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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담 Mar 30. 2021

수치심의 극복

그림형제 동화 <실 잣는 여자들>



그림 형제 동화에 실 잣는 여인들이 나온다.


     동서를 막론하고 실을 잣거나 베를 짜는 기술은 각 가정과 국가를 먹여 살리는 중요한 기술이었다. 고려가요 <서경별곡>의 화자는 사랑을 위해서라면 길쌈하던 베를 버리고 떠나겠다는 표현으로 강한 의지를 드러내고 공자 엄마는 공부 끊어마며 하는 거 아니라고 가르치려고 짜던 베를 자르는 극단적 희생을 하고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는 길쌈과 자수의 명인 아라크네가 아테나와 대결한 교만의 상징으로 나오며 처참하게 응징당한다.  


역사 속의 여인들은 실 때문에 추앙받고 경멸받고 평가받고 이용당한다. 너무 못해도 안 되고 너무 잘해도 안 되고 외모도 지켜야 하지만 그걸 자랑해도 안 된다.

     민담에서 실 잣는 여인들은 단번에 한 여인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능력자이자 못생긴 외모를 경멸받는 존재다. 그리고 이 동화에는 사회가 원하는 기술을 익힌 여인들이 사랑받기 위해 또는 순종했기 때문에 얻은 결과인 외모 변형으로 인해 다시 경멸받는 장면을 보여줌으로써 사회가 여인에게 지우는 이중 잣대의 문제를 고발하고 그 돌파구를 모색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코드가 바로 수치다. 동화에는 엄마, 왕비, 여인들이 나오는데 이 관계는 각각 혈육, 권력, 사회적 관계를 상징한다. 민담 동화는 항상 사회에서 만난 사람을 통해 문제를 해결한다. 혈연과 권력에 기댈 수 없었던 사람들의 처절한 생존기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엄마는 수치를 딸에게 떠넘기고 왕비는 권력을 나누지 않는다. 이 못생긴 언니들이 원한 것은 오직 하나.




나를 사촌이라 부르고 부끄러워하지 말고 식탁에 같이 앉자.
그러면 너에게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

     개인이 각자의 수치를 다루는 방법에 대한 문제의식이 내가 강조하고 싶었던 이 동화의 핵심이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나 역시 수치의 밤을 피하지 못하고 사회의 이중잣대에 분노한다. 그것을 다시 누군가에게 돌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이미 가해의 역사를 쓰는 이들에 비하면 의미 있는 삶이라고 이 동화는 말한다.


     어려운 단어 단 하나 안 나오지만 오래된 많은 사람의 고민이 만들어낸 고마운 이야기다. 옛날 여인들은 알았던 것이다. 사회가 끊임없이 괴롭힌 결과 자기혐오에 빠진 여인들이 얼마나 지옥을 살아갈지. 그리고 그걸 멈추는 힘은 우리 자신에게도 있다는 것. 권력을 타고나지 못했다면 어떻게 권력을 이용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 여인들은 실 짓는 과업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던 한 여인의 운명에 개입하고 연대하며 기꺼이 권력자를 속이고 이후 해방된다.


왜 이렇게 못생겼냐고 묻는 권력자에게 실을 자아서 그렇다고 답하는 그들의 언어를 환언하면 이렇다.




내가 이렇게 생긴 이유는 너 때문이야.
이 외모 때문에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너야


이 동화를 처음 읽었던 날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

아래는 기분 장애를 겪고 있는 누군가의 후기다. 허락받고 익명으로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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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 혼란의 시기에 있다. 그건 이를테면 내가 어떤 사건을 겪으면,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지만 나 혼자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하고, 또 동시에 그 잘못이 나 때문이 아니라고 합리화하는 생각을 해서, 내가 겪은 게 어떤 상황이었는지나 그래서 진짜 거기에 대한 내 생각이 뭔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식이다. 다시 말하자면 나는 내가 경험을 수치스러워하면서도, 그걸 부정하려고 남 탓을 하거나 이상한 식으로 노력하게 된다. 마치 자기의 수치를 부정하느라 딸에 대한 거짓말을 하던 처녀의 엄마처럼...

이번 오픈 클럽에서, '내가 겪은 역사를 수치스러워하는 사람은 남을 불행하게 만든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 너무 잘 알겠다. 나의 부족과 부끄러움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그걸 극복하려고 노력하지 않고, 거짓 이야기를 만들고 다른 사람들을 거기에 끼워 맞추느라, 내 부끄러움의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해 버리는 것이다.

한편 요즘 내가 혼란스럽긴 하지만, 그렇다고 항상 내가 내 역사를 부끄럽게만 생각하고 감추었던 것은 아니다. 세 여인들처럼 내가 겪은 아픔을 통해 뭔가 배우고, 그 경험을 다른 사람들에게 공유하면서 연대했던 경험이 분명히 있다. 이를테면 4년 전 친했던 한 친구가 세상을 떠났을 때, 다른 친구들과 그 사건에 관련된 책 출판을 준비하면서 나는 그 사건에 대해 많이 정리할 수 있었다.

그 이후에 죽은 친구와 친했던 다른 사람들에게 출판을 위한 인터뷰를 요청하러 다녔는데, 그들은 아직 친구의 죽음이라는 사건을 받아들이는 데에 어려움이 있었다. 인터뷰에 대한 대가(?)는 아니지만, 말하다 보니 내가 아파했던 절차를 공유하면서 그들이 느끼는 죄책감(내가 슬퍼할 자격이 있나? 등) 같은 것을 떨쳐낼 수 있게 도와줬다. 물론 당시엔 모두가 같은 사건을 겪었기에, 내가 그 사건을 수치스러워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그게 가능했던 것 같다.

하지만 요지는 내 아픔을 떳떳하다고 생각하면 배우는 것이 있고, 그러면 시혜적이지 않은 태도로 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요즘 내 혼란의 원인은 내가 나를 부끄러워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나의 수치를 감추려고 하다 보니 당연히 열등감이나 피해의식이 커질 수밖에 없다. 내가 경험하는 사건에 대해 남 탓을 하거나 거짓말을 꾸며내지 않고 떳떳한 태도를 가지는 것.. 이게 나의 혼란을 완화시킬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인 것 같다. 내 감정과 경험에 대해 복잡하지 않고 떳떳하게 생각하면서 이 시기를 잘 극복하고 싶다. 그러면 언젠가는 나와 같은 혼란을 겪는.. 경직된 사람들에게 내 경험을 공유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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