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조천읍도서관

2025년 노벨문학상 수상작을 펼치다

by 물들래

제주 함덕해변은 발걸음 할 때마다 선물 같은 시간을 선사해 주는 곳이다. 제주영화제를 오롯이 즐긴 기념으로 소셜다이닝을 예약했다. 여행지에서 처음 만난 사람 5~6인과 한 테이블에서 이탈리아 요리를 즐겼다. 다양한 이태리 음식보다 사람들과 나눈 여행 이야기가 더 맛있던 시간이었다. 여행자들과 나누는 다국적 여행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흥미진진했다. '식탁'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라타볼라'에서의 소셜다이닝은 저녁 7시에 시작해서 9시가 조금 안 돼서 끝났다.


함덕해변에는,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많은 이들이 버스커 공연을 즐기고 있었다. 잠시나마 무리에 섞여서 아는 노래를 따라 부르며 천천히 걷다 보니 피곤이 몰려왔다. 수면을 취해야 할 시간이라는 얘기겠지.


함덕에 오면 어김없이 찾곤 했던 차박지에 내가 머물 공간이 남아있을까? 요행히 자리가 났다. 최적의 위치에 있던 자동차가 출차 중이었다. 이토록 절묘한 타이밍이라니. 무엇보다 화장실이 가까웠다. 양치와 세안을 마치고 잠자리에 들 채비를 마쳤다.


철썩 차알싹 우짖는 파도소리가 가깝게 들릴만큼 코앞이 바다였다. 우측으로 시선을 돌리자 가무스레 서우봉 자태가 어둠 속에서도 느껴졌다. 내일 일찍 새벽 공기를 가르며 산책할 상상을 하니 벌써부터 기분이 좋아졌다. 밤바다와 데칼코마니를 이룬 잉크빛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 몇 개와 짧은 눈 맞춤을 한 뒤, 두 눈을 감았다.


달콤한 숙면을 취하고 일출 직전 기상, 천천히 밝아오는 오렌지빛 태양을 맞이했다. 물을 끓여 허브티를 우려냈다. 따뜻한 머그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한 모금씩 마시며 실눈을 뜨고 바라본 태양은 뜨거운 기운으로 내 온몸을 커피 온도만큼 포근하게 어루만져 주는 듯했다. 서서히 사위가 밝아오니 어젯밤 최고의 장소에 체크인했음이 느껴질 정도로 멋진 경관이 펼쳐졌다.


사과 한 알을 베어 물며 서우봉 산책을 나섰다. 걸을 때마다 주변 경관에 감탄이 쏟아졌다. 맑은 날씨, 푸른 하늘아래 멀리 한라산까지 선명히 조망할 수 있었다. 바다색은 또 어쩌랴? 한 가지 색만으론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함덕만의 바다 빛, 언어로 그 바닷빛을 형언하기는 진정 너무 어려웠다. 자연을 어찌 물감으로, 언어로 표현해 낼 수 있으랴? 직접 마주할 밖에. 조물주의 창조물에 감사할 밖에. 아침부터 겸허한 마음으로 산책하노라니 왠지 푸른 하늘빛이 마음에까지 스며드는 느낌이었다.


서우봉 산책 중에 송악산 올레길이 떠올랐다. 비슷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송악산에 비해 규모가 작은 봉우리였으나 아침 운동하기에 적격인 장소였다. 걷다가 홀로 여행객 몇을 만났고, 반려견과 산책 나온 이들도 만났다. 몇 년 전 세상을 떠난 반려견을 생각하며 종종 혼잣말을 했다. 함께 산책했다면 분명 방방 뛰며 좋아했을 생각하니 가슴이 짠해왔다.


여행을 한다는 것은 긴 시간 길 위에 자신을 세워놓고 걷는 것이다. 걷는다는 것은... 어쩌면 도서관에서 한 권의 책을 읽는 행위와도 같다. 여행자인 자신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행위는 책 속 인물들과 만나는 행위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익숙한 공간에서는 지나치기 쉬운 것들을 확장된 시선으로, 내밀한 눈으로 관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길의 모양, 재료, 공기, 바람, 오다가다 만나는 사람들의 표정, 인사하고 미소 짓는 것. 그 모든 것이 모여서 여행자는 머무는 곳의 인상을 결정하고 그것은 곧 추억으로 자리매김한다. 서우봉을 오르는 동안 그 모든 것이 가능했다. 서우봉의 속살 같은 생소한 자신을 만나면서, 함께한 모든 시간이 좋았다고 나직하게 귓속말로 전했다.


여행은 내가 나를 보는, 내가 나를 느끼는, 타인보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내 안의 나를 만나는 일이다. 거기에 더해 내가 머문 곳을 좀 더 깊이, 좀 더 넓게 느껴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여행이 좋다. 그래서 나는 도착하자마자 떠나는 것을 생각한다.


