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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들래 Apr 16. 2023

아그라행 열차에 몸을 싣다

선물 같은 친구, 반티를 만나다!

5:20' 기상. 아그라행 새벽 6시 쾌적한 기차에 탑승하니, 깔끔한 아침 식사와, 스스로 타먹는 달콤한 짜이가 나왔다. 돈이 좋긴 좋았다.


뉴델리에서 아그라행 열차 1인 요금 Rs 370. 고가의 에어컨 기차는 이동시간도 단축될 뿐 아니라 기차 안에서 바라본 차창 밖 아름다운 전원 풍경이 상큼하게 펼쳐졌다. 2시간 30분 정도 달렸을까? 드디어 타지마할의 도시 아그라에 당도했다는 안내방송이 흘렀다.


아그라! 인도를 다녀온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겁을 준 장소라, 타지마할만 보고 곧바로 바라나시로 향할 작정이었다. 그러나 오토릭샤 청년 '반티'를 만난 건 행운이었다.


아그라역 입구에서 오토릭샤를 예약했다. 오토릭샤 운전사가 바로 반티였다. 처음부터 그 청년의 인상은 진실해 보였다. 그러나 그런 진실한 인상과 착한 눈빛의 인도인에게 여러 번 속아 보았기에 우리 모녀는 결코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았다.


반티, 그의 오토릭샤는 우선 아주 깔끔했다. 보통의 릭샤처럼 너저분하지 않았다. 원색적인 신들의 사진도 걸려있지 않았다. 난폭운전으로 릭샤 한 두 곳 정도 흠집 없는 릭샤를 찾기 힘들 정도인데 반티의 릭샤는 아주 깨끗했다. 운전 솜씨 역시 아주 민첩하고 세련됐다.


그가 제안했다. 긴 시간 타지마할을 관광하는데 방해가 될 테니 무거운 배낭을 우선 그가 잘 아는 게스트하우스에 맡겨두고 움직이는 게 어떻겠느냐고. 이 얼마나 합리적인 제안인가? 그를 하루종일 믿어보기로 작정했다. 무거운 배낭 두 개를 게스트하우스에 맡기고 편하게 타지마할로 향했다. 나중에 배낭을 찾으면서 우리는 게스트하우스에 고마운 마음의 표시로 약간의 팁을 건넸다.


그는 타지마할 입구에서도, 그 주변을 거닐며 조심해야 할 것들을 상세히 일러 주었다. 아마도 세 시간이면 충분히 타지마할을 볼 수 있을 거라며, 자신은 릭샤를 주차해 놓은 장소에서 볼일을 보며 기다리겠다고 했다.


타지마할의 입장료는 외국인 관광객이 Rs 750(입장료 Rs 250, ADA: 인도 고고학 국에 지급하는 돈 Rs 500) 현지인들의 입장료가 20루피인데 비하면 엄청나게 비쌌다. 입장 시 철저한 검문검색을 무사히 마치고 설레는 마음으로 타지마할을 만나기 위해 호흡을 가다듬다. (2024년 현재 입장료를 검색해 봤더니 내부관람료 포함 Rs 1,300)

상당히 뜨거운 기온에 하얀 솜구름이 잔뜩 끼어있던 날, 희뿌연 하늘을 배경으로 드러난 타지마할은 금방 말간 세수를 끝낸 것처럼 우윳빛 대리석 얼굴을 우아하게 드러냈다. 순간 넋을 잃을 만큼 아름다운 자태를 내뿜었던 타지마할은 구름의 이동에 따라 흐려졌다가, 다시 가벼운 구름 이동으로 맑은 하늘배경을 뒤로 기품 있는 자태를 보여주는 등 여러 가지 다른 얼굴로 여행객을 맞이했다.


녹색으로 조화를 이루고 펼쳐져 있던 정원을 사이에 두고 멀리서 방문객들에게 하얀 미소를 건네고 있었다. 타지마할과 첫 만남에서 우리 모녀는, 그저.


