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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들래 Apr 21. 2023

천 개의 얼굴, India

죽음도 삶도 흐르는 도시, 바라나시

일몰 직전, 보트를 타고 가트를 돌았다. 해넘이 직 전과 직 후의 갠지스강을 보고 싶어서 그 시간대에 맞추어 보팅을 즐기기로 했다. 편하게 노를 젓는 선주의 보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갠지스를 따라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가트를 둘러보면서 석양빛에 온몸을 물들였다.


보팅 한 시간 요금: Rs 100.

비쉬와나트 사원, 마니까르니까 가트(Ghat, 화장터), 다샤쉬와메드 가트, 라나 가트. 한 시간을 가트 주변을 왕복하며 바라나시의 또 다른 풍경을 좀 더 가까이서 만나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강변에서부터 계단으로 되어 있는 가트는 물에 잠겨 있는 제방으로 목욕하는 장소로 쓰이며, 힌두교인들의 화장터로도 이용되고 있었다.


우리가 탄 배의 선주는 자기가 총각이며 원한다면 딸아이에게 자신과 결혼할 수 있다고 했다. 자기의 사진을 보여주며 실물보다 훨씬 잘 나온 자기를 가리키며 누구냐고 물었다. 너 아니냐고 했더니 맞단다. 정말 우스웠다.

배 위에서도 화장터를 벗어날 순 없었다. 배 위에서도 시신 태우는 광경을 하릴없이 바라보아야 했다. 보팅을 하는 이유가 영혼을 싣고 오르는 연기를 배웅하는 일이라는 듯. 새벽 산책에서 느꼈던 것과는 또 다른 감상들이 뒤죽박죽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흔들어댔다. 언어화하여 입 밖으로 뱉을 수 있는 말을 찾기가 어려웠다. 그저 수없이 많은 사유의 활자가 머릿속에서 축제를 벌이고 있었다.


혼돈, 바라나시, chaos, Varanasi, 혼돈, 바라나시, chaos, Varanasi, 혼돈, 바라나시.


인도의 젖줄, 생명의 강이자 어머니의 강으로 가장 신성한 곳 강가! 시신을 방금 담갔다가 꺼낸 물에 옷을 벗고 웃으면서 뛰어들며 수영을 즐기는 아이들. 그 물을 성수라며 입안을 헹구는 노 젓는 뱃사람들. 둥둥 떠다니는 소 시체와 시신을 태운 잿가루, 그리고 다 태우지 못하고 남은 신체의 일부까지. 그 모든 것을 삶의 한 부분으로 끌어안고 죽음을 받아들였다. 그것이 곧 혼돈의 도시, 바라나시의 모습이었다.

'아! 그래. 이들은 죽음이 생의 마지막이 아니라, 삶의 한 부분일 뿐이야.'


삶을 받아들이는 그들의 초연한 모습을 보며 만감이 교차했다. 열차에서 내려 오토릭샤를 타고 거리를 달렸을 때의 첫인상처럼 끔찍한 공간으로만 기억되지는 않으리라. 하루, 이틀이 지나자 숙소를 잡기 위해 헤맸던 첫날의 악몽들에서 서서히 벗어나 바라나시의 독특하고 미묘한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가트를 돌면서 우리 모녀는 그저 침묵한 채 앉아 있었다. 그 시간, 유일한 변화가 있었다면 노을이 서서히 우리의 얼굴을 오렌지빛으로 물들였다가 보라색으로 변색시켰다가 다시 어둠의 색으로 채색해 주었다는 것 정도. 그저 고요하게 흔들리는 갠지스의 잔물결처럼 차분하게 마음이 정돈되는 시간이었다. 종교적인 정서가 완연하게 감돌았던 일몰 직후부터 저녁의 어스름을 느낄 때까지의 청회색 평화가 감돌았던 그 시간이 지금은 사뭇 그리워지기까지 했다.


바라나시에서의 또 다른 어느 날 아침, 가트에 서서 일출 풍경과 어우러진 갠지스의 고요한 수면 아래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들을 상상해 보았다. 이승에서의 삶을 끝내고 가라앉은 것들의 집합체. 그것들은 각자 흘러가다 더러는 가라앉을 것이고 다시 부딪치다 부유할 것이며 또다시 흐를 것이다. 그렇다면 수면 위에서의 우리의 삶과 무엇이 다른가? 삶과 죽음은 동일선상에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수면 위에서 아우성으로 요동치는 삶과 수면 아래에서 고요한 외침으로 끊임없이 순환하는, 그 둘을 포용하는 바라나시는 삶과 죽음의 교집합, 삶과 죽음 사이의 생존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도시임에 틀림없다.  

