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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닥터 지바고에게 바치는 시

by 물들래

키옙스키발

페레델키노행

이른 열차를 타고

잊고 있던 첫사랑을 찾아 나섰다


러시아식 별장 다차

그가 말한 레몬 향 숨결을

느껴보려고 한 시간 남짓

나무 울창한 길을 걷고

멈추고 또 걷고 멈추기를 여러 번

첫사랑

파스테르나크

아니

닥터 지바고

아니

오마 샤리프

세 사람은 내게 동일 인물


페레델키노

그곳에

녹음

바람

햇볕

공기

행인

모두가

나였네

아니

너였네

아니

파스테르나크였네


11시 오픈

첫 입장

소박한 식탁

정갈한 다기

국화 꽂힌 화병

액자 속 지바고는

식탁 바로 그 자리에 서있고


그의 죽음

그의 삶

그의 향기는

내가 태어난 그 해로

거슬러 올라가

나를 휘감았네


시베리아 바람이

아니면 대체

이 바람이 뭐냐고

투덜대며

한겨울 가운데서

온몸 떨며

스카라 극장에

몸을 숨겼나


1978년 겨울

극장 간판으로 만난

지바고는 내 이상형이라고

내 첫사랑이라고

3시간 넘는 상영시간

내 안에서 뭔가 꿈틀거렸던


그 뒤로

러시아 문학

내 안에 조금씩 스며들어

물들기 시작했어

톨스토이보다

도스토옙스키보다

푸시 킨 보다

안톤 체호프보다


내 청춘의

불.

꽃.

은.

파스테르나크

아니

닥터 지바고

아니

오마 샤리프


그의 다차를

둘러보는 내내

내 마음속 BGM은

라흐마니노프

피협 2번 2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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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5 페리델키노 다차, 닥터 지바고의 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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