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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들래 Apr 16. 2023

해 질 녘, 아그라

Will not forget time with banti.

일몰 직 전, 평화롭게 무리 지어 날아다니던 비둘기 떼들. 그 주위 옥상으로 번잡하게 돌아다니던 원숭이들. 타지마할 정원을 거닐며 수없이 만났던 다람쥐들이 카페 옥상에서도 잽싸게 돌아다녔다.  


어느 곳에서나 저녁시간이면 펼쳐지는 풍경들, 서늘한 골목길을 왁자지껄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소리가 골목에 생기를 더했다. 해 질 무렵 풍경은 어느 곳이나 비슷했다. 골목에서 울려 퍼지던 꼬마들의 아우성, 독특한 놀이를 즐기는 소리, 저녁 짓는 냄새와 평화로움, 하늘색 교복에 하얀 머플러를 날리며 귀가를 서두르는 여학생, 학생들이 메고 있던 다양한 가방 모양, '볼펜' '볼펜'하며 달라붙던 귀여운 아이들의 눈망울을 떠올리던 바로 그 순간, 내 앞에 앉아있던 일본 여성이 감탄사를 연발한다. 일본어로 내뱉은 감탄사였는데 그 또한 석양만큼 찬란하고 몽글몽글하게 귓가에 흩뿌려지는 느낌이었다.

한나절이 일몰 속으로 조용히 침잠해 가고 있었다. 그 노을빛이 감싸 안고 있던 타지마할을 마주한 내 시선은 바로, 꿈속 어느 낯선 거리를 거니는 기분이었다. 우리는 그 옥외 카페에서 저녁 여덟 시 가까울 때까지 머물렀다. 서늘한 바람이 끈적거리던 땀을 모두 증발시켜 주었다.


옥외 카페에서 반티에게 물었다. 멀리 보이는 성처럼 생긴 멋진 건물 대체 무어냐고? 별 일곱 개의 호텔이란다. 하룻밤을 묵는데 2,000불이란다. 2,000루피 아니냐고 되물었더니, 아니란다. 2,000불이란다. 2,000불짜리 호텔이 있는 도시, 아그라. 그동안 우리가 묵었던 숙소와 격심한 차이가 느껴졌다. 


이제 바라나시행 야간열차를 타기 위해, 우리는 아그라 역으로 이동해야 한다. 반티의 오토릭샤를 타고, 빠듯한 기차 시간에 맞추어 우리의 첫 만남이 이루어졌던 아그라 역에 도착했다. 그와 약속한 250루피를 건네고, 악수했다. 


 '조심하고, 행운이 함께하길.'


그가 다정하게 우리 모녀의 앞으로의 여행을 격려해 주었다. 정말 고마웠던 친구, 반티! 


500루피짜리 말고 잔돈이 있었다면 팁을 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건만. 그와 이메일 주소를 주고받았으니, 고마운 마음을 나중에 또 전달할 수 있으리라. 아침부터 저녁까지 한나절을 보낸 아그라였지만 그곳에서 반티와 함께 보냈던 시간을 우리 모녀는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Will not forget time with banty.


아그라에서 바라나시행 에어컨 열차 1인 요금 Rs 697. 거금을 치르고 탄 기차답게 끈적거렸던 피부가 금세 뽀송해졌다. 우리 모녀는 3층 우리의 침대칸으로 자리를 옮겨 은비의 요구대로 서로 마주 보고 밤새 이야기를 나누면서 보내려고 했는데 내 체력의 한계로 말미암아 먼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아마, 내가 잠든 밤 열차 안에서 은비도 잠시 상념에 잠기다가 잠이 들었으리라. 새벽 일찍 일어나 우리 모녀는 열차 내에서 세면을 마치고 혼돈의 도시 바라나시의 아침을 열차 차창으로 제일 먼저 만났다.

잊을 수 없었던 바라나시행 열차 안에서 반짝반짝 웃고 있던 은비, 우리 모녀의 젊은 날의 추억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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