 잃고 두리번거렸다. 지루할 틈이 없는데 한적하고 조용한데 풍성한 시골길.

주변이 온통 자연으로 둘러싸인 삶이란 어떤 것일까. 단 1초도 이전과 같다는 느낌이 들 수 없는 곳. 자연 하루도 색깔이 같을 날이 없고 예측되는 하루란 있을 수가 없다. 그러면 지루할 틈이 없겠지... 솔직히 매일 흙을 만지고 식물을 가꿔 하는 또는 물을 만지고 고기를 만져야 하는 사람들에게 지루하다는 말은 웃긴 말 같다. 하지만 너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해도 이 다채로운 자연의 영향을 받지 않을까. 자연스럽게 늘 새로운 감각으로 세상을 느끼지 않을까.


다시 생각해 보니 나도 언제나 길가 집집마다 심긴 나무나 꽃을 보며  상상을 다 하며 자랐고 저 멀리 눈을 돌리면  다양하게 변화하는  보이는 춘천에서 살았다 그때 지금의 삶을 비교해 보니  삭막해졌다는 생각이 든다.  새삼스럽게 서울 내가 사는  창밖 풍성 벚나무가 고맙게 느껴진다. 자연은 똑같으면 병든 것이다. 인간도 자연의 산물인데 그렇지 않을까. 유지하려는 삶의 자세 자체가 인간을 병들게 하는 걸지도 몰라. 변화를 두려워하는 마음은 더 불안을 부르니까... 뻔하지만 자연답게 살자 싶다.

간짜장이 기막히다는 금성문

밥을 먹으러 가는 길에 있었던  중국 음식점이다. 할아버지가 주방장이고 혼자 운영하시는데 간짜장 정말 맛있다는 소문다. 그리고 이곳에는 탕수육이 정말 양이 많다고 한다. 가족 단위로 여행을 오는 사람들이나 몇 명끼리 모여서 오는 친구들이라면 201번을 타고  도로를 지나다가 함덕고등학교에서 내려 여기서 밥을 먹고 가도 될 것 같다. 주변 예쁜 산책로도 있다. 산책로인 줄 아무도 모르겠지만. 

아침은 촐레 밥상에서 각재기  먹었다. 촐래는 제주도민들이 가난하고 어렵던 시절에 먹던 무조림이다. 그냥 짠맛을 강조한 무조림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아주 작은  그릇으로 네 식구가 같이 먹을 정도로 짜게 만든 음식이다. 옛날이야기 자린고비의 천장에 달렸던 자반 조기 같은 느낌이랄까. 각재기 국은  마디로 전갱이 국인데 아주 맑게  된장 물에 생선을 넣고 무나 나물 함께 끓인 음식이다 정말 담백하고 부담이 없다. 서민들의  제주 전통 음식은 흑돼지나 해물 뚝배기가 아니라  전갱이 국과 촐래란 생각이 든다. 과거에 유배지였고 먹을 것이 귀했던, 쌀농사가 힘든 제주에서 흑돼지를 과연 몇이나 먹었을까...


 이 식당은 생긴 지 얼마 안 됐지만 코로나를 극복하고 맛으로 승부에서 이제 자리 잡았다. 제주도민들이 많이 찾는. 관광객들은  모르지만   제주 거주민이 추천하는 식당  편안하고도 든든한 아침 식사를 했다.

평화롭고 조용한 종달리

아침부터 시골길을 오래 걸어서 그런지 밥을 먹어서 식곤증이 왔는지 버스를 타고 종달리에 도착했을 때는 너무 나른했다. 전부터 꼭 다시 오고 싶었던 종달리 746 카페에 들어가서 두어 시간을 아무것도 안 하고  곳의 잔잔한 음악과 잔잔한 분위기에 취해서 휴식을 취했다. 내가 원했던 느릿한 여행 시간이었다.  카페 북카페고 조용히 하는 규칙을 지킨. 그래서 온 손님들도 서로 얘기를 잘하지 않고 책을 읽거나 나름의 작업을 한다. 분위기가 아무리 좋은 카페라도 그리고 내가 방문했던 그때 분위기가 아무리 좋았다 하더라도 주인장이 그 분위기를 계속해서 지키려는 의지가 없으면 좋았던 것도  그 원래 성격을  변질되고 마는이곳은 언제나 비슷한 분위기를 낸다. 그래서 다시 찾을 때 편안하게 다시 찾게 되는 곳이다. 의자, 테이블, 음악 커피 모두 완벽하다.

종달리 곳곳에 있는 조그마한 상점들과 들을 돌아다녔다. '소심한 책방', '책 약방', '인연의 숲 잡화점' (물건이 너무 다양하지 않고 가격표를 적어놓지 않아 사기 부담됐다) 크고 작은 공방들... 지난번에 왔을 땐 있었던 작은 갤러리는 문을 닫았다. 아마 코로나나 여러 가지 상황들이 상점들이 계속 버티는데 어려움이 됐을 것이다. 다시 들르고 싶었던 곳인데 아쉬웠다.


저녁을 먹기 전에 해변으로 나가서 시간을 보냈다. 해변으로 가는 길에 갓길에 망아지가 서 있었다. 표정너무나 태연한 것이 정말 신기해서 가서 사진을 찍었다. 처음엔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을 먹다가 나를 어떻게 대해야 될지 고민을 하는 것 같아서 자리를 피했다. 이렇게 차가 쌩쌩 다니는데 저렇게 태연하게 풀을 먹다니 주인은 어디 있을까?여기에 혼자 묶여 있을까?


차츰 해가 지면서 정말 아름다운 하늘이 펼쳐졌다. 해가 지는 방향으로 쭉 걸어 나가 유명하다는 레스토랑에 가서 파스타를 먹었다. 리조토와 파스타와 샐러드를 먹었다. 이번 여행은 정말 먹거리가 사치스럽다. 점점 건강해지는 기분이. 여기도 정말 맛있었다. 싹싹 다 먹음.


그리고 새 숙소인 동동 게스트 하우스로 돌아보니 3일 연박 조건으로 방이 업그레이드되어 더블룸을 쓰게 됐다. 숙소 사정상 더 예약을 안 받아서 5인 연박의 꿈이 깨졌다. 마지막 이틀 머물 곳이 애매해져서 고민하다가 그냥 다시 조천으로 들어가 조용히 한적하게 지내기로 했다. 밤인데도 꿈꾸는 섬 게하 사장님이 예약 처리를 바로 해주셨다. 이제는 꿀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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