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엄마

광화문 밤의 연가, 슈베르트의 '밤과 꿈'

by 물들래

'그거 알아? 나, 어제 광화문 밤거리를 오랫동안 서성거렸어. 얼마나 걸었을까? 막차가 끊길 시간이었지. 기다리는 버스는 어떻게 된 영문인지 좀처럼 오질 않더군. 말없이 걷는 일 말고는 달리할 일이 없었어. 세종로 사거리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면서 내가 할 일이 뭐겠어. 너와 함께 바라보던 밤하늘을 눈으로 껴안는 일밖에. 샛별 하나를 품고 있던 밤하늘을 다 안을 수 없어서 눈을 질끈 감았어. 너와 함께했던 시간, 추억의 흔적들이 선명하게 다가왔지. 감은 눈을 뜨면 봄 같은 미소를 띤 네가 서있을 것 같았어. 쉽게 눈을 뜰 수 없었지. 너와 자주 듣던 광화문의 밤의 연가, 바로 슈베르트의 '밤과 꿈' 선율이 머릿속에 맴돌 즈음 우리들의 엄마 이야기를 떠올렸다.


이십여 년 전, 인사동 주점. 유미에게 친정 엄마를 재조명하게 했던 그날, 이연은 그윽한 인생을 이미 체험한 여인 같아 보였다.


-- 오늘 선배 만나면 술기운 빌어서 하고 싶은 얘기 다 하려고 마음먹었어요.


이연을 마주하고 있는 동안 유미 가슴 언저리에 찬바람이 불어왔다.


-- 선배! 20킬로의 무게를 아세요?


-- 쌀 20킬로를 생각하면 되겠지요? 그거 쌀통에 옮기는 일은 남편이나, 아들아이 몫이라, 언뜻 한 번 들어본 적은 있지만, 꽤 무거웠다는 생각이 드는데…. 왜요?


-- 전 그 20킬로짜리 과일 상자를 초등학교 5, 6학년 때 배달했어요.


-- 영양실조로 쓰러져 본 적 있어요?


-- ....... 아뇨.


--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도시락을 직접 싸 갖고 다녀 보셨어요?


-- ....... 아니요.


-- 한여름이었죠. 하루는 아침에 늦어서 전날에 지은 밥으로 도시락을 싸 갖고 갔는데, 도시락을 펴보니 쌀벌레가 기어 다니더라고요. 저요, 주위 친구들이 아는 게 창피해서 아무렇지도 않게 그 밥을 먹었어요.


-- 어떡해.


-- 저요, 그래도 그 엄마가 만나고 싶어 가끔 죽음이 두렵지가 않아요.


-- …….


-- 초경도 혼자 치렀어요. 엄마는 아무 도움도 주질 않았죠.


불현듯 엄마에 대한 어떤 기억 하나가 떠올랐지만 이연의 이야기에 다시 집중했다.


-- 대학 다닐 때도 장학생으로 공부하고 싶었지만, 능력은 안되고... 그래서 열심히 아르바이트해서 학비를 벌어가며 공부했어요. 그런데 하루는, 단돈 오천 원이 필요해서 엄마에게 요구했는데 싫은 소리 다 해가며, 돈을 바닥에 던지더군요. 그 돈을 집어 들면서 정말 엄마가 원망스러웠어요. 그리고 얼마 후 엄만 돌아가셨어요. 아마, 저와 정 떼려고 그랬던 모양이에요.


-- 진짜로 정 뗄 마음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그런 행동을 했겠어요.


그러나, 초등학교 시절 단 한 번 엄마가 꼬옥 안아 준 기억이 선명하게 남아 있어서, 애절하게 그 엄마가 보고 싶다던 이연,


-- 선배를 만나면, 제 삶은 일 년씩 연장되는 것 같아요. 선배는 선배를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만나야 할 의무가 있어요. 왜냐면요? 사람들을 살고 싶게 만드는 힘을 선배는 갖고 있거든요. 제가 알고 있는 사람 중에요. 선배처럼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없어요. 그러니까 그 행복 나누어주면서 사셔야 해요. 그리고요. 어머니께 잘하세요. 정말 잘하세요. 선배께 꼭 해주고 싶었던 말이에요.


