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헤는 강

유월의 수영강은 낮보다 밤이 아름답다.

by 박상민





유월의 수영강은 낮보다 밤이 아름답다.


흐드러지는 풀잎 소리 사이로 아주 조심스레 물결이 일렁인다. 한낮은 너무 뜨거워 다리 밑의 그늘로 겨우 돌아다닐 수 있다. 그래서 가끔은 흐리거나 비 오는 유월의 수영강이 반갑다. 그러나 비가 오든, 흐리든, 맑든 유월의 수영강의 밤은 곱다. 특히 별이 슬쩍 나온 그 시간은 산책을 하다 멈춰 강소리와 물과 곁들인다. 그렇게 조용히 앉아 별을 읽고 있노라면, 수영강도 곁에서 별을 하나 둘 강물에 덮어둔다. 그렇게 별 헤는 강을 가만히 보고 있을 때 나는 살아 있고, 존재함의 기쁨을 눈꺼풀 끝에서부터 느낀다.


오늘도 수영강에 얽힌 별빛의 그리움에 동주의 시를 소리 내어 읊는다.



윤동주 / 별 헤는 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입을 열어 조심스레 읽어 내려가는 시간에 아스라이 멀었던 별이 가까이 다가온다.

스산하던 마음은 별의 침묵을 따라 조용하고 고요해진다.


그리고 강은 내게 말을 건다.


유월의 수영강은 내게 동주의 보폭에 맞추어 걸으라 말한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그것과 함께 한걸음 내디딜 때마다 찾아오는 그리움과 추억

한 참을 걸었는데도, 더 걷고 싶어


결국 나는 조금 더 걷는다.

동주와 별과 함께.



유월의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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