아!


탄성을 지르고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입구 그늘에 주저앉아 타지마할의 아름다운 자태에 넋을 잃은 상태로 멍하니 바라보는 것 말고는 달리할 일이 없었다.


옆에 앉아있던 여행객들의 대화가 들렸다.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하는 3개의 건축물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타지마할이라고. 나머지 둘은 요르단의 페트라와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라는데... 그러면 이제 요르단으로 날아가 페트라만 마주하면 3개의 건축물을 모두 만나는 셈이구나.

타지마할 입구의 보관소에 신을 벗어서 맡기고 들어가야 했다. 이른 아침부터 강렬한 햇볕에 뜨겁게 데워진 대리석바닥은 발을 제대로 떼어놓지 못할 정도로 뜨거웠지만, 건강에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뜨거운 열기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천천히 타지마할의 가슴을 향해 걸어나갔다.


그리고 천천히 그의 은밀한 내부로 들어섰다. 신을 기념하기 위한 건물도 아니고, 생존하는 인간이 살기 위한 건물도 아닌 단지 죽은 자에게 바쳐진 건축물 타지마할의 내부에 들어서서 찬찬히 둘러보고 있노라니 만감이 교차했다. 한 여자에 대한 샤 자한의 무모할 정도로 강했던 사랑의 힘이 타지마할이라는 걸작품을 탄생시켰으리라.

피에트라 두라(Pietra Dura) 기법의 모자이크 장식을 가까이서 오래도록 들여다보았다. 대리석에 여러 가지 문양을 만들어 그 속에 다양한 색상의 돌과 준보석을 채워서 이루어낸 작품들이었다.


건축광 샤 자한이 무굴 제국의 국력을 쏟아부어 나라의 경제가 많이 기울었다고 하던데. 세계 각지에서 방대한 양의 보석들과 전문 장인들이 모여서 22년에 걸쳐 만들어낸 걸작품, 타지마할! 창과 천장 그리고 지붕과 벽면에 이르기까지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던 타지 마할의 균형 잡힌 구도를 마주했던 순간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감동, 다시 감탄 그 자체였다.


타지마할을 관광하는 외국인에게 엄청나게 비싼 입장료를 챙기는 것을 보면, 타지마할을 건축할 때 들였던 경비를 톡톡히 뽑아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타지마할은 인도의 문화와 경제를 동시에 살리고 있을 뿐 아니라 아그라의 대표 효자 상품으로 진정한 애국을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는 거의 네 시간 가까운 시간 동안 타지마할을 둘러보았다. 우윳빛 건축물을 오래 바라보고 있노라면 몽롱해지기까지 했다. 타지마할 주변을 꿈길을 헤매듯 산책했다. 타지마할 우측 그늘진 기둥에 기대앉았다가 드러누웠다가 야무나 강을 바라보면서 그렇게 마냥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렇게 만났던 푸른 하늘과 하얀 솜구름들. 하루종일 보고 있어도 결코 싫증 날 것 같지 않았던 장소 타지마할.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찬 대리석 위를 맨발로 걸으며 느꼈던 그 화끈거리던 발바닥의 감촉. 입장료가 아깝지 않을 정도로 타지마할은 특별한 사랑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들만큼 멋지고 아름다운 장소였다.


오후 한 시가 넘어서야 반티와 약속한 장소로 이동했다. 그는 기다리고 있었고, 우리는 너무 더운 날씨에 기진맥진한 상태로 릭샤에 올랐다. 우리는 시원한 레스토랑으로 안내해 달라고 했다. 식사 하면서 몇 시간 쉬고 싶다고 했다.


반티는 한 시간 정도는 가능하지만 식당에서, 여러 시간까지는 좀 힘들 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또 제안했다. '내 친구가 보석상을 하는데, 에어컨도 나온다. 이 층에서 편히 휴식을 취할 수 있으니 그곳에서 쉬면 어떠냐고 하기에 또 믿어보기로 했다.


