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miss Dharamsala

기억하는 것은 같은 공간을 다시 여행하는 것

by 물들래

거의 아홉 시간에 달하는 버스여행 끝에 비가 쏟아지는 Lower Dharamsala의 저녁풍경과 만났다.


하루 종일 물과 몇 개의 과일로 식사를 대신하고 제대로 된 음식을 못 먹어서일까? 버스정거장 우측에 위치해 있는 Lower Dharamsala를 향한 계단을 오르는데 대략 난감했다. 무거운 배낭에 어깨는 빠개지는 것 같았고 현기증에 구토 증상까지 몰려왔다.


금방 쓰러질 것 같아 거리에 주차해 놓은 아무 차에나 기대섰다. 잠시 정신을 가다듬고 몸을 곧추세우니 비 내리는 다람살라의 어둠 사이로 뿜어져 나오는 저녁불빛이 시야에 들어왔다.


"아, 이게 이 긴 여정의 마지막 장소였으면 좋겠다."


는 생각이 들 만큼 다람살라로 오기까지의 버스여행은 나를 지치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한 달 이상의 여행에서 이 정도(아홉 시간)의 버스여행은 약과란 사실을 알게 되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다음 여행지였던 스리나가르를 향한 차 안에서의 시간은 그보다 일곱 시간을 더한 열여섯 시간이 넘었으니까.


다람살라의 밤은 무척 추웠다. 며칠 동안 끈적거렸던 열기와는 달리 습하고 찬 밤공기에 우리 모녀는 꼭 껴안고 잠이 들었다.


추워서였을까? 일찍 눈을 떴다. 이른 새벽 다람살라의 전경을 테라스를 통해 만난 나는 거의 입을 다물지 못했다. 몽환적으로 느껴지던 비구름이 덮여있던 새벽 풍경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꿈결처럼 촉촉한 아침 풍경을 이곳, 다람살라에서 4박 5일을 머무는 동안 내내 만날 수 있었다.


다람살라 맥레오드 간지(Upper Dharamsala)에서 우리 모녀는 그린 게스트하우스에 묵었는데 비교적 비싼 더블룸(Rs250)을 3일 이상 머문다는 조건으로 Rs225에 잡았다. 다행히 뜨거운 물 샤워가 가능했고, 전망 역시 좋았다.

좌측에 보이는 녹색 건물이 우리가 4박 5일간 묵었던 그린 게스트하우 & 티베트 임시정부

다람살라는 티베트 임시정부이며 문화의 중심지이다. 무엇보다 세계 각국의 젊은이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던 장소였다. 맥레오드 간지 광장에 잠시 서 있노라면, 내가 유럽의 어느 작은 도시 광장에 서 있는 착각이 들 정도로 다국적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달라이 라마를 만날 수 있는 8월에 이곳을 방문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게도 달라이 라마는 우리가 방문했던 그 시기에, 라다크 지방 여행 중이라고 했다. 그 아쉬움을 달라이 라마의 발길이 수없이 오갔을 저택 앞에서 기념사진 한 장 남기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우리의 모습과 무척이나 닮은 티베탄들의 친절함에 그간 끔찍했던 고생들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특히 다람살라가 좋았던 것은, 그곳 티베탄 음식이 내 입맛에 잘 맞았기 때문이다. 한국의 만둣국과 비슷한 맛의 모모와 뜨거운 국물로 요기를 하고 나니,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해 지쳐있던 몸이 회복되는 것 같았다. 날씨와 전망도 마음에 들었지만, 비교적 입맛에 맞았던 음식들로 며칠 동안 나는 진정, 행복했다. 식사 때마다 티베트식, 일식, 중국식, 한국식 식당을 입맛껏 찾아다닐 수 있었던 게 무엇보다 즐거웠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이 새록새록 실감 날 정도로 먹는 즐거움에 흠뻑 빠졌으니까.


꿀루와 마날리의 서쪽에 위치해 있는 이곳 다람살라는 날씨가 맑으면 만년설을 아름답게 떠받치고 있는 히말라야의 아름다운 풍광도 만날 수 있어서 많은 여행객들이 찾는 도시로 유명했다.


가장 오래 머물고 싶은 인도의 도시 중, 많은 여행객들은 다람살라를 꼽곤 했다. 물론, 나도 다람살라의 아름다운 풍광에 마음을 빼앗겼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다람살라는 오랫동안 머물고 싶은 곳이기도 하지만 기억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풍경들도 함께 자리 잡은 도시다.


다람살라 하면, 우선 격리시켜 놓지 않은 나병환자들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습하고 칙칙한 날씨에 골목길 모퉁이에서 어김없이 만났던, 남루한 행색을 한 그들의 희망을 잃은 눈빛. 그냥 앉은 자세로 손을 내밀고 구걸을 하던 그네들의 얼굴빛. 처음부터 나는 그들을 외면하지 못했다. 때로는 몇 루피의 동전을 그들의 문드러진 손 위에 건네주기도 했고, 먼발치에서 그들의 모습을 드러나지 않게 살피기도 했다.


인도 여행을 떠나기 한 해 전에, 가족과 함께 소록도 여행을 떠났을 때, 외부에서 단 한 명의 나병환자도 만나지 못했다. 그런데 이렇게 지척거리에서 나병환자를 마주했다는 게 사뭇 충격적이었다. 그래서일까. 비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삶에 대한 의욕을 상실한 듯한 그들의 눈빛이 아프게 떠오르곤 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도 봄비 내리는 바깥 날씨가 다람살라의 나병환자들을 떠올리게 했다.


또 하나의 풍경은, 징그럽고 끔찍하게 달라붙던 걸인 가족들이었다. 달호수로 향하던 진, 은비, 내 앞으로 한 걸인 가족이 달려들었다. 적선을 노골적으로 요구하던 그들. 단호하게, '싫다'라는 의사 표명을 했으나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우리 셋을 계속 따라다녔다.


앞에서 정신을 빼놓고 지갑을 빼 간다는 정보를 이미 들었던 터라, 나는 가방을 두 손으로 감싸고 빠른 걸음으로 달호수 쪽으로 움직였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네 걸음보다 더 앞서서 우리 앞을 가로막아 서서 손을 내밀었다. 걸인들에게, 적선을 못할망정 결코 화를 내거나 짜증은 내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참기 어려울 정도로 끈질기게 따라붙으며 신체 접촉까지 불사하는 그네들의 행위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소리를 버럭 지르고 돌아서서, 근처의 택시를 타려고 하는데 거기까지 쫓아오는 그들에게 진저리가 쳐졌다. 택시 기사가 고함을 치자, 그때야 비굴하기도 하고 정신 나가 보이는 듯한 묘한 웃음을 지으면서 멀어져 갔다.


그런데 아뿔싸. 어느새, 진이의 가방에서 지갑을 빼내간 후였다. 다행히 중요한 물건들을 잊어버리진 않아서 다행이었지만, 걸인이라고 다 같은 걸인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로도, 우리 모녀는 가끔 지독하게 따라붙는 걸인들을 종종 만나서 곤욕을 치르곤 했다. 달호수까지 천천히 걸으며 산책을 즐기려고 마음먹고 나왔다가 졸지에 택시를 타게 된, 우리 셋은 엉망이 된 기분으로 달호수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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