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책상 위 조명 불을 탁 끄면 이런 소리가 난다.
“애애앵~”
“알았어, 알았어. 간식 줄게.”
작고 귀여운 몸집이 내 발치로 달려오는 게 느껴진다. 책상 조명 끄는 소리만 들어도 간식을 주는 걸 아는 우리 고양이. 심리학자 파블로프의 고전적 조건형성 실험이 생각났다. 개에게 종을 울린 후 음식을 주는 과정을 반복하자, 종소리만으로도 개가 침을 흘렸다. 우리 고양이도 마찬가지다. 조명 불이 꺼지면 간식이 나온다는 학습이 이루어진 셈이다.
밤에 일을 마치고 침대에 누우면, 고양이는 어김없이 내 배 위로 올라와 “그르릉~ 그르릉~” 골골송을 부른다. 이 소리에 마음이 한없이 평온해진다. 반려동물을 쓰다듬는 행위는 스트레스를 완화하고 ‘옥시토신’이라는 행복 호르몬 분비를 증가시킨다. 그래서일까. 이렇게 고양이와 밀착해 있을 때는 아무 걱정 없이 편안하고 따뜻하다.
소파에 앉아 다리를 쭉 뻗고 있으면, 고양이는 내 다리 위에 자연스럽게 눕는다. 집에 나 혼자 있을 땐 더욱 애착을 보이며 떨어지질 않는다. 실제로 고양이는 주인이 혼자 있으면 그 외로움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더 다정하게 애착 행동을 보인다고 한다. 어쩐지 집에 혼자 있어도 고양이 덕분에 혼자가 아닌 것 같다.
평온한 일상만 있는 건 아니다. 고양이는 내가 TV를 보고 있거나 피아노를 칠 때면 꼭 방해 공작을 펼친다. 동물행동학에 따르면 고양이는 집사가 한자리에 오래 머물면 ‘쉬는 중’이라고 인식해 같이 놀고 싶어 하는 행동을 보인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시선은 TV에 두고 팔만 움직이며 대충 낚싯대 놀이를 해준다. 억지로 놀아주는 걸 아는 건지, 고양이는 시큰둥하다. 옆에서 보던 아이가 핀잔을 준다.
“엄마, 그렇게 놀아주면 고양이가 재미없어 하지. 성의 있게 해줘야지!”
“엄마가 지금 그럴 힘이 없어.”
고양이가 가끔 장난이 과해서 나를 살짝 물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놀라서 크게 소리를 지르곤 했다. 그랬더니 아이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엄마, 그렇게 하면 고양이 우울증 와! 내가 어디서 읽었어.”
반려묘 행동학 자료를 보면 고양이가 친근함이나 장난으로 행동했을 때 보호자가 큰 소리로 놀라면, 고양이는 거부감과 불안감을 느껴 심리적으로 위축된다고 한다. 보호자의 과잉 반응은 고양이에게 스트레스와 불안을 유발하고, 심하면 회피 행동이나 우울 반응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제는 깜짝 놀라더라도, 고양이를 위해 조금 더 침착한 반응을 보여주기로 했다.
돌아보면 이 모든 시간이 고양이와의 관계 속에서 배우는 내 마음 다스림 훈련이었다. 고양이와의 생활이 늘 순탄했던 건 아니다. 잦은 입질에 다리는 상처투성이고, 자꾸 귀찮게 해서 집에서 마음 놓고 일할 수 없는 날도 많았다. 하지만 이 작고 따뜻한 존재와 함께한 시간이 결국 내 삶을 더 행복하고 풍성하게 만든다는 건 분명했다. 오늘도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지친 하루를 위로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