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악보를 펼치다”
"이렇게 좋은 한국을 왜 떠나려고 해!"
남편의 말에 저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우리는 같은 땅에 서 있었지만, 시선은 너무나 달랐습니다. 단순한 아쉬움을 넘어선 근본적인 차이였습니다. 저는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싶었고, 배움과 도전이라는 제 안의 두 날개를 접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남편과 저는 바라보는 방향이 달랐고, 그 간극은 강물처럼 자연스러우면서도, 점점 더 깊고 선명해졌습니다.
남편이 교육을 받는 동안, 저는 홀로 아이를 돌보며 '미래'라는 거대한 풍경화를 그리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그림 속에 제가 서 있을 자리는 어디인지, 어떤 색을 덧칠해야 할지 끊임없이 고민했습니다.
어느 햇살 따스한 오후, 아이와 함께 놀이터에 갔습니다. 아이는 모래성 쌓기에 몰두했고, 저는 텅 빈 그네에 앉았습니다. 발끝으로 땅을 밀며 천천히 하늘을 향해 올라갔다가, 다시 땅으로 내려오는 그 반복 속에서 저는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그 순간, 마음속 깊은 곳에서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질문이 깨어났습니다. "내가... 정말 원하는 삶은 무엇일까?"
흔들리는 그네 위에서, 마치 제 인생도 위태롭게 흔들리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문득, 강력한 파동처럼 '대학원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그때는 어떤 전공을 선택할지도 몰랐지만, 배움이라는 별을 향한 제 여정을 멈추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사이 남편은 포천으로 발령받았고, 얼마 후 다시 인천으로 재배치되었습니다. 하지만 군인 관사가 부족해, 저는 아이와 함께 포천에 남게 되었습니다. 우리 가족 사이에는 주말이라는 짧은 다리만이 놓여 있었습니다. 포천에서의 생활은 백운호수처럼 차갑고 고요했습니다. 난방비가 부족해 방은 얼음성처럼 차가웠고, 아이 목욕물조차 끓여서 준비해야 했습니다. 매일 밤, 차가운 공기 속에서 저는 홀로 미래를 응시했습니다. 하지만 그 혹독한 겨울 속에서도, 제 마음은 조금씩 봄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상황 속에서도, 저는 제가 걸어갈 길을 놓지 않았습니다. 마치 지도 없이 미지의 숲을 헤매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발걸음을 멈출 수는 없었습니다.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삶을 살 거야.'
그렇게, 제 인생의 새로운 악장이 시작되었습니다. 기존의 선율은 잠시 멈추고, 새로운 음표들이 악보 위에 그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아이를 품에 안고 창밖을 바라보았습니다. 겨울은 길고 추웠지만, 먼 산 너머엔 분명 봄이 오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마치 비밀의 정원처럼 마음속 깊이 간직했던 꿈의 씨앗들이 새로운 계절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꿈을 다시 피우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네에서 바라본 별은 멀어 보였지만, 이제 저는 그 별을 향해 손을 뻗을 용기가 생겼습니다. 인생은 때로 우리가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만의 항로를 정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세 번째 악장이 시작되려 합니다. 이번엔, 더 힘차고 경쾌한 리듬으로. 이 곡의 주인공은 언제나 나 자신임을 알기에. 봄은 언제나 겨울 뒤에 옵니다. 그리고 제 인생의 봄도,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