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빵 굽는 타자기 Feb 23. 2021

화쟁이 엄마가 행복한 이유

지난 연말 숨 가쁘게 일을 한 뒤로 연초부터 별다른 일 없이 지내는 요즘, 오히려 바쁠 때보다 집안일과 육아가 더욱 벅차기 시작했다. 넘치게 일을 할 때보다 체력을 더욱 방전되고 가끔은 불면증으로 괴롭기까지 했다. 그래서 9살 꾸마에게 부쩍 한숨을 내쉬기 일쑤였다.


오늘 아이 목욕을 시키고, 머리를 말리려고 했는데 어김없이 꾸물꾸물 대는 아이에게 또다시 화를 냈다.


"엄마, 힘들어! 빨리 해!"


불쑥 화를 내고 나면 늘 후회하는데도 역시 아이에게 소리를 쳤다. 하지만 아이의 반응은 이상하게 담담했다.


"엄마가 화낼 때마다 다른 집 엄마보다 화를 덜 내는 거라고 상상하면 기분이 나쁘지 않아. 그리고 엄마가 날 많이 사랑하니까 화내는 거잖아."


뜨끔했다. 그 마음을 숨기고 싶어 난 괜스레 더 언성을 높였다.


"왜 엄마가 화내는 거라고 생각해? 엄마는 화낸 게 아니라 야단치는 거라고!"


돌이켜 생각해보니 정말 비겁한 변명이었다. 내게 별 일 아닌 일에 화낸 게 맞았음에도 아이에게만큼은 부인하고 싶었던 거였다. 아이 머리를 말리면서 생각에 잠겼다. 내가 요즘 스스로 우울하다고 느낄 만큼 힘든 일이 있었던가? 난데없이 분노하게 되는 이 감정은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이제 엄마가 화를 내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옆에서 잠자코 책을 읽고 있는 아이에게 불현듯 물었다.


"엄마는 어떤 사람인 것 같아?"


"음... 좋은 사람!"


아이의 해맑은 대답에 얼굴이 붉어졌다. 꾸마가 "늘 화내는 엄마"라고 대답할 줄 알았는데 예상 밖으로 아이는 날 좋은 사람이라고 말해주는 것이 아닌가. 난 아이에게만큼은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지만 항상 조바심이 나고 열패감이 컸었다. 다행히 아이는 이런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잘 모르겠지만 아이가 오히려 엄마를 품어주고 있다. 그리고 내가 화를 낼 때마다 아이는 내게 이렇게 말한다.


"엄마가 화를 내더라도 나는 엄마가 좋아."


엄마가 화를 잘 낸다고 아이가 붙여준 내 별명, 화쟁이 엄마인 나는 아이 덕분에 다짐해 본다.


"꾸마야, 미안해! 내일은 화내지 않고 꾸마 더 많이 안아줄게."




"매 순간 오늘이 전부인 듯이 살아야 한다.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노래하고, 더 많이 춤추고, 더 많이 행복해하며 살아야 한다. 당신이 떠난 후 당신의 아이들이 걱정된다면, 지금 이 순간 한 번 더 눈 맞추고, 한 번 더 안아 줘라. 한 번 더 따뜻한 밥을 함께 먹고, 한 번 더 함께 여행을 떠나고, 한 번 더 함께 웃고, 한 번 더 사랑한다고 말하라."

- <이기적 감정 정리법> (이지혜 지음) 중에서

매거진의 이전글 드라마작가 꿈을 포기한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