건물은 허름했지만, 그가 말한 친구의 보석상 이 층은 편히 쉴 수 있는 카펫도 깔려 있었고 에어컨이 가동되고 있어서 무척 시원했다. 배가 고파서 식사는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했더니 배달을 시켜준다고 했다.


탈리(1인분 Rs50) 2인분이 배달됐다. 양이 워낙 많아 2인분을 반티와 함께 나누어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예상보다 훨씬 맛있었다. 아그라에서의 진짜 식사다운 식사였기에 지금껏 기억하고 있다.


내가, 그에게


몇 살이냐?

추측해 봐라.

아마도 스물일곱?


놀라며 좀 낮추라고 했다. 그는 스물넷 청년이었다. 내 깐에는 낮추어서 스물일곱이라 한 것이었는데. 인도인들은 대부분 나이보다 더 들어 보인다. 아마도 피부색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식사를 마치고 반티와 대화를 잠시 나누었는데 반티는 자신의 집에 있는 텔레비전이 LG 텔레비전이며 성능이 매우 좋다고 만족해했다. 2002년 월드컵 축구에 대해 관심을 많이 나타냈다. 그와 짧은 대화를 끝내고 나는 편하게 카펫 위에 누워서 휴식을 취했고, 은비는 그간의 여행일기를 정리했다.


두 시간 정도 그곳에서 쉬고, 반티와 함께 아그라성으로 이동했다. 붉은 벽돌의 성, 아그라. 그 돌담 주변을 돌며, 오래전 역사를 더듬어 보았다.

무굴제국, 그 시대 권력의 상징이기도 했던 아그라 성 앞에 섰을 때, 내 기분을 어찌 형언할까? 내 생, 그 이전부터 이루어진 역사의 긴 터널을 지나쳐 지금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낸 이 붉은 권력의 상징 앞에서 만감이 교차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그러나 잠시 후에 맞닥뜨렸던 장면이라니. 권력의 상징인 아그라 성이 무색할 정도로 입구에서는 잡상인들이 판을 치고 있었고, 멀리서 보면 근사하게 보였던 녹색 정원수도 가까이 가서 보니 제대로 관리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아서인지 주변이 무척 지저분했다. 소홀한 만큼 고성에서 느껴지는 쓸쓸함이 더했다. 

결국 삶이란 어떻게 펼쳐질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게 우리네 인생이지 않은가? 앞으로 남은 인도 여행일정이 어떻게 펼쳐질지 전혀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

다시 야무나 강변으로 이동해서, 그곳에서 다시 타지마할을 먼발치에서 조망했다.


반티, 너 여자 친구 있니?

없다.

조만간 네게 여자친구가 생기길 바란다. 그리고 네 여자친구와 꼭 이 야무나 강변의 서늘한 바람길을 따라 석양시간에 맞춰 산책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그가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날리며 그러겠다고 했다. 은비, 나, 반티는 그렇게 야무나 강변에 서 있었다. 그곳에서 보았던 타지마할은 가깝게 보았던 타지마할과 또 다른 느낌으로 내게 다가왔다. 떠난 아내를 사모하며 그리워하는 샤 자한의 마음이 더 애틋하게 느껴졌다고 할까?

그다음으로 또다시 반티는 내 마음을 읽었는지 타지마할을 배경으로 일몰풍경을 보고 싶지 않으냐고 했다. 당연히 너무 보고 싶다고 했더니 그는 친구가 경영하는 숙소 옥외 카페로 안내하고 싶다고 했다. 물론, 대찬성이었다. 다시, 해질녘 타지마할을 조망할 수 있다니 설레지 않겠는가.


누가. 아그라를 무서운 도깨비소굴처럼 이야기했던가? 내겐, 정겹고 아름다운 도시로 기억되는 아그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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