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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들래 Apr 20. 2023

혼돈의 도시, 바라나시

미친놈의 정전, 뻥 안치고 하루에 스무 번

기차역에서 열차 차창으로 만난 이른 아침 분주해 보이는 바라나시 풍경이다.

이곳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느낀 것은, 더워서 미칠 지경이었다는 것. 아그라에서 바라나시로 향하는 열네 시간에 달하는 에어컨 야간열차에서 바라나시역에 몸을 부렸을 때의 그 숨 막히는 열기를 어찌 표현하랴? 이곳에서 며칠을 버틸 수 있을까? 바라나시에서 '혼돈'의 의미를 확실하게 체험할 수 있었다.


바라나시를 헤매다가 구시가지의 산티 게스트 하우스(숙박료 Rs: 200) 5층 숙소를 잡았는데 수시로 도마뱀과 원숭이들이 숙소 창가로 어른거렸다. 처음엔 많이 놀랐지만 머무는 동안 도마뱀과 원숭이 모두 친구가 된 느낌이랄꺼. 웬만한 곤충이나 벌레를 보아도 그리 놀라지 않는 단계에 이르렀다.


숙소 옥외 테라스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그 자리에서 가트의 하루를 눈으로 사냥했다. 끈적거리는 열감, 적응이 쉽지 않은 음식냄새, 수많은 사람들의 체취, 시신의 냄새를 덮는 진한 향, 혹독한 더위에 기승을 부리던 파리떼들, 혼돈의 도시 안에 뒤섞인 다국적 인간들. 그 사이에 섞여서 지금 여기 있는 나는 대체 누구인가. 어떻게 여기까지 흘러오게 되었는가. 당장이라도 벗어나고 싶었던 도시에서 요지부동 앉아있는 나는 지금 여기에서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건가.


하늘과 땅이 나누어지기 전의 상태, 너무 뒤얽혀서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상태가 어떤 건지 궁금하다면 바라나시에서 한나절만 보내 보아라. 미로 찾기 하듯 교묘하게 엇갈려 있는 구시가지 골목길을 헤매고, 또 헤매며 혼돈의 도시 바라나시의 세계에 제대로 입문하게 될 것이다.


미로 같은 골목길을 몇 번이나 걸었던가? 그 길 끝 어디쯤에선가 만난 가트. 여자시체 한 구가 이미 장작더미 위에 올려져 화염에 휩싸여 있었다. 얼마나 많은 향을 뿌린 걸까? 끔찍하게 무더운 한여름 한낮임에도 주검에서 고약한 냄새가 나지는 않았다.


활활 타는 장작더미의 불길에 시선을 고정한 채 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순간, 시신의 한쪽 팔이 타지 않은 채로 장작더미 옆으로 떨어졌다. 순간, 현실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문득 시신을 태우는 과정을 보며 시체에서 알 수 없는 힘이 뻗어 나와 자신을 끌어당기는 것 같다고 했던 어느 작가의 표현이 생각났다. 


좋은 나무일수록 불꽃이 세고 화장 시간이 짧다고 했던가. 24시간 내내 불길이 이어지는 가트에서, 자신의 시신을 다 태울 수 있는 장작을 마련하고 죽는 게 소망이라고 했던 그들. 불꽃을 바라보며 간절히 바랐다. 떠나는 이가 이승의 짐을 모두 벗어버리고 가볍고 평화롭게 떠나기를. 


다 태운 재를 갠지스 강가에 뿌릴 수 있다면 그 죽음이야말로 행복한 것이라고 했던가. 장작이 부족해서 태우지 못하고 남은 시신을 그냥 강가로 떠내려 보낼 수밖에 없다면 그 죽음은 불행한 죽음인 걸까. 죽음은 다 똑같은 죽음이지 않은가. 남아있는 자의 시선으로 내린 결론이지 않은가. 죽은 자는 말이 없는데 말이다.


가까운 위치에서 온종일 시신 태우는 광경을 보면서도 기괴하다거나 무섭다는 기분이 거의 들지 않았다. 도시가 주는 힘이었을까? 아니면 이 혼돈의 도시에서는 삶에 달관한 듯한 자세가 자연스럽게 전염되는 걸까? 그저 머릿속이 백지가 된 기분이었다. 이 혼돈의 도시에서는 왠지 죽음이 두렵지 않았다. 그저 알 수 없는 고요한 울림이 평화롭게 마음 언저리를 다독여 주었다.

바라나시. 이 도시에서는 사람이 살고 죽는 것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이곳 사람들은 자기가 죽을 날을 두려워하지 않고 기다리는 것 같다. 새벽, 일출 직후 갠지스 강가를 산책하며 두 구의 주검을 태우는 것을 보았다. 시체를 하루종일 장작으로 태우고 강가에 뿌리는 장소. 생과 사가, 함께 공존하는 도시 바라나시는 갠지스강과 함께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생명이 끝난 것들의 모든 것은 갠지스 강가로 흘러간다. 모든 죽은 것들과 산 것들을 포용하는 그 강물은 바라나시 사람들의 성수이기도 하다. 그 물에 목욕을 하고 세수를 하고 양치를 하고 빨래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내 마음속은 그야말로 진정 혼돈이다. 


