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벨만스

스티븐 스필버그의 어린 시절과 조우하다

by 물들래

영원히 간직하고픈 기억을 영화는 재현해 준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영화의 모든 순간과 사랑에 빠져드는 것은 아닌지. 처음 영화와 만난 그때 난 몇 살이었을까?


영화 프로그램 강의 때나, 영화모임에서 내 인생에서 만난 최초의 영화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특징을 보면 어린 시절 부모가 영화를 좋아하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 난생처음 스크린을 마주한 순간부터 영화와 사랑에 빠진 소년 ‘새미’, 바로 파벨만스의 스티븐 스필버그처럼 말이다.


부모와 관계없이 KBS 명화극장에서 어떤 영화와의 첫 만남으로 영화에 입문한 경우도 있고 성인이 되어 취미생활로 즐기면서 괜찮은 영화와의 만남을 자주 갖게 되어 영화를 좋아한 경우도 있다. 문학을 좋아했던 어떤 지인은 책 속에 언급된 영화를 찾아보면서 문학과 함께 영화까지 좋아하게 됐다고 한다.


각설하고 내가 처음 만난 영화를 봤던 게 언제였지? 그 당시 개봉관은 아니었고, 동시상영 영화관도 아닌, 중급 정도 되는 영화관이었던 걸로 안다. 아마 8~9세로 기억한다. 청량리역 근처 성모병원 옆에 위치한 오스카 극장에서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서커스 관련 영화였던 것으로 기억되는 외국영화였다. 매우 흥미로워서 한시도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영화라기보다는 서커스 현장에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커다란 화면에서 다양한 동물들과 사람들이 묘기를 부리던 장면이 뇌리에 오래 남아있다. 그 영화를 보고 어떤 감동이 밀려왔다거나, 그 영활 계기로 영화에 빠져들진 않았다.


이후 고딩 시절에 영화와 깊은 만남을 갖게 된 듯싶다. 일단 그 시절 학창 시절 중간고사나 기말고사가 끝나면 행사처럼 단체 관람을 하곤 했다. 그때 관람한 영화들은 주로 종교영화가 많았던 것 같다. 벤허, 쿼바디스, 십계와 같은. 가슴을 설레게 하는 외모는 아니었지만 연기를 무척 잘한다는 느낌은 받았다. 찰톤 헤스톤이 주로 등장했던 영화가 대부분이었다. 이후 줄리 앤드루스의 영화를 많이 보았다.


사복을 입고 미성년 입장 불가인 영화를 보러 가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도 왜 그게 미성년 입장 불가였는지 납득이 안 가는 영화가 대부분이었다.


암튼 파벨만스를 관람하고 어수선하고 시끄러운 홍대 거리를 걸으면서 영화 관련 추억을 떠올렸던 그저께 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영화와 인연을 맺기 시작했을 때부터를 재현한 영화 파벨만스에서 스필버그를 빼닮은 듯한 아역배우와 청소년 배우를 어떻게 캐스팅한 건지 놀라울 정도로 싱크로율 백 퍼센트였다. 세상엔 닮거나 비슷한 사람이 많다는 반증이기도 하겠지. 암튼 캐스팅에 우선 감탄하며 영화 속으로 빠져들었다. 새미 어머니 역으로 분한 미셸 윌리엄스(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배우) 또한 완벽한 캐스팅이란 생각이 들었다. 혹여 스티븐 스필버그는 미셸 윌리엄스를 엄마 역으로 정해놓고 이 영화를 제작한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감독과 여배우의 진한 울림이 느껴지던 신이 있었다.


난 아무래도 아날로그 시대를 너무 그리워하는 것 같다. 이런 유의 영화를 보면 그때가 좋았지,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거침없이 든다. 나이는 지금 이대로, 시절만 그 시기로. 그러나 터무니없이 불가능한 일이기에 아쉬운 마음만 부여잡고 N차관람을 했다.


영화관람 중 부모 역할 이전 가슴이 시키는 대로 따라가는 새미의 엄마 미셀 윌리엄스의 대사 앞에서 관람객으로서 마음이 먹먹해왔다. 하물며 새미는 그 시절 어떤 마음이었을까? 엄마와 유난히 돈독한 모자 관계였기에 그 예민한 시절 새미의 상처는 더 깊었을 것이다.


우연히 필름 속에서 엄마 '미치'의 비밀을 알게 된 후 충격에 휩싸였던 새미, 그 시절의 상처를 스티븐 스필버그는 영화로 극복했을까? 필름은 영화로 재현되지만, 결국 그 속에 진실이 있음을 알게 해 준 장면이라 오래 기억에 남았다. 아마 나뿐만 아니라 많은 관객이 그 장면에서 영화와 현실의 경계 혹은 한계가 무너지는 경험을 했을 듯싶다. 영화보다 더 힘든 현실을 재현해 내는 것 같은 스크린 앞에서 관객들은 저마다의 서사로 무너지다가 통쾌하게 웃다가 다시 살아야 할 이유를 찾고 일어서곤 하지 않는가? 그게 영화를 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 곳곳에 성장 과정에서의 아픔이 배어 있었다. 학교 폭력을 경험하기도 하고, 그 폭력을 영화라는 매체로 아름답게 이겨내기도 하는 새미를 보면서 청년기의 아픈 상처와 슬픔은 결국 예술로 승화될 수 있음을 여실히 깨닫게 해 주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철학은 어쩌면 청소년기에 형성된 것이 아닐까? 그 시기 많은 고난이 있었고 그런 상처로 인해 내적으로 폭풍 성장하지 않았나 싶다.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이 가지만 위대한 예술가는 그 시절을 잘 통과해 내는 자들이 아니던가. 오늘날 우리가 그의 영화를 보고 감동하는 것은 그의 삶 전체를 관통한 뒤에 나온 울림 때문이지 않을까. 영화에 대한 사랑을 새삼 반추하게 해 준 웰메이드무비였다.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필관람 영화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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