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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직한 갈매기의 꿈

깃털만큼 가벼운 발자국 남긴...

by 물들래

일출 직전 낙산 해변 걷는다

젖은 모래 위 발자국 찍으며

무거운 내 발자국 옆 V자 흔적

얼마나 가벼우면

이토록 앙증맞게 걸을까

얼마나 가뿐하면

이렇게 눈물겨운 발자국 남길까

나직한 갈매기 흔적 몰래 따라간다

무리에 섞이지 못한 채

나직한 갈매기 혼자 떨어져 있어

청소년기 나를 닮았네

무리에 끼지 못한 게 아니구나

무리를 벗어난 거였어

홀로 있고 싶은 거야

나직한 갈매기에게 순간 감정이입

젊은 날 나의 모습 되살아 나

바닷물에 젖은 모래사장에

깃털만큼 가벼운 발자국 남긴

나직한 갈매기 조심스레 쫓는다


사십여 년 전

젊고 발랄한 친구와

낙산 해변 깔깔거리며 걷다가

자유시간 살짝 지나서 주차장 도착하니

우리 남겨둔 채 고속버스 떠나버렸어

그 시절 젊고 발랄했던 친구

시름시름 앓으며 그때 그리워하지

그 시기 젊고 우울했던 나

나직한 갈매기에게 계속 감정이입

어둠 걷히지 않은 동쪽 먹구름 보며

멀리 남향 마을 사는 친구 궁금하다

일출 향해 연신 카메라 사진 찍던

젊은 여성도 나처럼 홀로 여행객

낙산 해변에서 어깨 스치며 나눈 인연

서로서로 사려 깃든 무언으로 남는다


나직한 갈매기 가볍게

눈앞에서 파드닥거리며 날개 펼치네

날아라 높이 날아라

높이 나는 게 꿈이었던 조나단처럼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볼 수 있다잖아

그런데 말이야

가장 멀리 보는 새가 있으면

중간 높이에서 보는 새도 괜찮잖아

낮은 곳에서 보는 새가 더해지면

풍경이 더 충만한 빛을 발할걸

숲을 보는 사람이 있으면

나무 한 그루, 꽃 한 송이 보는 사람 있듯

풍경 하나보다 두 개, 세 개 더해지면 좋잖아

어우러지진 풍경은 더 아름다울 테니


그런데 말이야

낙산 해변에서 꾼 꿈에서

많은 풍경과 사람들을 만났거든

왜 기억이 하나도 안 나지

시간 들여 공들여 찬찬히 생각하면 기억날까

그래 보려고 지금부터 꿈을 부르듯 더듬어 보려고

닐 다이아몬드가 장엄하게 외쳐 부르네! 갈매기의 꿈을

깃털만큼 가벼운 발자국 남긴

나직한 갈매기 꿈은 스산하게 아름다운 꿈일 거야

나직한 갈매기의 꿈도 노랫말 속에 담겨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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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2 화요일 낙산 해변 일출 직전 직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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