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서드 연기

by 물들래

2018년 가을, '에쿠우스' 공연이 전박찬과의 첫 만남이야

알런으로 분한 전박찬의 열연 앞에서 얼얼했던 순간을 기억해

작중 인물을 완벽히 재현한 메서드 연기로 전박찬은 없고 알런만 존재했지


그런데 알고 보니 전박찬과의 첫 만남은 2015년 '맨 끝줄 소년' 공연이었어

기억이 맞다면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에서 클라우디오로 분했었지

아무 정보 없이 제목에 꽂혀서 관람한 연극에서 만난 소년이 전박찬이었다니

난 그저 잘 쓰고 싶었을 뿐이에요, 그 대사의 주인공이었다니 놀라웠어

스펙트럼이 넓고 큰 배우구나, 스페인 작가 후안 마요르가의 희곡이었어

2013년 프랑소와 오종이 영화로 먼저 소개한 작품이기도 하지

그러니까 '에쿠우스'는 그와의 두 번째 만남인 셈이지


전박찬과의 세 번째 만남은 '거미여인의 키스'

자신을 여자라 믿는 낭만적 감성의 소유자 몰리나로 분한 전박찬의 뜨거운 무대를 기억해

무대 1열에 앉아서 2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를 만큼 몰입해서 관람했어

앞 열에 앉은 관계로 전박찬과, 아니 몰리나와 눈 맞춤이 여러 차례, 눈빛이 그토록 빛나는 배우라니

또렷한 딕션은 물론 온몸이 몰리나, 그 자체여서 소름이 돋았어

교도소 룸메이트 발렌틴에게 표범 여인에 관한 영화 이야기할 때의 표정과

아픈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토로하던 장면이 기억에 오래 남았지

관람을 마치고 귀가해서 곧바로 책장에 꽂힌 <거미여인의 키스>를 펼쳤어

예술이 우리를 사랑하듯 발렌틴은 진심으로 몰리나를 사랑했던 거야

무시당하면서 살지 않겠다고 약속해 달라던 발렌틴의 대사가 마음을 울렸어


전박찬과의 네 번째 만남은 '이방인'이야

태양 앞에서의 뫼르소를, 법정에서의 뫼르소를 오롯이 뫼르소로만 열연했어

공연이 시작되기 전 주변에서 느껴지는 멜랑콜리 한 향수는 언제나 설렘을 동반하지

설렘의 시작부터 공연이 끝난 후 귀가해서 간단 리뷰라도 기록하는 순간까지

이후 문득문득 연극 속 대사가, 원작 속 작가의 예리한 문체가 기억나는 순간에도 공연은 이어지는 거야

많은 대사와 원작의 문체와 기억과 공간 속 공기를 떠올릴 때마다 예술감상자의 마음은 부유해지지

전박찬과의 다섯 번째 만남은 '서울도서관' 낭독회였어

한강의 '소년이 온다' 중 일부를

헤세의 '데미안' 중 일부를 귀에 꽂히는 정확한 음색으로 낭독했어

전박찬의 음색으로 작품을 듣고 나면 원작을 마주하고 싶어져

읽고 있노라면 전박찬의 목소리가 들리는 거야

책장에 꽂힌 '이방인'을 펼쳐 들고 뫼르소를 만나는 중이야

흐린 밤하늘에도 시간이 흐르면 뫼르소가 놀랄만한 태양이 하늘로 솟아오르겠지

내일은 내일의 대사가 떠오를 거야

클라우디오의

알런의

몰리나의

뫼르소의

소년의

데미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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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끝줄 소년>의 클라우디오 & <에쿠우스>의 알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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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여인의 키스>의 몰리나 & <이방인>의 뫼르소 & 낭독회에서 <소년이 온다>를 낭독하는 전박찬 / 사진 출처: 네이버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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