여러 가지로 낙후되긴 했어도 인도인들의 삶이 어쩌면 문명의 이기를 누리는 우리의 삶보다 행복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적어도 '죽음'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다. 죽음, 삶, 혼돈, 소음, 어지러움, 끔찍한 더위, 내 앞으로 흘러가는 여러 색의 구름안개. 그게 바로 바라나시에 대한 기억의 총체이다. 처음엔 분명하게 시각과 후각, 청각으로 느껴지다가 촉각과 미각으로까지 퍼져오는. 그러다 어느 순간 다시 흩어지는가 싶다가는 순식간에 오감을 자극하고 어디론가 날아가는 것 같았다.


어느 날, 끔찍한 더위를 잠시 피해 들렀던 인터넷 카페에서 모처럼 더위를 피한 상태로 몇 시간을 머문 적이 있었다. 카페 창밖으로 간헐적으로 운반되는 주검을 지켜보았다. 허접한 대나무로 엮은 운구에 시체를 올려놓고, 진한 향료를 뿌린 후 네 명의 사람들이 수시로 운반하고 있었다. 

신비로운 기운이 감도는 일몰즈음, 갠지스 강 여신에게 바치는 '아르띠 뿌자, Aarti Pooja' 의식은 방울소리와 주문으로 갠지스 강가를 가득 메워나갔다. (아르띠는 불의 신, 뿌자는 기도 및 힌두교 의식)


힌두신앙에서는 강가 성스로운 물로 목욕을 하면 죄가 씻기고, 시신의 재를 강가에 흘려보내면 해탈을 얻는다고 했던가. 


어쩌면 다시 태어나지 않는 게 가장 평화로운 죽음이 아닐까. 이승에서 살아낸 삶의 무게를 다시 짊어지고 싶어 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갠지스 강 앞에서 이어지던 생각의 꼬리를 멈출 수가 없었다. 

한밤중 전기가 끊겼을 때의 그 당혹감이라니 그 깜깜한 어둠 속에서 곧 숨통이 막혀버릴 것 같았던 순간들. 창문이라도 열어 놓으면 수많은 하루살이와 모기떼들의 습격에 오로지 천장에 매달린 팬 하나에 몸을 맡기고 거의 날밤을 새다시피 했다. 어느 순간 정전되더니 그 팬마저 멈춰 버렸다.


우리 모녀는 그 암흑 같은 어둠에서 숨을 할딱거리며 보내야 했다. 한 마디로 공포의 순간이었다. 어떤 이가 써 놓은 글이 생각났다.


'미친놈의 정전, 뻥 안치고 하루에 스무 번.'


그래도 새벽은 찾아왔다. 5:30' 기상, 이미 해는 솟았고. 어떻게 잠을 잤는지도 모르겠다, 혼돈의 꿈을 꾸고, 혼돈의 마음이어도 아침은 밝아왔다. 조물주의 위대함이라니. 경배를 드리나이다.


숙소 창으로 바라본 바라나시 이른 아침 하늘 풍경이다. 이날 아침도 끔찍하게 더울 것 같은 예감이다. 그래도 덜 강렬한 햇빛 사이를 뚫고 이른 아침, 가트 산책을 나섰다. 얼마쯤 걸었을까?


일출 후 이미 뜨거워질 대로 뜨거워진 태양은 내 머리통을 사정없이 내리 쏘아대고 있었다. 단지 조용히 걸을 뿐이었는데도 온몸에 땀이 솟구쳤다.


황금사원으로 가는 길. 이른 새벽에 어디에서 쏟아져 나오는 인파였을까? 끝을 알 수 없는 인파들이 황금사원으로 쏟아져 들어가고, 쏟아져 나왔다.


행렬들의 손에 쥐어졌던 현란한 주홍색 꽃과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배설물을 피해 가며 걸어야 했던 골목길, 인파의 사이를 뚫고 가운데 길을 점령한 채 꼬리를 사정없이 흔들어댔던 살찐 흰 소. 그의 꼬리에 옆구리며 엉덩이를 몇 차례 맞고, 미로 같은 골목길을 헤맸던 기억이 사진 몇 장만으로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 미로 같은 골목길에 전혀 생소한 빛들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교복을 입고 단정하게 빗어 넘긴 머리에 환하게 미소 짓는 아이들의 생기 넘치는 표정이었다. 산책 중 공부하던 소년의 순진한 모습과 마주치자 밝은 표정으로 미소 짓던 아이의 얼굴 위로 타고르의 시구가 음표처럼 번졌다.



나는 이 세상의 축제에 초대받았습니다. 

그렇게 내 삶은 축복받았습니다. 

내 눈은 보았고, 내 귀는 들었습니다. 

이 축제에서 내가 맡은 일은 나의 악기를 연주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최선을 다해 연주했습니다.



아이들의 미소는 축제처럼 반갑다. 그들의 미소를 마주하고 있는 순간은 축복이었다. 그들의 미소를 보았고, 재잘거림을 들었으니 오늘 하루도 내게 주어진 삶을 연주해 나가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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