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렐류드 | 인생, 서곡을 연주하다

“어쩌다 어른, 어쩌다 대학생”

by 소나타 그레이스

제대로 인생의 악보를 따라갔다면 90학번 신입생의 자리에 앉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스무 살, 저는 길을 잃은 음표처럼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친구들이 캠퍼스의 낭만을 이야기할 무렵, 제게 대학은 데모와 최루탄 냄새로 가득한 소란스러운 곳처럼 느껴졌습니다. 굳이 그 소란 속으로 뛰어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엄마 친구분의 소개로 작은 출판사에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단순한 할부 관리 업무였지만, 사회의 일원이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벅찼습니다.

그러나 출판사가 부천으로 이전하면서 자연스럽게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다음 직장은 일본과 무역하는 작은 회사였습니다. 타자 치고 전화받는 일이 주 업무였죠. 일본어로 걸려오는 전화를 받으며 신기함과 동시에 묘한 갈증을 느꼈습니다. 나도 저 언어로 소통하고 싶다! 그 열망 하나로 종로의 일본어 학원에 등록했고, 몇 달 만에 기본적인 대화가 가능해졌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모시모시, 초토 마테 쿠다사이”라고 더듬거리자, 사장님은 "오케이, 미스 리!" 하며 기뻐하셨습니다. 작은 성취였지만, 인정받는 기쁨은 새로운 배움에 불을 지폈습니다.


그 무렵, 친구 소개로 대학생이었던 첫사랑을 만났습니다. 그는 제게 대학 진학을 여러 번 권유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단호했습니다. 어쩌면 학력의 차이가 만든 벽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결국 우리는 각자의 길을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 탕비실에서 커피잔을 닦다가 문득, 강력한 끌림처럼 마음속 깊은 곳에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나도... 대학생이 되고 싶다.' 친구들의 MT 이야기, 미팅 경험, 수업 이야기가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그들과 같은 언어로 소통하고 싶다는 열망이 파도처럼 밀려왔습니다.




결심은 행동으로 이어졌습니다. 사장님께 손 편지로 퇴사 의사를 전하고, 제 자리를 친구에게 넘겼습니다. 그리고 홀로 대학 입시라는 거대한 산을 마주했습니다. 공부할 공간이 절실했습니다. 감사하게도 대학 4학년이던 지인 한 분이 도서관 출입증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매일 도서관에 나가 책을 펼쳤습니다. 처음엔 막막했지만, 조금씩 길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수능이 처음 도입되던 해, 학원에서 기본을 다진 후 도서관에서 밤늦도록 공부에 매달렸습니다.




차가운 공기가 감돌던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어느 날, 출입증을 만들어준 그 지인이 조용히 물었습니다.

"어느 과에 지원할 거야?"

망설이는 제게 그는 잠시 침묵하다 진심 어린 조언을 건넸습니다.

"결혼하면 아이를 어떻게 키울 거야? 유아교육을 배우는 게 너한테 도움이 될 거야."

아이를 유독 좋아하지 않았던 저였기에 그의 말은 낯설게 느껴졌지만, 이상하리만치 그 조언은 제 마음에 오래도록 머물렀습니다. 현실적인 이야기라 여겼지만, 곱씹을수록 언젠가 엄마가 될 제 삶에 큰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지인의 말이 작은 불씨가 되어, 제 안에서 점점 확신이라는 불길로 타올랐습니다.


그렇게 저는 유아교육과에 지원했고, 94학번 신입생으로 인생의 새로운 서곡을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낯선 캠퍼스, 새로운 친구들, 처음 듣는 전공 수업. 세상과 조금 더 가까워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저에게 불씨를 건네주었던 그 지인과는 이따금 안부를 나누었지만, 결국 각자의 삶 속으로 흘러갔습니다. 그는 유학을 떠났고, 저는 졸업 후 유치원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의 지인을 통해 한 남자를 소개받아 결혼했습니다. 남편의 근무지 때문에 유치원을 그만두고 인천으로 이사했고, 1년 후에는 아기 엄마가 되었습니다.




대학이라는 목표를 향해 나아갔던 순간부터, 제 삶이 이렇게 드라마틱하게 변주될 줄은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저의 인생은 또 한 번, 새로운 악장으로 접어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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