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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 굽는 타자기 Nov 10. 2020

나쁜 엄마가 행복한 이유

8살 딸이 어찌나 내게 감동 멘트를 날리는지 브런치를 아니 쓸 수 없을 지경이라 바쁜 와중에 몇 가지 에피소드를 남긴다.


이틀 꼬박 밤을 새우며 2시간 넘는 스튜디오 원고를 쓰느라 책상과 나는 물아일체 상태였다. 딸이 짠하게 나를 보며 말했다.


"엄마, 엄마는 하루 종일 앉아서 일하니까 힘들 것 같아. B 친구네에 광고에 나오는 자세 잡아주는 방석 있던데 내 용돈으로 사줄까?"


명절 때마다 받는 용돈의 일부분을 힘들게 모은 돈인데 선뜻 엄마를 위해서 선물하겠다니 그 마음만으로도 대견하고 고마웠다. 한술 더 떠서 B 친구네 가서 빌려온다길래 만류하며 그 방석 어떤지 물어나 보라고 했다.


다음날 혼자 친구네 가서 놀고 온 애가 낑낑거리면서 그 방석을 들고 오는 것이 아닌가. 허걱. B 친구 엄마한테 물어보니 2+1으로 산 거라  하나는 창고에 뒀는데 생각난 김에 선물하는 거란다. 괜한 걸 물어봤나 싶어 부담감을 느끼고 있는 내게 딸이 말했다.


"얻어왔으니까 됐지."


누가 보면 시킨 줄 알겠다. 그래도 내성적인 아이가 가족 이외에 사람한테 이러쿵저러쿵 자기 필요를 표현했다고 생각하니 이 역시 대단하단 생각밖에 안 들었다.


2시간짜리 원고를 털고 나서도 다른 원고를 쓰고 있는 내게 예쁘다, 귀엽다며 내 머리를 가지고 논다. 바쁜 엄마가 그것도 못해주랴 싶어 내버려 뒀더니 초등학생 고학년만 되더라도 싫어할 삐삐 머리를 해준다. 앞모습 촬영을 거부하자 뒷모습 촬영을 강행하길래 그러려니 했는데 슬쩍 사진을 보니 정확히 가르마를 탄 모습에 감탄했다.

하도 예쁘다고 뽀뽀해주길래 으쓱하고 있었는데 방심은 금물이다. 딸이 일격을 가했다.


"엄마, 에이미 닮았어."


에이미가 누구인가. 흔한 남매에 나오는 개그우먼. 웁쓰. 예쁘다더니 고작 에이미냐고 원망의 눈빛을 보냈더니 딸이 수습에 나섰다.


"에이미 아니야. 아이돌!!"


수습하기엔 글러먹었다. 이제 거울 볼 때마다 내 모습은 에이미로 빙의될 듯. 우리 딸은 엄마를 들었다, 놨다 선수니까 그러려니 참는다.


얼마 전에 노트북을 새로 깔았더니 워드 프로그램이 깔려있는 줄 알고 막 작업했는데  인증되지 않은 프로그램이라 작업한 걸 몇 번을 그냥 날려버렸다. 졸린 남편에게 물어보니 워드 새로 깔아야 한다네. 제법 시간은 걸리고 어차피 작업을 못할 것 같아 한 달 만에 딸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다. 딸의 소원은 참으로 소박하다. 오늘 엄마랑 같이 자는 거. 정확하게 말하면 딸이 잠드는 순간까지 곁에 있어 주는 일. 별 거 아닌데 엄마가 오래간만에 잘 때 옆에 있어준다니까 내 손을 꼭 잡고 미소를 띠면서 잠든다. 일이 뭐라고 딸과의 이런 행복한 순간을 놓치고 있나 싶다.


추석 이후 일 폭탄 맞아서 먹고 자는 빼고는 일하는 나 자신이 슬퍼지는 순간, 딸은 선물같이 내게 찾아온다. 화를 잘 낸다고 딸이 붙인 화쟁이 엄마인데도 딸은 세상에서 엄마가 가장 예쁘단다. 남편한테 늘 얘기하는 일이지만 나는 정말 복이 많은 엄마인가 보다. 이틀 동안 씻지도 못한 엄마를 세상 예쁘게 요렇게 봐주고 사랑해주는 딸을 만났으니.


13년 전 처녀 시절, 60분 부모 프로그램을 할 때 오은영 선생님께 새겨들었던 말이 있다.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했던 엄마들은 더 노력해서 억지로라도 아이에게 더 사랑 표현을 해야 한다고. 몸에 익숙한 말들이 아니라서 표현하는 게 힘들더라도 아이를 위해서 해줘야 한다고.


아이 엄마가 되고 육아서와 실제의 다름을 몸소 깨닫고 있는데 그래도 의지를 가지고 아이에게 예쁘다, 사랑한다 잊지 않고 표현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세 돌까지는 잠투정, 낯가림, 편식 3종 세트를 풀 장착한 딸에게 사랑 표현을 하는 건 정말 서툴고 힘들었다. 하지만 나는 엄마였다. 육아가 수월하지 않았지만 3종 세트가 다행히 사라지면서 나도 편해졌고 아이는 놀라울 정도 매일매일 더 예뻤다. 물론 그래도 화를 내는 화쟁이 엄마지만 매일이 쌓이니까 내 사랑 표현은 자연스러워졌다.


오늘도 딸이 내게 날린 감동 멘트.


"엄마, 우리 엄마로 태어나 줘서 고마워."


꾸역꾸역 버티면서 일하고 있는 내가 일순간 무장해제되어 감동을 느끼는 , 불현듯 떠올랐다.


"꾸마야. 엄마 딸로 태어나 줘서 고마워."


내가 딸에게 무수히 했던 닮은꼴의 표현이었다는 걸. 딸에게 내가 했던 말을 돌려받으려고 했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사랑 표현이 서툴었던 나의 작은 노력들이 결국 수백 배 커져서 다시 선물처럼 받고 있음을 깨달았다.


나는 초1 엄마임에도 일 때문에 바쁘다는 이유로 다른 엄마들처럼 하교할 때 나가보지도 못하고 엄마랑 같이 자는 그 쉬운 소원도 들어주지 못하는 나쁜 엄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무슨 복이 이렇게 많은지 딸에게 너무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는 엄마임은 분명하다.


이렇게 딸의 감동 멘트로 행복한 엄마지만 내일이면 딸에게 숙제는 언제 하냐, 정리해라, 양치질해라... 잔소리를 늘어놓는 엄마로 리셋될 것이다.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들 때 나를 꼬옥 안아주는 천사가 있음에 감사하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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