인사동 밤은 자정을 넘어서며 점점 깊어갔다. 이연과 밤바람을 쏘이며 걷다가, 운현궁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도로에 주차해 놓은 차가 보이지 않았다. 견인해 갔나 보다. 그럴 줄 알았으면 유미도 이연과 함께 한 번 취해 보는 건데 싶었다. 거금의 택시비와 견인비가 전혀 아깝지 않은 밤이었다. 왜냐면, 정말이지 확실한 인생 공부를 이연을 통해서 했으니까.


유미 나이 마흔넷, 이 나이 먹도록, 한 번도 엄마에게 받은 사랑이 없다고, 엄마의 가슴에 한 번도 안겨본 적 없다고, 엄마 냄새를 하나도 기억할 수 없다고, 그렇게 엄마를 원망했던 자신을 적나라하게 만났다. 이연과의 만남 이후,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아니 정말 기억조차 나지 않았던, 그 옛날 엄마와 관련된 선명한 추억 하나를 건져 올렸다.


여고 1학년, 비교적 늦은 초경을 치른 유미에게, 그날 저녁 엄마는, 붉은 장미가 예쁘게 수 놓인 눈부시게 하얀 거들을 사 주었다. 이걸 입으면 안정감이 있을 거라며. 한 번도 새 옷을 사 준 적이 없던 엄마, 늘 언니 옷을 물려 입어서 못마땅해했던 유미에게, 유일하게 새것을 사 준 게 있다면, 그건 거들과 하얀 면 팬티였다. 속옷만큼은 물려 입는 게 아니라며. 그때 엄마 얼굴을 기억해 내려고, 엄마의 눈빛을 새겨 보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엄마의 얼굴, 눈빛은 기억에 없다. 그저, 눈부시게 하얀 거들과 면 팬티만 선명하게 기억될 뿐이었다. 엄마에 대한 나쁜 기억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날 밤 잊고 있던 기억 하나를 확실하게 건져 올린 셈이다.


중고등학교 시절. 유미에게 제대로 도시락을 챙겨준 적이 없는 엄마, 유독 아침잠이 많은 엄마이기도 했지만, 새벽 일찍 첫 차를 타고 등교하는 유미에게, 도시락 챙겨주기란 힘들었을지 모른다. 도시락 싸 갖고 좀 천천히 가라고 하는 엄마에게,


-- 됐어. 인제 일어나서 무슨 도시락이야?


쌀쌀맞게 대꾸했다. 도시락 챙겨서 가려면 분명 만원 버스에 시달려야 할 게 뻔했다. 빳빳하게 풀 먹여서 고개를 돌릴 때마다 신경이 쓰이는 흰 컬러와, 깨끗하게 빨아 신은 운동화가 더럽혀지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텅 빈 버스, 청회색으로 물든 학교 캠퍼스를 걸을 때 그 환희의 기쁨은, 점심을 거르는 것을 기꺼이 인내하게 했다. 허기질 땐 가끔 매점에서 빵과 우유로 점심을 해결하기도 하면서 뒷동산으로의 오롯한 산책을 즐겼던 유별난 여학생이 유미였다.


어쩌면 이연과 유미는 부재했던 엄마를 서로에게 원했던 건 아니었을까. 유미는 이연에게 실재하는 모성애를 느꼈던 순간들이 있었다. 따뜻한 음색이 그랬고 위로하는 눈빛이 그랬으며 유미의 시간과 공간을 그대로 두어야 할지 채워줘야 할지 섬세하게 알아채던 사려 깊음이 그랬다. 이연의 혜민한 언행들 속에 유미의 삶은 촘촘하고 부드럽게 빛났다. 그걸 왜 이제야 깨닫게 됐을까. 곁에 있을 때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이연의 커다란 빈자리를 보고야 느끼는 이 우둔함이라니. 유미는 스스로의 이기에 소스라쳤고 깊은 회한에 가슴이 저려왔다.


1515189.jpg 사진 출처: 네이버 이미지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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