함덕 해변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도서관을 찾았다. 도보로 20분 남짓한 거리에 제주조천읍도서관이 있었다. 1999년에 개관한 도서관은 현재 7만 권 가까운 도서를 소장하고 있으며 우당도서관에서 관리하고 있다.


2층에 위치한 숲터 종합자료실에 들어서니 2025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작품을 전시해 놓고 있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배낭에 챙겨 온 세 권의 책 중 『사탄탱고』가 있어서 우선 반가웠다. 오늘부터 새로운 독서를 시작할 예정이었는데 『사탄탱고』를 읽어야겠다.


붉은 표지의 『사탄탱고』는 내 관심을 끌지 못했음에도 독서모임에서 읽기로 한 책이라서 준비해 왔다. 과연 끝까지 읽어낼 수 있을까. 걱정스러웠다. 벨라 타르 감독의 상영시간 7시간이 넘는다는 영화부터 볼까도 생각했지만 여건이 맞지 않았다. 그렇게 펼친 책은 의외로 잘 읽혔다. 무엇보다 묘사가 탁월했기 때문일까. 읽어 내려가는 동안 작품 속 풍경이 그려졌다.


숲터 종합자료실 분위기는 7시간 독서를 무리 없이 할 만큼 쾌적했다. 몇 차례 물과 커피를 마시기 위해 휴게실로 이동했고 한 시간 간격으로 스트레칭과 눈운동을 반복했다. 밝은 창가에 앉아서 시작한 독서는 어두워져서야 끝낼 수 있었다. 독자의 시선을 작품 속으로 끌어들인 라슬로의 필력이 놀라웠다.


7시간 만에 마지막 책장을 덮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불과 며칠 사이에 벌어진 사건을 400쪽 가까운 분량의 작품으로 탄생시켰다는 게 놀라웠다. 소설 엔딩은 다시 원점으로 가서 끝난다. 문득 뫼비우스의 띠처럼 빠져나갈 수 없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비극의 도돌이표처럼 옥죄는 일상을 떠올리게 했다.


다행히 긴 여행을 나선 상태에서 읽게 된 소설이라 그나마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읽는 도중, 프란츠 카프카가 떠올랐고,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도 떠올랐다.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았으리라 짐작했다.


이야기 구조를 알게 된 순간, 그것도 그 의미가 몰락의 닫힌 원으로 완성되는 것이라니... 한 마디로 내 취향의 소설은 아니었다. 더구나 2부 후반으로 가면서 인간의 밑바닥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적나라한 표현에 말문이 막힌 느낌을 어쩌랴. 작가 얼굴에서 등장인물인 '후터키'와 '이리미아시' 그리고 '의사'까지 3인의 캐릭터가 동시에 떠오르는 건 왜일까. 자기 안에 없는 걸 작품에 쓸 수 없으니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것이리라.


역자 후기에 보면, 작가 크러스너호르커이는 "카프카가 아니었다면 소설을 쓸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사탄탱고』는 카프카적 상황을 그린 소설일 수 있다. 두 차례 방문했던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의 화려한 시간을 반추하다가 공통점이 전혀 없는 사탄탱고 배경 속으로 진입했다.


허무함에 쌓인 헝가리 시골 해체된 집단농장 주민들의 불안한 눈빛과 제대로 된 일상을 살아내기 힘든 사람들의 시선이 교차했다. 불결한 냄새와 질퍽거리는 길, 여기저기 흩어진 잡초, 정착할 수 있는 땅이 아니라 떠나야 할 농장, 그곳의 악취를 감지하지 못한 채 마을 사람을 감시하며 기록하는 일에만 신경이 곤두선 의사의 모습이 눈에 보이듯 선명했다. 황량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 소리와 냄새까지 오감을 자극했다. '탈출의 전망이 부재하는 고통'에 갇힌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점을 알고 읽기 시작했음에도 읽어 내려가는 동안 불편할 정도로 힘들었다. 그러나 책장을 넘기는 손길을 멈출 수 없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까 궁금했다. 낯선 세계에 대한 세세한 묘사에 몰입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순간 스산한 시월의 바람이 불어대는 너절한 카페에서 사탄탱고를 추는 주민들 틈새에 껴있는 필자를 발견했다. 찬 바람에 어깨를 추스르며 그들 무리에 동화된 듯 휘몰아치듯 책장을 넘겼다.


책을 읽는 중에 원작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빨리 보고 싶어졌다. 영화 포스터에서 본 야릇한 시선의 인물이 불행한 소녀 '에슈티케'가 아닐까 미루어 짐작했다. 소설에서 상징적으로 등장하는 '종소리'와 '거미줄'을 영화에서는 어떻게 표현했을지도 궁금했다. 상상하건대 책 읽는 데 걸린 소요시간이 7시간이었던 것처럼, 7시간 상영시간에 소설 한 권을 통째로 읽어주는 영화가 아닐까 미루어 짐작했다.


