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rilis 의 독서일기 9-1 <리스본행 야간열차 > 파스칼 메르시어
<리스본행 야간열차>에는 그레고리우스라는 화석같은, 매우 실력 있는 고등학교 언어교사가 나온다. 늘 똑같은 옷을 입고 돈을 쓸 줄도 모르는 그는 고요한 밤처럼 살며 어떤 변화도 어떤 관심도 바라지 않는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다리에서 자살 하려는 여성을 구해준 사건을 겪은 후, 그녀가 말한 유일한 단어. '포루투게스'라는 단어를 단서로 포르투갈어로 쓰여진 책을 찾게 되고 그 책에 이끌려 갑작스럽게 그 책의 저자를 찾아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래고리우스는 변화를 싫어하는 사람이다. 결혼생활을 할 때도 흑백 TV를 고집하며 아내와 대치했고 결코 타협이 없어서 결국 이혼했다. 15년간 옷을 새로 산 적도 없고 학위를 통해 실력을 인정받는 것도 우스워한다. 변화를 원하지 않고 결핍을 느낀 적도 없다. 그의 별명은 문두스(세계)다. 그는 그 자체가 하나의 세계로서 인식되는 사람이다. 그는 안정된 삶을 살고 있었다.
내가 유지하고 싶어하는 모든 안정된 것들은 정말 나에게 최선의 것들일까...
당시의 나에게는 갈림길 앞에서 다른 길을 갈망할 만한, 고통을 경험한 관점이 없었다.
P77 ㅡ 프라두의 글
닥칠 고통에 대한 경험치가 없을 때 우리는 서슴없이 어리석은 선택을 하고 전진하거나 무의미한 망설임에 붙잡혀 주저 않는다. 다른 길에 대한 갈망이라는 것은, 이 길을 실패해 보지 않고선 획득할 수 없는 열정이다. 눈이 멀지 않고서야, 누가 가지 않은 길을 호기심이 아닌 갈망에 이끌려 선택하겠는가... 간절함은 그토록 값진 마음인 것이다. 눈이 멀 각오가 없다면 주저 앉아 과거를 반복하는 삶이라도 사랑해야 한다. 의문이 든다.
난 이 반복되는 일상을 사랑하나?
그레고리우스는 다리 위에서 마주친 그 여자때문에 포르투갈어로 된 원서를 샀고 그것을 번역해 나가면서 새로운 자아를 상상하고 만나고 발견하고 심지어 만들어 간다. 갑작스런 사건, 설명이 안 되는 이끌림, 계획한 적 없는 여행... 때로 새 삶은 느닷없다... 내가 원치 않아 선택되지 못했던 세상이 문밖에 가득하다. 새 삶을 시작할지, 그냥 머무를지, 내 속에 도사린 여러 자아 중 누가 결정을 내릴 것인가?
그레고리우스가 빠져든, 프라두라는 의사가 쓴 책은 마치 그레고리우스를 위해 쓴 것 같고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마치 날 위해 쓴 것 같다. 이로써 이 이야기는 현재성을 획득한다. 어떤 이야기가 '나의 서사'가 되게 하는 것은 '나'라는 필터다. 지금의 나는 이 이야기를 통해 어떤 시도에 대해 학습한다. 그리고 마음졸이며 그들을 관찰한다. 여행은 성공할까? 새로운 자아는 획득될까?난 누구를 따라야 하지?
내 자신이 나에게 방해가 되어 성가셨다.
P102 프라두의 글
이 책은 '내가 예상치 못했던 여러 모습의 자아'에 대한 이야기이다. 동시에, 내가 인식하는 내가 타인이 보는 나와 얼마나 다른지에 대해서도 말한다. 너무나 명백하게 인식되는, 타인의 눈에비친 나는, 감추어진 심연 속에 도사린 나와
같은가? 자아를 구성 당할지 스스로 구성할지 나는 오늘도 고민한다. 문밖이 두렵기 때문에... 이전의 나는 새로운 나를 방해한다...
내가 나를 방해하여 심연의 나를 모른 채 살고있는 건 아닌지 내가 커다란 오해와 편견의 시선 속에 살고 있진 않은지 생각해 본다. 현재 비춰지는 '나'의 모습은 내 선택의 결과인가. 아니면 타인의 기대가 투영된걸까. 로마의 철학자이자 황제였던 아우렐리우스가 조언한다 '내가 영혼의 떨림대로 살고있는지 스스로 물어보라'고...
그레고리우스는 기차에 올랐다.
북팟캐스트 '오후 세 시의 여우' 방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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