바라나시에 장기체류자가 가장 많다고 해서 처음엔 의아했는데 조금씩 감이 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이곳에서 결코 오래 체류할 수 없는 체질이란 감이 오기 시작했다. 그 감을 깔끔하게 표현하기란 곤란했다. 인도의 특징은 무엇도 분명하고 확실하게 표현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산티 5층 숙소에서 아침 일찍 창가에 기대앉아서 맞은편 옥상에서 만난 아름다웠던 풍경이 떠올랐다. 옥상에 요를 깔고 잠들어 있던 한 가족의 평화로운 풍경과 만났다. 아. 저 가족들은 쏟아지는 별을 보며 저렇게 매일 밤마다 잠이 드는 모양이야. 더운 나라에서 시원한 밤을 만들어가는 삶의 지혜를 보았다고 할까? 발바닥이 모포 밖으로 나와있는 그들의 모습이 정겹고도 단란한 가정의 전형처럼 느껴졌다.

무수히 많은 골목 중 어느 골목으로 들어서서 얼마쯤 걷다 보면 라가(Laga)란 카페가 얼굴을 내밀었다. 한국인 부부가 운영하는 한국음식 카페였다. 이층 카페에 들어서자, 국적을 가늠하기 어려운 음악이 흘렀다. 그러나 마음속을 묘하게 울렁거리게 하는 산산한 선율이었다. 몸과 마음을 음악에 맡기고 쿠션에 기대어 몸을 누였다.


누군가의 담배연기가 그 음악 선율을 따라 흘렀다. 바라나시. 이곳의 느낌은 모든 것이 '흐른다' 혹은 '흐르고 있다'이다. 글쎄? 흐른다는 표현보다 더 적확한 표현이 있을까?


라가에서 우리 모녀는 야채 죽과 고추장을 듬뿍 넣은 비빔밥을 주문해서 먹었다. 더위에 지친 우리의 육신이 조금씩 원기를 되찾아 가고 있었다.


친숙하게 느껴지는 한국인들이 많아서일까? 마음이 편안해졌다. 라가에 들렀던 많은 여행객들이 써 놓은 노트 몇 권을 펼쳐 보았다. 한 장기 여행자가 써 놓은 글이 인상적이었다.


'남으로 인해 행복해지지 말고 남으로 인해 슬퍼하지 말자.

아무리 가까워도 떠나면 잊어버리자. 그게 내가 가진 생각.'


공감이 갔던 또 다른 기록 몇 개.


'인도엔 천국과 지옥이 함께 공존한다.'

'India is just India.'

'길에서 만난 사람은 길에서 헤어지는 것이 좋다.'

'오늘 땀 2,563 바가지. 똥 못 쌈. 콜라 2병. 인도에서 마신 콜라 총 10,263병.'




바라나시에서 머물던 어느 날 저녁. 산티게스트하우스 옥외 레스토랑에서, 혼자 여행하는 건강하고 멋진 청년 H를 만났다. 그는 다음날 아그라에 들렀다가 자이푸르로 이동한다고 했다. 저녁시간, 그 청년과 함께 맥주 한 잔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정신이 건강한 청년이었다. 내 아들의 몇 년 후 모습을 H의 얼굴에서 엿본 듯했다. 아들 녀석에게 인도여행 해 볼 것을 권하고 싶을 정도로 인도는 묘한 마력 같은 매력이 있다.


산티옥외레스토랑에서의 맥주 한 병 값은 Rs 80이다. 예리한 H는 내게 맥주값으로 얼마를 주었느냐고 물었다. 80루피라고 했더니 서빙하는 현지인을 불렀다. 너 왜 속였느냐고 하니까, 셔츠 윗주머니에서 20루피를 건네며 뻔뻔스럽게 미안하다고 했다. 전혀 미안하지 않은 얼굴로 말이다. 아마 가끔 맥주값을 손님 봐가며 사기 치는 모양이었다.


인간의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해 볼 수 있는 여행지 중, '바라나시'가 그 대표적인 도시가 아닐까 싶다. 끔찍한 더위와 싸우면서 걷다 보면 머릿속을 짓누르는 통증이 찾아오기도 했다. 때로는 주변에서 윙윙거리는 바라나시의 특별한 소리가 온몸을 덮쳐오듯 휘몰아치곤 했다. 실제로 걸으면서도 악몽 속을 걷는 것 같을 때가 있었고, 비현실적인 어느 공간에 나만 떨어트려놓은 것 같은 착각이 일기도 했다. 현실임에도 비현실적인 공간으로 착각하거나, 실제인데 꿈으로 착각할 때가 있었다. 뒤죽박죽 일상이다. 그게 바로 혼돈의 도시, 바라나시에서의 일상이었다.


어쨌거나, 바라나시에서 깨달은 것은 버리는 것의 미덕이었다. 이 도시에서 마음에 엉겨 붙은 불순물을 가능한 한 제거해 나가고 싶었다. 때때로 무엇을 반성하고 사유하는 여행이기보다는 마음속의 응어리들을 모두 끄집어내서 갠지스 강가에 던져버리는 여행이길 소망했다.




