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당신의 마음에 이름을 붙인다면]을 읽고...
그림책이어서 일까? 글보다 그림과 색감으로 먼저 기억되는 책,『당신의 마음에 이름을 붙인다면』이다. 17개 나라 마음의 단어들, 그 단어 하나하나 읽고 가슴에 담아본다. 언제 이 비슷한 감정들을 느꼈나 생각하며 詩 같은 시간을 경험했다.
대부분의 마음 단어를 기억해 두었다가 적재적소에 사용해 보고 싶었지만 쉽게 기억하기 힘든 긴 단어나, 발음하기 힘든 단어들은 곧 잊어버렸다.
그럼에도 마음으로 오래 기억하고 싶은 단어 몇 개가 있다. 일단 삶에서 충분히 느껴봤음직한 감정으로 깊이 마음에 와닿았거나 짧고 발음하기 쉬운 단어들이다. 기억하고 싶은 여섯 단어 중 포르투갈 단어가 두 개인 것은 그곳 여행이 그만큼 내게 복잡다단한 정서와 깊은 추억을 선사했기 때문이리라. 그중 한 개의 단어를 소개한다.
‘깊이 사랑했지만 돌이킬 수 없이 망가져 버렸거나 더는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에 대한 찬란한 슬픔’이란 의미의 '사우다드'. 포르투갈의 노래, pado, 숙명의 노래가 바로 '사우다드'였구나.
파두(PADO)는 어두운 음악이다. 청승맞고 구슬픈 노래다. 슬픈 역사와 애환을 담고 있는 포르투갈의 정서를 대변하는 음악이다. 공연은 대개 저녁 9시에 시작하지만 베테랑급 파디스타는 자정 전후에 출연한다. 10시 넘어서 공연장에 도착했고 만족할만한 유명 파디스타의 공연을 직관했다. 파두를 불렀던, 파두를 연주했던 그들은 '사우다드'로 체화된 거였다. 숙명적인 슬픔을 처절하게 연주하고 노래한 거였구나. 그들의 노래를 듣는 순간 청자 역시 '사우다드'란 감정의 문으로 초대받은 것 같았다.
파두 공연 관람을 마치고 나오니 자정이 넘었다. 깊은 밤 파두 골목을 빠져나와 『리스본행 야간열차』 에서 제레미 아이언스의 흔적이 남아있을 언덕 주변을 산책했다. 피를 토하듯 불렀던 파두 가락이 귓전에 생생했다. 멀리 리스보아 야경을 내려다보았던 2014년 가을! 그때의 정서가 '사우다드'로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아... 삶의 기본 값이 슬픔이라니. 그래. 슬픔을 외면하면 안 돼. 받아들이고 껴안아야 돼. 행복 뒤에 반드시 따라오는 감정은 바로 '사우다드', 숙명이다.
마음 단어를 읽고, 뜻을 곱씹어 보고, 그와 비슷한 경험을 떠올려보고, 그때의 정서를 꺼내서 느껴보고 색감으로 표현해 보았다.
다시 책을 펼쳤다. 이번에는 글자를 읽지 않고 그림을 읽었다. 색감을 읽었다. 책 속의 마음 단어가, 마음 그림이, 마음 색감이 정서와 섞이기 시작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감정이 오롯이 피어났다. 비슷한 감정은 있겠으나 똑같은 감정은 있을 수 없으니까. 지금 차오르는 감정의 시작과 끝을 감지하고 싶다. 느끼는 감정들을 여과 없이 기록하고 싶다. 감정들에 이름을 붙여주고 싶다. 감정을 색으로 표현하고 싶다.
작가 마리아 이바사키나는 모든 감정을 마음으로 품었을 것 같다. 품어 가면서 그 감정에 매몰되고, 허우적거리며 희로애락애오욕 그 이상의 모든 정서를 체험해 나가지 않았을까? 그렇게 길어낸 17개국의 단어는 독자에게 여러 의미로 다가갔을 것이다. 비슷한 듯하지만 똑같지는 않은... 독자마다 조금씩 다른 정서와 결합해서 어디에도 없는 고유의 마음 단어로 새롭게 탄생했을 것이다.
작가가 한국어에도 관심을 기울였다면 어떤 마음 단어를 채집했을까 궁금해졌다.
『당신의 마음에 이름을 붙인다면』을 읽고 나니 우리말에 관심이 갔다. 세계인이 뽑은 아름다운 한국어를 검색해 보았다. 사랑, 안녕, 아름답다, 별, 예쁘다, 봄 순이라고 한다. 역시 세계인이 뽑은 아름다운 영어는 mother, passion, smile, love, eternity, fantastic 순이라는 것을 알았다.
『당신의 마음에 이름을 붙인다면』 이 책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나의 감정을 알아채고 그 감정에 물들어 보기, 나쁜 감정은 없으니 다가오는 대로 자연스레 느껴보고 언제 사라지는지 따라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