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언어
제노포비아(xenophobia).
최근 몇십 년 동안 세계 정치권에서 종종 등장한 매력적인 단어다. 특히 서유럽에서 일어난 제노포비아를 슬로건으로 한 우파 정당이 정권에 강력한 힘을 받았다. 이 신조어가 몇 년 전부터 한국사회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제노포비아란? 이방인이라는 ‘제노(xeno)’와 ‘싫어한다’라는 의미의 ‘포비아(phobia)’가 합쳐진 단어로, 외국인 혐오증을 뜻하는 말이다. 제노포비아는 대체로 자신과 다름을 이유로 시작된다.
다름은 틀림으로 표출되어 경기침체, 실업률과 같은 사회적인 문제 혹은 범죄 원인을 이방인에게 전가하는 등의 행위로 표출된다. 이 글은 우리나라에 일어나고 있는 난민을 향한 제노포비아에 대해 교회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고찰하는 데 있다.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외국인주민 숫자가 처음으로 200만 명을 돌파했다. 행정안전부가 통계청의 인구주택 총조사 자료를 활용해 발표한 2018년 지방자치단체 외국인주민 현황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외국인주민 수는 205만 4621명이다. 이토록 빠른 변화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의 이주노동자나 이주민에 대한 인식은 그리 곱지 않다. 이 부분에 있어서 지난해에는 제주도에 찾은 예멘 난민들의 입국 요청으로 인해 제노포비아를 증폭되었다.
이 같은 현상으로 2018년 6월 13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제주도 예멘 난민법 폐지가 청원되었고, 한 달만에 난민법 폐지 청원은 70만 명이 넘는 국민이 참여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나라 국민들의 의견은 첨예하게 대립되었고, 이 같은 흐름은 기독 교안에서도 이어져 나갔다. 예멘의 난민들 대부분은 무슬림이었고, 이를 향한 신앙의 수호를 위해 싸우듯 일부 기독교인들 사이에서는 난민법 폐지에 손을 들며 격렬히 저항했다.
그러나 성경은 인종적 편견이라는 주제에 대해 직접적인 권면 자료를 거의 담고 있지 않고 있다. 오히려 예수의 인종적 편견이 가득했던 사마리아 여인과의 만남(요한복음 4장)은 요한복음의 내러티브 가운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이런 상황에 눈여겨볼 것은 교회의 공동체적 정체성의 근본적인 상징과 세상의 프레임으로 바라보는 다른 인종을 향한 시선 교정 방법이다.
리처드 헤이스는 이런 부분에서 우리에게 교회의 근본적 정체성의 회복을 강조한다. 그의 책 "신약의 윤리적 비전"에 따르면 교회는 인종의 장벽을 부수고 복음을 땅끝까지 전달하며,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교제 속에서 하나 되는 공동체로 존재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그는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부분에 있어서 하나님의 백성을 창조하기 위해 성령님께서는 어떤 장벽이든 무너뜨린다고 말한다. 이것은 우리가 교회의 정체성의 근복적 상징을 바로 세워야 함을 다시 일깨우는 내용이다.
또한 교회가 그 구성원들에게 다른 인종을 존중하는 자세를 갖도록 가르쳐야 함을 분명하게 비춘다. 유대교회 그리스도교에 이토록 거대한 벽이 생긴 이유를 그는 ‘무지’에 있다고 말한다.
무지는 서로를 오해시키고 왜곡되게 만들며 악의 찬 희화적 묘사를 만들어 낸다. 이를 위해 우리는 무지에서 피어난 가짜 뉴스로 난민들을 대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이 땅에서 ‘화목케 하는 사역’을 구현해야 할 과제를 갖고 있는 교회는 사명을 확장하고 연장해야 한다.
"교회는 따름의 공동체이다."
교회는 분명한 정체성과 바른 가르침으로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내게 한 것이라(마 25:40)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따르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