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저씨의 반격

by 방송과 글 사이

얼마 전 남편에게 '엄마'는 맞지만 '누구 엄마'로 불리고 싶지 않다고 선포했다. 남편이 '담이 엄마'라고 부를 때마다 마치 적립하듯이 천 원씩 받기로 했다. 벌써 5만 5천 원. 남편에게 변화가 있었냐고? 변화는 노노노. 사람 쉽게 변하지 않는단 걸 뼛속까지 느끼는 중이다. 한데 남편은 내가 계속 촉각을 곤두세우고 카운팅 하고 있음을 무척 의식하고 있었다. '다담이...' 외계인어 같은 호칭을 구사하지 않나, 호칭을 아예 생략했다. 이러다가 '거~'나 '여기~'라고 부르는 게 아닐까, 조바심이 났다.


‘뭐, 이왕 이렇게 된 거, 5만 원도 넘었으니 그 돈으로 아웃백이나 갈까?’ 이런 행복한 상상만으로 부시맨 빵의 구수한 향이 내 코끝을 스치는 것 같았던 찰나, 남편의 조력자가 나타났다. 바로 꾸마였다. 친구는 가까이, 적은 더 가까이 두라고 했건만 그러지 못한 내 잘못이다.


“왜 엄마만 아빠한테 돈을 받아? 엄마는 아빠한테 ‘이 아저씨, 이 양반’이라고 하잖아. 아빠도 엄마한테 받아야지!”


꾸마가 너무 야무지게 쏘아붙여서 난 할 말을 잃었다. 그런데 남편은 역시 남의 편이 확실했다.


"우리 딸 잘한다!"


2대 1로 내가 밀리는 상황. 이미 밀리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는데 큰일이다. 그렇지만 벌써 백기를 들고 싶지 않았다. 뭐라도 해야 한다.


“꾸마, 너 아빠한테 사주받았어? 왜 그래? 아빠한테 벌금 받으면 혼자 잘 먹겠단 것도 아니잖아. 다 같이, 기분 좋게 아웃백 가자고 한 거잖아.”


다시 생각해 봐도 구차하다. 아직 남편에게 5만 5천 원을 현금으로 받지도 못했는데 어떡하지? 게다가 방심은 금물인데, 긴장의 끈을 놓쳤다.


"내가 힘들게 카레 했는데 어제 먹다가 남은 탕수육을 더 좋아하네, 이 아저씨가..."

"이 아저씨? 천 원이다!"


아뿔싸. 변화는 어렵지만 학습은 쉬운 건가. 내가 남편처럼 저리도 밉게 얘기했던가. 거울 효과, 제대로다. 한탄이 절로 나오는 순간, 남편은 내게 또 한 방을 날렸다.


“나 덕분에 오늘 글 쓸 소재 얻었지?"


얄미워서 이 얘기를 정말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지금 100일 글쓰기를 하고 있어서, 매일매일이 글감의 제로 상황 아니던가.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지. 던져 주니까 받기는 했다. 그건 그거고, 나도 남편에게 대적할 뭔가를 생각해 봐야지. 이것은 자존심의 문제. 이대로 무너질 순 없다. 절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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