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라는 여행
고난.
여름이 할퀴고간 자리에는 수영강의 부러진 농구대가 겨우 버티고 있었다. 아파 보였다. "고난"이란 단어가 계속 맴돌았다.
가까이 두고 싶지 않은 단어. 그러나 우리의 삶과 주변에 언제나 드리우는 단어. 불편하기도 하고 우울한 단어. 쉽게 내 인생에서 사라지지 않는 단어. "고난." 고난은 다양하게 찾아온다.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인해 덜컥 찾아오는 경우도 있고, 아주 오래전부터 끈덕지게 붙어있는 경우도 있다. 준비하지 못한 상황에서 고난과의 만남은 나를 초라하게 만든다. 아무것도 내가 할 수 없게 만들며 무릎 꿇게 만들어 버리는 고난.
특히 나에게 찾아오는 고난만큼 두렵고 버거운 것은 바로 사랑하는 이에게 찾아온 고난이다. 옆에서 그 사람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생각보다 없다는 것이 슬프다. 만약 가능하다면 그 사람의 고난의 아픔을 나누어서 같이 아파하고 싶은데 그럴 수 없다. 아내가 수술 후 오랫동안 누워 있을 때, 두 살 난 딸의 이마가 너덜 거리며 찢겨 있을 때, 절규 어린 표정으로 맥없이 버티는 그 과정에 생각만큼 해줄 수 없다는 사실이 고통스럽다.
살아가며 고난에 휩쓸려 쓰러져 있던 경험들이 있다. 그런 상황에 힘내라, 기도할게, 할 수 있다는 말이 좀처럼 잘 들어오지 않는다. 군에서 경험한 우울과 고통 속에서 그랬다. 간혹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화하면 그들은 바쁘고, 즐겁고, 화려해 보였다. 그러나 수화기를 잡고 있는 나는 시간이 멈춰 있고, 우울하며, 초라했다. 보고 싶고 그리워 전화했는데, 그들은 기도할게, 히내, 파이팅하며 말했지만 답답한 마음만 더 커져서 수화기를 내려놓
았다.
그런 상황에 다른 부대에서 군 생활하던 친구 녀석이 면회를 왔다. 얼굴이 많이 탔다. 피곤해 보였다. 머리도 나랑 같다. 그 친구는 별말하지 않았다. 같이 치킨을 먹었다. 그리고 짝대기 하나 더 많은 그 녀석이 말했다. “힘들지?” 순간 입술을 깨물었다. 눈에서 폭포수처럼 쏟아질 것 같은 눈물을 겨우 참았다. 그리고 한동안 말없이 있다가 우리는 금방 헤어졌다. 가면서 말했다. 그 친구가 말했다.
“금방 지나갈 거야. 쫌만 버텨.”
그리고 나는 버텼다. 우울하고, 눈물이 나고, 짜증이 나는 상황에서 그 말을 기억했다. 혼자라고 생각이 들 때, 그 친구도 함께 버틴다는 생각을 하며 겨우 이겨냈다. 이제 안다. 고난 속에서 그 무엇보다 힘이 되는 것은 커다란 선물이 아니다. 힘내라는 응원도 아니다. 그저 고난 속에서 함께 하는 이가 있다는 걸 기억하는 것. 그리고 그의 위로를 받아들이는 것. 쉬운 것 같지만 당장에 당면한 고난은 함께 하는 이를 막아선다. 그리고 위로를 거부한다. 그러나 함께 함과 위로를 천천히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충분하게 삶에서 베이게 할 때 고난 속에서 버틸 수 있는 것 같다.
버겁지만 고난에 함께 머물러 주고, 힘들지만 위로를 전하는 삶.
그렇게 살아가고 그렇게 살아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