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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들래 Nov 08. 2024

네 개의 커튼

붉은 머리 초록입술이 말을 걸어오다

초록입술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연두입술과 맞물리면 무슨 소리를 낼까

커튼을 젖히면 목소리가 들릴까

소리는 내면으로 스며들어 외부로 뚫고 나올 수 있을까


새벽잠 설치며 감홍빛 가을축제 선물 받고 싶어 달려간 희원

단풍은 온데간데없고 마른 낙엽들만 바람에 날린다

고개 숙인 마음 안고 파티의 사계 앞에 섰어

떨어진 낙엽이 파티의 가을 속에 담겨 있더군

아마 커튼 뒤에도 쌓아 놓았을지 몰라

낙엽 속에 상처 감추었을까

푸른 커튼은 파란 내 마음일까

들추면 파란 진실과 맞닥뜨릴 수 있을까

붉은 커튼은 시기하는 마음일까

들추면 붉은 거짓이 발가벗긴 채 서 있을까

그곳에 포개진 검은 먼지는 뭘까

낙엽보다 무거운 먼지는 단단하다

긁어내고 긁어내야 조금씩 부서진다

확대경으로 들여다보면 진실 알갱이 보일까


헤라르트 하우크헤이스트 델프트 구교회 내부 커튼이라는데

냉랭한 델프트 거리 걸으면서 베르메르 흔적 찾던 기억이 났어

파이프 담배를 피우는 남자는 좁은 커튼 뒤에 숨었을까

내뿜은 담배연기조차 숨어있는 파티의 커튼은 완전한 변신이 아냐

니콜라스 파티의 네 개의 커튼 작품은 완벽한 덮음이었어

내면의 목소리도 모양도 모두 덮어버린 차단제였어

그러나 내면의 목소리는 언제나 십일월에 힘이 세지

커튼을 젖히고 가을을 들추고 십일월을 가르며 커튼 밖으로 나왔어

초록입술과 연두입술이 천천히 입을 열었어

진실의 알맹이들이 모였다고 호수 위에 단풍잎들과 손잡고 있다고

맑은 호수 들여다보면 커튼 뒤에 감추어진 마음이 보일 거라고

마음이 커튼 밖으로 몸을 밀어냈어 

몸이 커튼 안에 있던 마음을 끌어냈어

호수 위에 몸과 마음이 고요하게 하늘과 어깨동무하고 떠있어

초록입술과 연두입술도 평온하게 입술을 다물었어


20241107 호암미술관 니콜라스 파티 전시를 보고 네 개의 <커튼> 작품을 보고 쓴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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