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뜨면 날아가고 사라지고 도망가네
꿈이야
꿈꾸고 있는 거야
詩語가 마구 떠올라
옮겨 적는 게 답이야
꿈인데 깨고 나면 기억날까
이리 분명한 느낌을 어이 까먹겠어
잊어버리면 머리가 문제야
까먹을 리 없지 이렇게 아름다운 시어를
기억나지 않을 리 없어 이토록 강렬한 이미지가
그런데 알고 있지, 언제나 까먹는다는 걸
새벽에 일어나
백지 앞에 앉는다
그토록 선명한 詩語가 어디로 가버린 거야
눈뜨면 날아가고 사라지고 도망가네
그냥 눈감고 있을걸 오랫동안
잊어버리려야 잊어버릴 수 없을 때까지 詩語 맴돌게 해
눈뜨자마자 옮겨놓아야 해, 그러나 이미 잊어버린걸
그저 감각과 이미지로 몸부림치며 기억 더듬어봐
그때 이미지가 떠올라, 한 노인이 왜
열린 문틈으로 속사포처럼 빠져나간 걸까
열린 문 틈으로 쏟아지는 비가 들이차고
빗길 속으로 노인은 도망가 버렸어
다른 노인이 노인을 쫓아 나갔어
노인이 노인을 데려왔는지
노인이 노인을 찾아오려고 따라나갔다
두 노인 다 길을 잃었는지 모르겠어
그런데 너무 궁금하잖아
굼뜬 노인이 어찌 그리 빠르게 빠져나갔는지
노인을 따라 나간 노인은 지금 어디 있을까
그 노인은 젊은이일까 진짜 노인일까 아니면 나일까
오줌 누고 다시 잠든다
두 노인 찾고 싶어서 억지로 잠든다
노인이 쪽지를 건넨다
플레이보이 기질 있으니 신뢰하기 어렵다,
라고 적혔는데 플레이보이가 누구일까
첫사랑일까 아들일까 남동생일까 남편일까 나일까
꿈속 키워드는
두 노인과 플레이보이,
꿈이 전하는 메시지는 결국
노년을 향해 가는 '나'라고 말한다
老軀는 말을 안 들어도
老心은 날고 싶은 거야
친구 따라 강남 가고 싶은 거야
찾지 말아, 두 노인이 원하는 거야
내 안에도 플레이보이가 숨어있다고 말한다
웃을 일 없는데 웃게 하는 꿈이네
자고 일어났을 때 궂은 상태였는데
詩로 꿈풀이 하고 나니 심신이 가벼워져
時詩한 하루가 몸과 마음 가뿐하게 하네
20241111 춘천 공지천에서 꾼 꿈을 떠올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