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언니네 둘째가 대학교 진학을 포기했고, 셋째 역시 공부를 썩 잘하지 못하니 특성화고를 고려 중이라고. 이 얘기를 언니가 첫째에게 했더니 첫째 왈, “엄마는 나한테는 왜 그랬어?” 그랬단다. 현재 4년 장학생으로 대학교에 다니는 첫째는 초4 시절, 채점된 시험지를 엄마한테 보여줬는데, 그렇게 못한 것도 아닌데 엄마가 그럴 거면 공부 다 때려치우라며 호되게 혼냈단다. 언니는 그때 일을 기억조차 못했기에, 동생들 걱정을 하는데 갑자기 엄마한테 서운함을 내비치는 첫째한테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랐단다. 그래도 내가 예전부터 해준 조언이 떠올라 “엄마가 너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었어. 엄마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미안해.”하고 일단락을 지었다네.
“언니가 미안하다는 말에, J는 어떻게 반응했어?”
“비꼬면서 ‘이제 와서?’ 그러고, 별말이 없던데... 괜히 미안하다고 했나?”
“아니야. 잘했어. 별다른 말을 안 해도 J는 엄마가 사과를 해서 오래 쌓여있던 감정이 조금은 풀렸을 거야.”
"정말 그럴까?”
“나도 꾸마 돌잔치에 친정 식구들이 아무도 안 와서 내내 섭섭했는데, 몇 년 뒤에 말했을 때 엄마가 미안하다고 말해줘서 편안해졌어. 이제 더 이상 그 일이 상처가 아니게 되었고...”
언니한테 그리 말했지만, 서운했던 마음과 가뿐해졌던 마음이 뒤범벅되어 잠시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지난 일이 한순간 정리되는 기분이었다. 당시 시댁 식구들은 형제, 자매, 조카들까지 다 왔지만, 친정 식구들은 한 명도 오지 않아, 아이의 첫돌을 축하하며 너무 기쁜 날이 철저하게 혼자라고 느낀 날이었다. 내내 쌓여있던 감정을 명절에 식사할 때, 누군가 건드려서 터트렸던 건데, 사실 엄마에게 사과받을 의도는 전혀 없었다. 나 역시도 숨기고 싶은 내 마음을 드러내서 어찌할 바를 모를 때 친정엄마는 “미안하데이.”라고 말했다. 나도 언니의 첫째처럼 미안하다는 말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엄마의 진심 어린 사과의 한마디 덕분일까. 응어리지고 차가워진 내 마음이 나도 모르게, 조금씩 눈 녹듯이 녹아내렸던 게 아닐까 싶다.
“J도 아마 나처럼 엄마한테 사과의 말을 들으려고 얘기했던 게 아니었을 거야. 엄마가 평소처럼 나무라지 않고 미안하다고 하니까 적잖이 당황했던 거지. 말로 대답하지 않았다고 J 마음 역시 대답하지 않았던 건 아닐 테니까. 언니야, 잘했어.”
언니는 조금 가벼워진 마음으로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난 조금 무거워졌다. 차 안에서 나와 언니의 통화를 뒷자리에서 조용히 엿듣고 있었던 꾸마... 아차차 생각하지 못했다.
“엄마는 내가 지난 상처 얘기하면 지난 일인데 얘기하지 말라고 그러면서...”
중도 제 머리는 못 깎는다더니, 옛말 틀린 거 하나 없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