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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들래 Apr 30. 2023

설산, 칸첸중가!

영화 '바르피'로 그리움을 달래고

다즐링의 교육열이 다른 도시보다 높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 왜일까. 방과 후 아이들을 기다렸다가 가방을 대신 들어주며 다정하게 걷는 엄마와 아이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일까.


한국의 학부모들이 떠올랐다. 함께 여행하는 은비가 지금은 새내기지만 초등학교 입학 때의 사랑스러웠던 모습이 꼬마들의 얼굴에 선연하게 오버랩됐다.

그들 중, 가장 기억에 남아있는 모녀의 모습이다. 얼마나 깜찍하고 예쁘던지. 그냥 호기심 가득한 맑은 눈빛에 빨려 들어가듯 나도 모르게 소녀의 눈동자를 한참 들여다보았다. 몇 시간을 바라봐도 질리지 않을 눈빛, 똘망한 소녀의 눈빛엔 현재 내 세상에서는 쉽게 만나볼 수 없는 순수의 세계가 가득 담겨 있었다.

방과 후, 학교 주변 골목길을 걷노라면 어김없이 쏟아져 나오던 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의 재잘거림과 통통 튀듯 터져 나오던 웃음소리는 뿌연 안개를 타고 흩어졌다 다시 모이곤 했다.


카메라를 얼굴 앞에 대면, 모두가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포즈를 취했다. 어색한 사진이 한 장도 없을 만큼. 순박한 아이들의 표정을 읽으며, 이 얼굴 안에 또 다른 어두운 얼굴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셔터를 누르는 순간만큼은 그들 모두 맑은 눈빛의 순수한 마음을 지닌 친구들이라고 믿고 싶었다.

다즐링의 LORETO 단과대학 캠퍼스를 산책하고 다시 초우라스타 광장까지 걸었다. 이 캠퍼스에서 엽서 대용품으로 사용해도 될 만큼 멋진 사진 몇 장을 남기고 싶어서 찍었던 사진이다. 그 당시 이 사진을 본 어떤 분이 눈을 못 떼게 아름답다고 말했던 창가 틈에 핀 들꽃 사진이다.

광장 앞 서점을 둘러보았다. 글로벌한 도서가 분명한 두 권의 익숙한 책 '해리포터'와 '어린 왕자' 표지 앞에서 얼마나 반가운 마음이 들던지. 어린 왕자의 말이 떠올랐다. '특급열차에 서둘러 올라탄 사람들은 정작 자신이 무얼 찾고 있는지 몰라서 분주하게 제자리를 빙빙 돈다'는. 


어쩌면 인도여행은 완행열차를 타고 천천히 가는 여행일지도 모른다. 서두르지 않는 여행지에서 자신이 찾고 싶은 것, 내려야 할 종착지를 제대로 알게 될 것이다. 인도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인생에서 숫자 따위는 비웃어 버려도 좋다는 것이었다. 숫자를 좋아하는 어른이고 싶지 않았다. 숫자가 아니라 마음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것을 깨우쳐 준 길 위에서의 시간이야말로 최고의 선물이었다.

다즐링 쇼핑센터 앞에서, 사진전문점 앞에서, 초우라스타 광장에서 만난 삼 남매

다즐링에서 카페 '피에스타'의 아름다운 여주인(사진은 실제 분위기보다 덜 예쁘게 나왔다)과 그녀의 귀여운 아이들 그리고 할머니와 함께 홍차를 마시다가 기념촬영을 했다.


'Fiesta'의 오렌지빛 체크무늬의 테이블보와 실내의 사랑스러운 분위기에 맛있는 빵과 음악, 거기에 이국적 느낌과 산뜻한 실내 인테리어가 유독 마음에 들었다.

