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물들래 Nov 02. 2024

참회록

참회한다고 죄가 없어지는 건 아니야

뒹구는 낙엽 밟으며 아가 생각났어

결국 내가 버린, 아니 내가 죽인 생명

이십여 년 전 태어났을 아가

불혹을 넘겨 가진 아가

두 자녀 낳아 길렀지만 의아했어

으스스 떨며 이불 덮다가 혹시나 했지

설마 아니겠지 했어

노산이라 산모 아가 모두 위험하다는 의사 말에 

저항 없이 순종했어 죄짓는 줄 알면서 죄인을 자처하고

수술 뒤 남편과 오열했어

아이가 떠나는 것도 모른 채 아이의 흔적도 찾지 못한 채

여러 날 서글픔이 마음에 서걱거렸지

울다가 외면하다가 사죄하다가 쓸쓸한 마음으로 무작정 걷다가


어느 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덮어버렸어


덮어놓은 낙엽이 눈앞에서 휘날렸어

한동안 덮어놓은 거기에 아가가 있었어 

살았다면 스물하나일 셋째 아이가 거기에 있었어

아가야 스물한 살 너는 어떤 모습일까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찬 바람이 정신을 후려쳤어

죄를 지었지,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진 거야, 살인자였어

아가 미안해, 나를 용서하지 마, 절대 용서하지 마


삼 년 전 떠난 반려견 묻은 자리에 며칠 전 노란 꽃이 폈어

반려견 떠나보내고 금 가고 깨진 마음 바라보다 아가 생각났지

아가가 떠난 날, 몇 개의 금이 갔을까, 몇 조각으로 깨졌을까

금 가고 깨진 마음 붙이지 못해, 이대로 사는 게 벌일까

낙엽이 날아가는데 아가도 날아가고 있었어 

반려견 묻은 자리로 낙엽 몇 장이 날아왔어 

반짝거리는 노란 꽃이 애기똥풀은 아냐 

아가 기저귀 갈아주지 못하게 낙엽이 다시 날아왔어

아가를 지워버린 어미는 내년 봄 애기똥풀 앞에 설 수 있을까

그때도 낙엽이 날아올까 다시 덮어버릴까 

금 가고 깨진 거 다시 붙일 수 없어도 덮지는 말아야 해

살점이 찢기는 고통으로 사라졌을 아가의 고통 고스란히 받아야 해

참회한다고 죄가 없어지는 건 결코 아니야

무덤 갈 때까지 참회해도 죄가 없어지는 건 아니야


사진 출처: 네이버 이미지


이전 14화 싱어송라이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