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형제 동화 <실 잣는 여자들>
역사 속의 여인들은 실 때문에 추앙받고 경멸받고 평가받고 이용당한다. 너무 못해도 안 되고 너무 잘해도 안 되고 외모도 지켜야 하지만 그걸 자랑해도 안 된다.
나를 사촌이라 부르고 부끄러워하지 말고 식탁에 같이 앉자.
그러면 너에게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
내가 이렇게 생긴 이유는 너 때문이야.
이 외모 때문에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너야
요즘 나는 혼란의 시기에 있다. 그건 이를테면 내가 어떤 사건을 겪으면,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지만 나 혼자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하고, 또 동시에 그 잘못이 나 때문이 아니라고 합리화하는 생각을 해서, 내가 겪은 게 어떤 상황이었는지나 그래서 진짜 거기에 대한 내 생각이 뭔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식이다. 다시 말하자면 나는 내가 경험을 수치스러워하면서도, 그걸 부정하려고 남 탓을 하거나 이상한 식으로 노력하게 된다. 마치 자기의 수치를 부정하느라 딸에 대한 거짓말을 하던 처녀의 엄마처럼...
이번 오픈 클럽에서, '내가 겪은 역사를 수치스러워하는 사람은 남을 불행하게 만든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 너무 잘 알겠다. 나의 부족과 부끄러움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그걸 극복하려고 노력하지 않고, 거짓 이야기를 만들고 다른 사람들을 거기에 끼워 맞추느라, 내 부끄러움의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해 버리는 것이다.
한편 요즘 내가 혼란스럽긴 하지만, 그렇다고 항상 내가 내 역사를 부끄럽게만 생각하고 감추었던 것은 아니다. 세 여인들처럼 내가 겪은 아픔을 통해 뭔가 배우고, 그 경험을 다른 사람들에게 공유하면서 연대했던 경험이 분명히 있다. 이를테면 4년 전 친했던 한 친구가 세상을 떠났을 때, 다른 친구들과 그 사건에 관련된 책 출판을 준비하면서 나는 그 사건에 대해 많이 정리할 수 있었다.
그 이후에 죽은 친구와 친했던 다른 사람들에게 출판을 위한 인터뷰를 요청하러 다녔는데, 그들은 아직 친구의 죽음이라는 사건을 받아들이는 데에 어려움이 있었다. 인터뷰에 대한 대가(?)는 아니지만, 말하다 보니 내가 아파했던 절차를 공유하면서 그들이 느끼는 죄책감(내가 슬퍼할 자격이 있나? 등) 같은 것을 떨쳐낼 수 있게 도와줬다. 물론 당시엔 모두가 같은 사건을 겪었기에, 내가 그 사건을 수치스러워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그게 가능했던 것 같다.
하지만 요지는 내 아픔을 떳떳하다고 생각하면 배우는 것이 있고, 그러면 시혜적이지 않은 태도로 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요즘 내 혼란의 원인은 내가 나를 부끄러워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나의 수치를 감추려고 하다 보니 당연히 열등감이나 피해의식이 커질 수밖에 없다. 내가 경험하는 사건에 대해 남 탓을 하거나 거짓말을 꾸며내지 않고 떳떳한 태도를 가지는 것.. 이게 나의 혼란을 완화시킬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인 것 같다. 내 감정과 경험에 대해 복잡하지 않고 떳떳하게 생각하면서 이 시기를 잘 극복하고 싶다. 그러면 언젠가는 나와 같은 혼란을 겪는.. 경직된 사람들에게 내 경험을 공유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