라슬로가 말한 시월의 밤이 가진 고유한 리듬일까. 폐허가된 농장의 나무와 비와 진창길과 노을과 어둠과 피로한 사람들의 정적과 구부러진 길과 풍경들이 어지럽게 독자의 시야를 방해했다. 사탄탱고는 어떤 계절에 읽느냐에 따라 감상이 달라질 듯싶다. 아무래도 겨울은 피하는 게 좋겠다. 십일월에 만난 『사탄탱고』도 무척 힘들었으니까. 여름에 읽을 것을 추천한다.


"그러면 차라리 기다리면서 만나지 못하렵니다." 프란츠 카프카의 장편소설 《성》 제8장의 한 장면의 글


이리미아시가 피식 웃으며 말을 받는다. "그자들은 뼛속까지 노예지. 평생토록 그래왔으니까. … 그게 다야. 손바닥 들여다보듯 내가 훤히 아는 게 바로 그자들이라고. … 그리고? 기다리는 거지.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끝도 없이 기다리다가, 누군가 자기들을 속인 게 분명하다고 생각하겠지." 70~71쪽


이런 짧고 공연한 죄책감은 그를 깊숙이 뒤흔들어놓기도 전에 곧 사라져 버렸다(그건 과연 죄책감이었을까? 죄책감이란 한번 혜성처럼 작열하고 나면, 이후에 여명처럼 희미한 의식의 불편함 정도만 남기는 것이다.) 123쪽


"눈이 먼다는 건 아주 멋진 일이란다, 얘야" 하고 알려준 것이 그였다. 그는 영원한 어둠은 우울하기는커녕 행복하고 감사한 일이기에, 사람들이 이 비루한 세상의 색깔을 알려주려고 할 때면 자기는 웃고 만다고 했다. 167쪽


"현재보다 합당한 여러분의 미래"라는, 마음을 해방시켜 주는 말이었던 까닭이다. 253쪽


작가의 표현처럼 '인생의 비밀은 농담' 속에 있을까? 몇 사람이나 그 농담을 읽어낼 수 있을까? 아니 알아챌 수는 있을까? 삶에서 무엇을 놓치고 있는 걸까? 정작 중요한 것들은 흘려버리면서 아무것도 아닌 것을 붙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무수히 많은 질문을 던졌고 대답을 필요로 했다.


모든 것들의 시작은 어려운 걸까? 어렵게 시작해서 나쁘게 끝나는 걸까? 그래서 마지막을 걱정해야 할까? 그럼에도 그 과정에서 값진 순간을 경험하고 느꼈다면 되는 걸까? 그저 그런 일상으로 채워가며 살아내는 것이 우리의 삶인 걸까?


'이리미아시'의 동작과 턱의 각도, 집게손가락 움직임, 느긋함으로 훈련된 사교적인 어투, 청중에게 시종일관 거짓 희망을 심어주는 궤변에 달관한 사람들을 경계하라. 선명한 의식과 시선으로 여기저기에 널린 '이리미아시'를 경계하라. 모두에게 전하고 싶은 강력한 메시지다.


이리미아시는 아무 말 없이 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일을 다 처리했건만 그는 조금도 후련하지 않았다. 363쪽


엔딩에서처럼 소설은 끝났지만 조금도 시원하지 않았다. 왜일까. 이 찝찝한 기분은... 그건 우리 주변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이리미아시 같은 인물 때문일 것이다. 일을 벌인 인간조차 마지막이 후련하지 않았으니 그 일을 당한자들의 엔딩은 어땠을까. 독자의 마음이 이럴진대.


영화 속 배우들은 작중인물들을 어떤 열연으로 펼쳐냈을까? 책 속에 묘사된 풍경과 인물들을 스크린으로 확인할 것을 상상하자 벌써부터 괴로워졌다. 그럼에도 필자는 영화를 관람할 것이고, 어떤 장면에서는 자연스레 라슬로의 문장들을 떠올리리라. 고통스럽겠지만 7시간을 따로 마련해 봐야겠다.


7시간 이상 책 한 권 완독한 조천읍도서관에서의 시간을 잊지 못할 것이다. 조천읍도서관을 떠올리면 헝가리 현대문학의 대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작품이 전시된 진열 테이블과 그곳에서 읽은 『사탄탱고』 풍경이 함께 그려질 듯하다.


폐관 직전 조천읍도서관을 나와서 성산일출봉 쪽으로 차를 몰았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니 별 하나가 길을 안내하듯 반짝거렸고, 스피커에서는 피아졸라의 리베르탱고가 흘러나왔다. 이날의 테마는 탱고인가? 낮에는 사탄탱고, 밤에는 리베르탱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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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천읍도서관 종합자료실 (좌) 직접 촬영 (우) 출처: 조천읍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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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박 숙소에서 조망한 서우봉의 새벽 &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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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우봉 산책 중 조망한 한라산과 함덕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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