바라나시에서의 마지막 날 오후. 오토릭샤를 잡았다. 무갈 사라이역까지 가격(Rs 110)을 흥정하고 어제와는 또 다르게 느껴졌던 거리풍경을 바라보며 달렸다. 언뜻 고개를 돌린 릭샤꾼의 이빨이 시뻘건 핏빛으로 번쩍거렸다. 아마도 식 후에 씹는 '판'이라는 청향제 탓이리라. 오토릭샤를 달리며 그가 얼굴을 돌리고 입에서 내뱉은 건 흡사 핏물 같았다. 인도를 여행하면서 자주 만났던 그 광경이 아직까지도 너무나 기이하게 떠올랐다. 처음엔 그 광경을 보고 얼마나 놀랬는지 밤잠을 설칠 지경이었다.


릭샤꾼이 얼마쯤 더 달렸을까? 주홍빛 성화를 사들고 자신이 섬기는 신이 새겨진 형상 앞에서 멈춰 섰다. 성화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고, 기이한 모습을 한 신의 형상 주위엔 온통 파리떼들이 꼬여있었다. 그런 곳에서 그는 준비한 성화를 던지고 경배를 했다.


단지, 그의 종교로 단순히 받아들이기엔 너무나 엽기적인 무언가가 그 광경 속엔 있었다. 오래도록 나를 혼란스럽게 하기에 충분한 광경이었다. 역시 바라나시다운 풍경이었다.


종교행위란 정결하고 정숙한 분위기에서 경건하게 행해져야 한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어서일까? 내게 그 풍경은 낯설기 그지없었다. 설마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까? 또 혼돈이다.


경배를 마친 그가 릭샤를 타고 얼마나 더 달렸을까? 무갈 사라이역에 도착했다. 무갈 사라이 역은 작은 역사였다. 대로에 당당하게 서있는 역사가 아니라 대로 뒤에 조용히 숨어 있는 역사였다.


그래서였을까? 어떻게 말문을 열어야 할까? 인도 여행 중 최악의 기차역이었다. 가장 많은 거지 떼들과, 가장 희귀한 병자들과, 가장 끔찍한 노숙자들과 가장 지린 기차간 냄새와, 가장 완벽한 공포의 분위기로 우리 모녀에게 지워지지 않는 어두운 기억을 많이 심어준 장소가 바로 무갈 사라이역이었다.


무갈 사라이역에서 뉴 잘빠이구리역(1인 요금: Rs 425)까지 향하는 열아홉 시간의 야간열차를 타고 다시 그 끔찍했던 인도의 냄새와 싸워야 했다.


열차를 타자마자 곧바로 수면을 취할 요량으로 자리를 잡고 누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앞으로 여장을 한 남성들이 축복을 해준다며 머리에 손을 얹으려고 해서 거부했더니 불쾌한 낯빛으로 저주하는 말을 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열차에 수시로 나타나서 여행객들에게 돈을 뜯어내는 '히즈라'다. 히즈라는 여성도 남성도 아닌 제3의 성으로 이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종교, 역사, 사회적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각설하고 히즈라뿐 아니라 끈적거리는 인도남자들의 눈빛을 피해 등을 돌리고 이층 침대칸에서 눈을 감고 억지로 잠을 청했던 시간은 인도여행 중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괴로웠던 기억으로 자리하고 있다.


사실 뉴 잘빠이구리까지 향하는 열아홉 시간의 기차여행을 어떻게 표현할까? 우리 모녀는 조금 과장해서 우리의 모습을 가족들이 봤다면 거지의 행색과 너무 흡사해서 아마 못 알아봤을 거라고 생각했다. 서로의 모습을 마주 보고 자조적인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이지 인도여행은, 우리 모녀를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하게 하는 천 개의 얼굴을 지닌 나라임에 틀림없다. 인도의 대표 시인, 타고르가 내게 속삭였다.



옷이 해질까, 흙먼지로 더럽혀질까 두려워

아이는 세상과 거리를 두고, 움직이는 것조차 겁을 냅니다.

어머니, 화려한 옷과 장식에 둘러싸여 건강한 대지의 흙에서 멀어진다면, 그리하여

평범한 인간 삶의 거대한 축제 마당에 입장할 자격을 잃게 된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입니까?



열차에서 고통스러웠던 열아홉 시간을 견딘 보람이 있었던 걸까? 인도에서 가장 오랫동안 머물고 싶은 장소가 어디냐고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다즐링'이라고 답할 수 있는 그 도시가 바로 코 앞에 있다. 타고르의 시구처럼 '다즐링'이라는 거대한 축제 마당에 입장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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