'피에스타'에서 차를 마시다가 어디선가 읽었던 글떠올랐다. '한 마리의 새, 한 그루의 나무, 한 사람의 존재를 안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불가능하다'라는. 왜냐하면 그 모두가 깊이를 측정할 수 없는 심연을 갖고 있기 때문다. 그렇다면 나는 얼마나 깊어져야 하는 걸까. 무수히 많은 인연들 속에서 그들의 심연은커녕 그저 눈인사, 가변운 접촉, 짧은 안부와 안녕으로 스치는 인연으로 지나친 게 다였다. 깊이를 알 수 없으면 어떠랴. 폭넓게 인정으로 맺어진 여행으로도 이번 여행이 만족스럽지 않은가


다즐링에서의 엿새동안 우리 모녀는 초우라스타 광장을 앞마당처럼 드나들었고 두 곳의 카페를 단골처럼 방문했다. 이웃처럼 다정하게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묻고, 가족을 소개받고, 옆 테이블 손님과 목례를 나누면서 밀려오는 생각들이 있었다.


내가 만나는, 지금 내 앞에 있는 대상의 내면을 내 어찌 알 수 있겠는가. 내 앞에 있는 존재들 앞에서 그저 나는 작아질 뿐이다. 나와는 또 다른 세계들이 내 앞에 있으니 말이다. 정현종 시인의 시구가 어김없이 떠올랐다. 그렇다. '한 사람이 온다는 건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 사람의 세계가 함께 오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새로운 만남을 갖는 것은 항상 벅차고 두렵다. 새 만남에 대한 설렘은 차후의 문제다. 벅참이 늘 먼저였으니까.


여로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짧은 스침이었지만 강렬한 순간을 체험하기도 했었고, 단지 걷다가 미소만 건넸던 사람이 있었고, 짧게라도 대화를 나눈 사람이 있었는가 하면, 불쾌한 언행으로 기분을 상하게 했던 사람도 있었다.


그저 표정만으로도 대하소설 같은 삶을 살아온 어르신이 있었는가 하면, 담백한 일상의 에세이를 닮은 삶을 살아온 중년의 표정을 만나기도 했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심하게 겪고 있는 듯한 심각한 표정의 청소년이 스쳐 지나가기도 했고, 웹툰만화에서 방금 튀어나온 듯 통통 튀는 청춘 커플을 초우라스타광장에서 만나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과의 단편적인 만남이었지만 가슴 벅찰 만큼 뜨거워지는 순간들도 있었다.


뜨거워진 가슴을 안은 채, 발걸음은 티베트 난민 자조센터를 향했다. 센터 언덕에서 내려다풍경은 가슴을 뻥 뚫리게 했다.

시골 외할머니 같은 푸근함을 느꼈던 분들과 원활한 소통은 어려웠지만 그래도 따뜻한 마음만큼은 전해졌다. 맛있는 채식위주의 식사와 차를 무료로 대접받고, 자활하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작업하시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티베트 난민 자조센터(Tibetan Refugee Self Help Center) 실내에 들어서니 티베트의 융단, 목각, 직물 등의 공예품을 만드는 공방들이 있었다. 그 주위를 천천히 돌아보며 구경할 수 있었다.

한 어르신께서 우리가 들어서니 박스에 담아 둔, 자신의 간식거리를 꺼내며 집으라고 하셨다. 괜찮다고 하니까 굳이 내게 몇 개를 집어 주셨다. 이것저것 섞어 놓은 비닐봉지 속의 단맛이 강한 먹거리가 담긴 간식 중 얼마를 감사한 마음으로 받았다. 언제나 꿈속에서만 만나볼 수 있었던 정겨운 할아버지, 할머니의 자상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전시실을 나와 쇼 룸으로 향했다. 쇼룸에서는 직접 생산한 좋은 제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티베트 물품은 바자르의 가게에서 사는 것보다 티베트 자조센터를 방문해서 직접 구입할 것을 권하고 싶다. 더구나 티베트 사람들의 생활상도 직접 만날 볼 수 있었으니 일거양득이었다.


우리는 이곳 리퓨지 센터에서 티벳탄 향을 구입했다. 여행 후 인도가, 다즐링이 그리울 때면 구입했던 티벳탄 향을 태우며 인도여행을 향기로 추억하곤 했다.


