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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민 Aug 17. 2022

느릿느릿 8개월

쉬며 돌아보며

느릿느릿 8개월.


 20대 초반. 친구들과 여행을 하며 목적지로 정한 곳. 부산. 당시 돈은 없지만, 우리에겐 시간과 체력이 가득했다. 그래서 우리는 가장 싸고 가장 느린 기차에 몸을 실었다. 당시 태어나 그토록 오랫동안 기차를 타본 경험은 없었다. 밤새 달리고 또 달리는 기차가 마냥 좋았다. 허리가 아파서 걷기도 하고, 서로 창가에 앉다가 쓰러지듯 잠을 청했다. 그리고 얼굴을 만지는 햇살. 신비로운 햇살과 끊임없는 논과 밭의 풍경. 느리게 가는 그 시간과 속도에 적응한 창 밖에 풍경이 좋았다.


 이따금씩 터널을 지나, 신비한 안개를 머금은 저수지를 보며 천천히 가는 기쁨이 선사하는 선물을 만끽 했다. 뚜벅 뚜벅 걸어가듯 달리는 기차 소리가 해운대 까지 이어질 때 까지 얼마나 좋던지. 쉼없이 달리던 학기를 멈추고, 학비를 벌기 위해 일하던 시간을 멈추고 떠난 여행이 주는 쉼. 그 느림이 가져다 준 고마운 쉼은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개척한뒤 8개월이 지나갔다. 늘벗교회를 이루어가는 이 과정. 하나님께서 세우시고, 만들어가시는 이 교회를 향한 엄청난 사랑의 무게에 하염없이 감사의 노래를 드린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때에 맞게 먹을것과 입을 것을 보내주셨고, 예상치 못한 동역자들이 나눠준 마음들을 통해서 지금까지 사역해 왔다. 우리는 개척하자마자 부산역에 노숙인들을 찾아갔고, 다음달엔 나이를 넘어 소풍을 밀양, 울산, 기장, 일광등 소풍을 떠났다. 또 그 다음달엔 비닐 봉지를 들고 수영강의 쓰레기를 줍줍했다.


또 그 다음달에는 온라인으로 릴레이 성경 통독을 했는데, 마침 내가 코로나에 걸려 말할수 없는 상황속에서도 AI를 통해 즐겁고 신명나게 해나갔다. 그리고 다음달엔 온천천에 벚꽃놀이를 갔다. 얼마나 꽃이 이쁘고 함께 간 지체들과 편하고 재밌던지, 이쁘게 찍은 사진과 흩날리는 벚꽃의 핑크빛이 기분좋았다. 그리고 그 다음달엔 모두다 경주로 엠티를 떠났다. 서로 마니또를 챙겨주고, 온라인 가족들도 함께해서 너무 좋았다.


그리고 매달 우리는 책을 읽어갔다. 아동소설, 청소년 소설, 장편소설, 에세이 등 우리는 함께 읽고 함께 토론하고, 함께 생각해나갔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훈련도 해나갔다. 새신자반을 통해서 서로의 신앙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일들을 한번더 마음속에 새겼다. 그리고 두 번재로 부산역을 찾아 다시금 여름을 잘 나시라고 작은 빛을 나눴다. 어느덧 여름이 되어 우리는 수련회를 준비했고, 함께 기도회를 통해 하나님의 일하심을 잘 볼수 있도록 기도했고, 그해 여름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경험했다.


어느새 8월이 왔고. 나는 느리게 가는 우리교회의 아름다운 이야기속에서 잠시 멈춰 쉼을 찾았다. 쉼을 통해 한번더 우리 교회를 생각해 보게 되고, 주님께서 일하시는 창조력과 역동성과 우정력 가득한 이야기들을 생각하며 마음 깊이 감사했다. 그리고 쉬는 과정속에 사랑하는 동역자들이 보고싶다는 영상과 함께 잘 쉬고 오라는 인사를 보며, 가슴이 얼마나 울컥한지 모른다. 우리 교회의 지체들 안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그 아름다움을 통해 마음에 민트향의 시원함이 잔잔히 흐른다. 느릿 느릿 천천히 여유있게 한걸음씩. 그렇게 8개월이 지나갔고, 그 8개월은 그 옛날 해운대를 향해 나가던 느림보 기차에서 경험한 신비로움과 함께 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은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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