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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민 Oct 13. 2020

인정받지 않아도 괜찮아

장 지오노의 "나무심는 사람"을 읽고


  “오랫동안 기다렸다. 하지만 나쁘지 않다. 이것이 맛집의 묘미 아닌가? 드디어 윤기가 좔좔 흐르는 까르보나라가 나온다. 모든 얼굴 근육을 이완시켜주는 그 크림소스 향기에 매료 된 채 젓가락을 들고 이제 먹으려 하는 순간! 배고픔을 꾹꾹 참아가며 핸드폰을 꺼낸다. 그렇다! 사진을 찍어야 한다.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바로 페이스북에 올린다. 밥을 먹는다. 맛있지만 계속 신경이 쓰인다. 점점 기분이 나빠진다. 밥을 먹는데 몇 차례나 핸드폰의 액정을 바라본다. 진동이 울린다. 드디어 몇몇 페친(페이스북 친구)들이 “좋아요.”를 누른다. 그리고 댓글을 확인한다. ‘맛있겠다!, 어디야?’ 안도의 미소가 얼굴에 퍼진다. 그리고 나는 다시 천천히 카페모카로 유명한 카페를 검색한다.“ 


 가상으로 써본 글이지만, 이러한 일은 오늘날 어디서든 흔하게 보는 일들이다. 이처럼 SNS는 오늘날 현대인을 이렇게 인정중독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지인들과의 소통의 장이 었던 SNS는 어느덧 관심을 받기 위한 글들이 가득해지고, 그러다 보니 허세 가득한 이야기들도 난무하다. 그들에게 가장 취약한 부분은 바로 댓글과 관심이다.


 “악플 보다 무서운 것이 바로 무플”


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처럼 그것들은 우리에게 위협적인 존재이다. 사실 필자도 이러한 부분에 자유롭지 못하다. 페이스 북에 올린 글과 사진들에 아무런 반응이 없을 때 뭔가 서운하다. 오래전부터 나이가 들어갈수록 “인정 받기 원하는 욕구”를 다스리기가 참 어렵다는 것을 점점 더 느끼고 있다. 이럴수록 공허함으로 가득한 스스로의 인격을 돌아보게 된다.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은 이같이 인정이란 욕구를 노래하는 우리 시대에 공동의 선을 위한 즐거운 외로움이라는 신선함을 가져다준다. 굉장히 짧은 이야기 하나가 13개의 언어로 옮겨져 널리 읽히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책의 전체에 흐르는 메시지가 울창한 숲의 신선한 솔 내음처럼 도도하게 서 있기 때문이다. 이 아름다운 이야기는 헐벗고 단조로운 황무지에서, 물도 없고 희망도 없는 그곳에서 한명의 양치기를 만나며 시작한다. 그가 하는 일은 완벽한 도토리를 골라내어 누구의 땅인지도 모르는 그곳에 도토리를 심는 일이었다. 그양치기의 이름은 엘제아르 부피에. 그는 무려 25년동안 그렇게 그일을 반복한다. 이후 마을은 조금씩 되살아난다. 건강한 남자와 여자들 그리고 시골 축제를 즐길줄 아는 소년들을 길에서 만날 수 있게 된다. 그곳은 이후 1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서 살게 되는 살아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져 간다.     



 개인의 이익을 돌보지 않고, 또 보상도 바라지 않은채 그저 공동의 선을 위해 일하는 정신. 좀처럼 우리시대에 찾아보기 어려운 그것을 저자는 그것을 인격이라고 표현한다. 


“한 사람이 참으로 보기 드문 인격을 갖고 있는 가를 알기위해서는 여러 해 동안 그의 행동을 관찰 할 수 있는 행운을 가져야 한다. 그 사람의 행동이 온갖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있고, 그 행동을 이끌어 나가는 생각이 더없이 고결하며,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고, 그런데도 이 세상에 뚜렷한 흔적을 남겼다면 우리는 틀림없이 잊을 수 없는 한 인격을 만났다고 할수 있다.” (10.p) 


인정의 욕구가 어느 시대보다 강렬한 오늘날 우리는 SNS에 떠돌아 다니는 단초들을 가지고 한사람의 일생을 함부로 평가하며, 그로인해 얻는 반사이익까지 기대하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그리고 이럴수록 “나무 심는 사람”이 그리워 진다. 아마 그것은 필자 뿐만 아니라 이 시대가 그리워 하는 존재가 아닐까? 누군가로 부터의 인정을 목말라하는 공허한 인격보다는 뼈아픈 외로움을 즐기면서도 꾸준하게 공동의 선을 추구하는 그런 존재 말이다.                                         





  나는 그가 실의에 빠지거나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의심을 품는 것을 전혀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가 겪은 시련을 잘 아실 것이다. 나는 그가 겪었을 좌절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러나 그와 같은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야 했을 것이고, 그러한 열정이 확실한 승리를 거두기 위해서는 절망과 싸워야 했으리라는 것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49.p)     



 이런 뛰어난 인격을 가진 사람을 더 깊이 이해하려면 우리는 그가 홀로 철저한 고독 속에서 일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는 너무나도 외롭게 살았기 때문에 말년에는 말하는 습관을 잃어버리기 까지 했다. 아니, 어쩌면 말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 아닐까? (4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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