자활센터에서 재롱을 떨며 앙증맞게 놀고 있던 귀여운 아이들의 모습들이다. 티베트 난민 자활센터가 좋은 이유 중 하나는, 굳이 차밭을 가지 않아도 사방에 펼쳐져 있던 차밭 풍경이었다. 구름이 걷힌 후, 말간 얼굴을 내미는 아름다운 다즐링의 모습과 다시 짙은 안개구름이 몰려오는 신비한 다즐링의 모습을 동시에 만나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마지막 날, 늦은 오후 풍경을 느긋하게 즐기며 걸었다. 걸어도 걸어도 끝없이 펼쳐진 녹색 풍경들은 한마디로 눈앞에 펼쳐진 대형 그린모니터였다.  붉은 지붕의 아담한 집들을 살펴보며 얼마나 걸었을까? 우리의 숙소와는 너무 먼 거리라 지프를 타고 버스정거장에서 내렸다. 그곳에서 다시 초우라스타 광장까지 걸었다. 우리의 아지트 역할을 톡톡히 해준 '피에스타'에서 뜨거운 커피를 주문했다.


다탁에 앉아서 커피숍 창밖으로 보이는 초우라스타광장을 바라보며 충분한 휴식을 취했다. 탁자마다 정성껏 꽂아 놓은 꽃 한 송이까지, 피에스타 오너의 카페를 향한 자상한 애정이 엿보였다. 오너의 손길이 빼곡하게 느껴졌던 피에스타에서 다즐링에서의 마지막 날 오후, 그 아쉬운 마음을 여행수첩에 정리해 나갔다.


창밖 초우라스타 광장의 벤치는 텅 비어 있었고 잿빛 어둠이 촉촉이 내려앉아 있었다. 우비를 걸치고 광장을 걷노라니 어둠이 조금 전 보다 더 깊고 진하게 느껴졌다.


비가 내렸던 날, 피에스타 커피숍 앞에서 찍은 사진 한 장, 초점은 제대로 맞지 않았지만 오히려 흐릿한 분위기가 그날의 아쉬운 마음을 잘 드러내주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비 내리는 날의 쓸쓸한 정취가 진하게 풍기는 이 사진이 유독 마음에 들었다.


다즐링에서의 마지막 밤이다. 숙소에 들어가서 일찍 쉴까, 하다가 이대로 들어가면 아쉽고 허전할 것 같았다. 그래서 찾은 곳이 'The Buzz'다. 몇 차례 티타임을 가졌던 Glenary's 지하에 위치한 The Buzz에서 활동하는 뮤지션들의 라이브 연주를 들었다. 가볍게 시즐러와 맥주(Rs 260)를 시켜 놓고 우리 모녀는 The Buzz에서 기분 좋은 밤을 맞이했다.

연주를 끝낸 뮤지션들과 기념촬영을 했다. 머리를 깔끔하게 밀었던 친구가 노래를 특히 잘 불렀는데 첫인상이 왠지 율 브린너를 생각나게 했다. 은비는 기타리스트 젊은 친구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며 그가 차고 있던 붉은 실로 짜인 독특한 팔찌를 보고 예쁘다고 하자, 자신에게 의미 있는 날 어떤 누나가 선물해 준 거라면서 그 팔찌를 은비에게 선물했다.


덥석 받아서 손목에 찬 딸은 그 실이 닳도록 차고 다니다가 어떻게 처리했을까. 그것보다 더 우스웠던 건 자신에게 의미 있는 날 누나가 선물한 것을 다른 이에게 거리낌 없이 준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의미를 부여한 것에는 각자가 무게감을 지니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의미가 깃털처럼 가벼워지는 기분이었다. 글쎄. 그런 의미 부여조차도 인도에서는 자유롭게 날려 보내는 것일까. 받았던 순간만의 의미를 가슴에 담은 채. 그것이 진짜 인도인 건가.

다즐링을 떠나는 날, 다즐링 홍차와 녹차를 단골 찻집 Glenary's에서 구입했다. 딸아인 저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도 인도 여행 내내 즐거워했다. 그 즐거움에 칸첸중가의 행운까지 더해졌으니 다즐링에서의 추억을 풍성하게 추억할 수 있겠지.


