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하원했을 때만 해도 독서골든벨 금메달 못 받았지만 금메달 받은 친구한테 쿨하게 축하해줬다고 말했다. 하지만 자기 전에 아이는 울음이 터졌다. 크리스마스에 받고 싶은 선물도 못 받을 거라고, 금메달 받고 싶었는데 못 받았다고 여러 가지 속상한 마음을 풀어놓았다.
아이의 울음이 그치지 않아 나는 잠시 그 자리를 피했더니 아이는 금세 따라와서 울먹이면서 묻는다.
"왜 아빠는 울지 말라고 해?"
불똥은 피곤해서 일찍 잠든 아빠에게 튀었다. 아이는 평소 우는 자신에게 울지 마라고 다그쳤던 아빠한테 불만이 있었나 보다.
"울고 싶으면 울어도 돼. 맘껏 울어."
내가 아이의 눈물을 닦아주면서 울어도 된다고 토닥이니 아이는 오히려 울음을 멈췄다. 거짓말처럼.
내 어린 시절이 잠시 떠올랐다. 울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나는 정말로 잘 울었다. 그런데 내가 울 때마다 가족들도, 친구들도 우는 내게 아무도 울어도 된다고 말해주지 않았다. 그만 울어라고 말해줬을 뿐이었다. 그게 그들이 위로하는 한 방식이었을 거라고 지금은 머리로는 알겠다. 하지만 내가 어렸을 땐 그만 울어라는 말이 아무런 위로가 되지 못했다. 내 가슴은 철철 피가 날 정도로 아픈데 왜 사람들은 아파도 참아라고 할까, 왜 아프다고 표현하지 말라는 걸까, 지금의 내 아이처럼 이해되지 않았다.
한편으로 남편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남편은 남편의 방식으로 우는 아이를 달랜 거니까. 그래서 잠자리에 누운 아이에게 아빠가 울지 말라고 했던 이유를 말했다.
"아빠는 네가 울면 너무 속상해서 그랬을 거야."
혹시 이 글을 내 남편이 읽게 된다면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부디 아이와 내가 울 때, 울어도 된다고 말해달라고, 그렇게 말하는 게 어렵다면 눈물을 닦아주고 안아줬으면 좋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