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숲길을 들어서면 같은 길인데도 매번 다릅니다.
비슷한 시간, 매일 보는 나무와 길인데도 다르니 참 신기하지요.
때론 이른 새벽에 눈을 뜨고 뒤척이다 산에 오르면 고요한 숲길은 햇살마저 고요해서 고즈넉함이 자리합니다.
때론 게으름이 자리 잡아 부스럭거리다 늦어지면 아침 눈부신 햇살이 나무 사이로 스며들어 숲은 찬란합니다.
햇살 스며드는 시간이 달라지니 숲의 풍경이 다를밖에요.
흐린 날은 새벽 풍경이 진하고
맑은 날은 부지런한 숲들이 반짝이며 눈부시게 빛납니다.
비 오는 숲은 적박한 고요 속에 잠겨있지요.
빛은 그렇게 오가는 눈을 풍요롭게 합니다.
숲길을 걷다 내리막길로 들어섭니다.
비탈길 옆에 누군가 식물들을 정성스레 심어놓았습니다.
애써 가꾼 식물들이 짐승들에게 공격받기도 하고 오가는 사람들의 손길로 거칠어질까 철망으로 밭을 감싸놓았죠.
비탈길 옆 경사도 있고 밭을 일구기도 어려울 텐데 참 정성스레 가꿉니다.
고구마줄기와 잎이 무성하고 고추도 잘 심어 놓았지요.
푸성귀들이 빼곡하게 자라고 두릅나무들이 울타리처럼 서 있습니다.
가뭄을 대비해 커다란 물통을 준비해 비 올 때 받아놓고 곳곳에 우산을 거꾸로 매달아 놓았네요.
새로부터 열매를 보호하려는 것이지요.
곳곳에 바지런한 손길이 그대로 전해집니다.
오르내리는 일도 힘든 비탈길에 이리 정성스레 가꾸는지 궁금해했지요.
어느 날 도라지 꽃이 보입니다.
참 반가웠습니다.
도라지꽃을 좋아합니다.
도라지꽃밭을 보면 빌길을 멈추고 그저 바라보곤 하지요.
보라색과 하얀색이 한데 어울려 하늘하늘 바람에 움직이는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기도 합니다.
꽃이 어여쁘기도 하지만 내 발길이 멈추는 것은 그리움 때문이지요.
도라지꽃의 보라색은 엄마의 향기입니다.
엄마에게는 도라지꽃을 담은 보라색 한복이 있었지요.
내 고등학교 입학식에도 보라색 한복을 입고 계셨어요.
시골에서 밭에서 일만 하신 분인데도 도시에서 온 대부분의 어머니들 속에서도 눈에 뜨였어요.
보라색 한복 때문이기도 했지만 남들보다 큰 키에 기다란 목, 또렷한 이목구비엔 기품이 담겨 있었어요.
내 어깨가 으쓱해졌지요.
당신이 배우지 못한 설움과 한을 자식들이 짊어지지 않도록 대전으로 공주로 유학 보내고 뒷바라지하느라 고생하시다 너무 일찍 우리 곁을 떠나셨어요.
65세, 우리가 자리를 잡고 부모님을 편하게 모실 수 있을 때
더 이상 그 지겨운 삶의 질곡에서 해방될 수 있을 때
허망하게 돌아가시고 우리 곁엔 그리움만 남았지요.
도라지꽃이 보이면 그렇게 그리움이 커집니다.
꽃은 그리움입니다.
이젠 도라지꽃이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한 두 송이 피었다가 지곤 하지요.
그 비탈길 밭주인이 궁금해집니다.
언젠가는 뵐 날이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