우리가 떠나는 걸 알았던 걸까? 안개와 구름에 늘 가려져있던 칸첸중가, 그가 우리와 작별인사를 나누려고 자신의 얼굴을 수줍게 내밀었다. 아주 살짝, 그러나 그인 것만은 분명 알 수 있을 만큼 얼굴을 내밀었다. 그리고 '안녕!'이라고 말을 걸어와서 화답했다. '하이! 칸첸중가!'

몬순의 우기에 그곳을 방문해서 빛나는 설산 칸첸중가를 선명하게 만나지 못했지만, 우리 모녀에게 행운이 따라 주었기에 다질링을 떠나는 마지막 날 아침에 하얀빛을 발하던 세계 세 번째 고봉 칸첸중가의 눈부신 광경을  만날 수 있었다. 구름이 완전히 걷힌 설산의 웅장함은 아니었지만 8월에 칸첸중가를 만난다는 건 확실히 행운이었다.


그 행운을 마음으로 감사하며 우리 모녀는 다즐링에서의 긴 여정에 종지부를 찍고 실리구리(다즐링 - 실리구리 까지 지프 Rs 180)를 향한 지프에 몸을 실었다.


석가모니께서 삶은 고행이라고 했지. 그렇다. 살아가는 것 자체가 고행이다. 일상이 고행이듯, 여행 역시 그렇다. 그 고행을 여정에서 나름 즐겼기에 드라마틱한 추억을 많이 만들지 않았던가.


다즐링 이전의 도시에서 느꼈던 소소한 행복에 다시 더해본다. 초우라스타광장에서 불어온 한줄기 바람을 맞듯, 홍차 향이 코끝을 스치듯, 길에서 만난 아이들의 웃음이 마음을 채색하듯 그렇게 모아둔 즐거움과 행복을, 유익함과 평화를.


이제 그것들을 꺼내서 사용해야 하는 시점이 있다. 고행이 시작될 때, 고행 중에, 더 이상은 안 돼하며 뭔가 포기하고 싶을 때, 소소하게 모아 둔 행복꾸러미를 꺼내서 펼쳐보았다. 그러면 다시 나아갈 힘이 생겼다. 삶은 여행이다. 여행이 삶이듯이. 삶은 고행이다. 고행이 삶이듯이.


이제 우리 모녀는 마지막 여행지 네팔 카트만두를 향하여 다시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는다.

사진출처: 왓챠

여행 후, 다즐링이 그리워질 때면 관람하는 영화가 있다. 바로 가슴 뭉근하게 데워주는 멜로드라마, <바르피>이다. 아름다운 다즐링이 영화 속 배경이다. 언어장애가 있지만, 유쾌한 심성으로 모두에게 사랑받는 청년 바르피와 두 여인의 사랑이야기이다.

사진출처: 왓챠

아누락 바수의 시나리오와 상큼한 연출, 바르피와 질밀의 역할을 맡은 프리얀카 초프라의 연기가 영화의 매력을 한껏 높여주었다. 훌륭한 시나리오에 탁월한 연기가 뒷받침될 때 명작은 탄생한다.


17회 부산국제영화제(2012년) 출품작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우리 모녀가 여행한 이후 촬영한 영화였다. 우리의 발걸음 위에 배우들의 발걸음이 덧씌워진 거야. 우리의 시선이 머문 곳에 그들의 시선이 가 닿았을 테고 그 장면들이 모두 모여 한 편의 영화 <바르피>가 탄생한 거야.


어느 순간 현재, 과거, 미래가 순식간에 섞여 버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지 않은가? 영화 관람 중 그 비슷한 경험을 하면서 얼마나 짜릿하던지. 그래서 우리의 인생이 영화고, 영화 속의 삶이 우리의 인생을 닮은 거야. 영화와 삶은 항상 나란히 가는 건 아니지만 어느 순간 만나게 되는 지점이 있다. 그때 우리는 영화 같은 인생을 산다고 말할 수 있겠지. 지금까지의 인도여행이 영화 같았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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