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죽었다.

by 박상민


7년전 오늘.


주일 사역 후 충분히 샤워 한 다음, 잔뜩 와있는 카톡이 있었다. 믿기지 않는 내용의 메시지였다. 얼마뒤 결혼한다고 했던 의영이의 여자 친구에게 의영이가 교통사고가 크게 났다고, 기도해 달라고 연락이 왔다.

너무 놀라 상황을 알려달라고 하니 새벽예배 운행을 하다 빙판길에 미끌어져 차가 전복되어서 뇌가 크게 다쳤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간절히 기도하고, 상황을 계속 알려달라고 전했다. 당시 수련회 준비기간이었기에 수련회 마치고 다음주쯤 바로 올라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잠이 들었다.



의영이 그리고 우리


대학원 입학후. 수업이 마치는 쉬는 시간에 종종 좋은 신학책이 있다고, 좋은 자료가 있다고 서로 나누고 공유해 주던 두 친구가 있다. 바로 세준이와 의영이. 이 녀석들은 내가 아는 한 전 세계에서 가장 진지한 두 명이다. 신학대학원 동기들로써, 항상 수업을 마치면 자유관 옆에 있는 하트 정원에서, 또는 카페에서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 하고 있다. 반가운 마음에 옆에서 들어보면 항상 이야기 주제는 비슷하다.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교회론을 회복해야 한다. 신학이 없는 한국교회..등등” 근데 두 녀석은 또 순수하고 열정이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인지 둘이 대화하고 있노라면 같이 끼고 싶었고 그러면서 우리는 더욱 친해졌다.

신학대학원시절 그날도 우린 신학을 논하고 있었다.


특이한 선택


의영이는 대학교때, 그리고 대학원때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았다. 오히려 혼자 밥을 먹고 성경을 읽고, 그리고 그저 싱겁게 웃으며 인사하곤 했다. 그러나 신학 수업 가운데 빛나는 눈빛은 늘 흔들림이 없었다. 수업후 수업에 관련된 주제를 세준이와 함께 나눌때면 누구보다 진지했고, 열심이 느껴졌다. 이처럼 매사에 진지하고, 자세가 남달랐던 의영이는 늘 특이한 선택을 했다.


당시 사역지를 선택할 때 많은 신학생들 이 원했던 대형 교회, 좋은 대우의 교회, 교단의 이름난 교회, 인격적인 목사님의 배울 것이 많은 교회는 배제했다. 그것은 자신이 아니더라도 갈 사람이 많다는 것이었다. 그의 선택은 언제나 얼마 되지 않은 개척 교회, 교회내 갈등으로 어려운 교회를 지원했고, 합격이 되면 주저없이 자신을 선택해준 교회를 갔다.



의영이는 몸이 약했다. 그런데 그런건 사역지 선택에 고려하는 부분이 아니었다. 작고, 힘들고, 가지않으려는 곳. 그곳이 주님이 가신 작고 협잡은 길이라며 그곳에 가서도 온몸이 부서지라 약한 몸을 생각지 않고 미련하게 사역했다. 나는 의영이가 사역지를 찾을때도 여건이 좋은 사역지를 추천하지만 언제나 처럼 "거저 받았으니 거저 준다." 당시로는 이해되지 않는 말을 하며 미안함이 담긴 작은 미소를 잠깐 지으며 나의 제안에 정중하게 거절했다.



그가 죽다.


의영이는 다음날 죽었다. 믿기지 않는 상황에 나는 모든 일정을 멈추고 장례식장을 향했다. 대전보훈병원. 멀리서 보이는 장례식장. 발이 잘 떨어지지 않고, 믿기지가 않았다. . 故 정의영. 차분하면서도 옅은 미소를 띄고 있는 영정사진. 그 사진 앞에서 어설피 기타치며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함께 부르며 시덥지 않게 했던 대화들이 스쳐 지나간다.



수업 마칠때 종종 노트필기 한 것좀 달라고 하면서 어깨를 툭 치던 그 느낌이 어깨 언저리에 지나간다. 도서관 내 자리에 아메리카노 한잔 올려놓고 목을 주물러주던 거친 손의 촉감이 생각난다.


그런 의영이를 이제 볼수 없다니...


나는 영정사진 앞에서 나도 모르게 주저 앉았다. 태어나 처음. 친구의 죽음 앞에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숨길 수 없는 눈물과 울음을 꾸역꾸역 참았다. 나보다 더 커다란 슬픔을 받아들이고 있는 어머님과 의영이 형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례하지만 말씀을 드리고 사진을 찍었다. 이대로 보낼 수가 없었고, 의영이랑 찍은 사진이 의외로 없었기 때문이다.


좋은 목사


밥을 먹고 가라고 하시는 어머님과 고모님 말씀에 자리에 앉았다. 어머님께서는 마음에 묻은 자식의 슬픔을 애써 숨기며 차분하게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너무 사랑하셔서 먼저 데려가신거 같네요."


그말씀을 듣고 수저를 한동안 들지 못했다. 자그마한 눈물이 상위로 몇방울 떨어졌다. 그리고 내 앞에도 눈물이 떨저졌다. "어서 먹어요. 국 다 식겠다." 말씀하시는 어머님의 얼굴을 천천히 보게 되었다. 어머님의 얼굴엔 의영이의 모습이 가득했다. 결국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도 못하고 그렇게 장례식장을 나오는데 어머님께서 배웅하러 나오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좋은 목사님 되세요. 꼭 좋은 목사님 되세요.”


어머님의 이 말씀에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다시 울음이 터져나와 그저 눈을 가리고 고개만 숙이며 장례식장을 나왔다. 그리고 부산을 내려오며 어머님의 그 말씀이 귓가에 맴돌았다. 그리고 어머님께 마음속으로 대답한다.


"네에. 어머님. 정말 좋은 목사님이 될게요.

항상 예수님의 모습을 닮으려 애썼던 의영이처럼 좋은 목자가 될게요. 그리고 의영아. 이제 7년이 지나 나는 개척을 하게 되었어. 개척을 하고 있는 나에게 넌 어떤 말을 해줄지? 어떤 응원을 하고 있을지 모르겠구나."


의영아!

영혼을 향한 그 열정, 그리고 교회의 회복을 향한 그 마음 잊지 않을게...


나는 오늘 나에게

묻고 또 묻는다



나는 좋은 목사인가?

나는 좋은 목사인가?


보고싶고,

사랑한다.

너의 친구 상민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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