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물빛

나는 소리에 아주 민감하다. 온몸에 장착한 병명들이 있지만, 귀만큼은 지나치게 건강한 편이다. 그래서 집안에 규칙적인 소리를 내는 것들은 가능한 두지 않으려고 한다. 미세한 소리라도 귀에 걸릴라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기 때문이다.


주말에 통영에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통영중앙시장 근처에는 꽤 큰 공영주차장이 두 개 있고, 시장에서 구매를 하거나 음식점을 이용하면, 주차할인권도 지급해 준다. 호텔 체크인은 오후 시간이라 공영주차장을 이용하려고 내비게이션을 찍고 갔지만, 토요일 오후의 주차장은 이미 만차로 도로까지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호텔에 연락해서 주차 가능여부를 확인하고 주차만 해둔 채 점심을 먹으러 나섰다. 세 식구가 가는 터라 자주 이용하던 숙소 대신 3명이 잘 수 있는 침대방을 고르다가 통영여객선터미널 근처의 꽤 괜찮아 보이는 곳을 예약했다. 몇 번 방문한 적이 있는 페친님의 식당에 가서 점심을 맛있게 먹고, 강구안을 따라 걸었다. 커피 생각도 났고 배도 불러서였다. 목표로 갔던 로스터리 카페는 손님으로 가득 차서, 결국 그냥 다시 돌아설 수 밖에 없었다.


룸은 들어서자마다 파노라마 바다뷰가 펼쳐지고 생각보다 넓은 편이며 따뜻하고 쾌적했다. 금요일 밤늦게, 정확히는 토요일이 되어 귀가한 남편 덕분에 통영에 가기 전부터도 이미 잠이 부족한 상태였다. 거기에 더해 점심 식후에 몇 킬로를 걸었더니 졸음이 밀려왔다. 햇살도 좋아서 침대에 누웠을 뿐인데, 아이가 어두워진 후에 깨웠다. 너무 곤히 자서 깨우지 못하고 기다렸단다. 다정도 하지.


저녁은 우리 가족의 단골집에 갔다가, 그곳의 젊은 사장님이 운영하는 바로 직행했다. 몇 년을 다니다 보니, 남편과 사장님은 호형호제한다. 바에는 컬렉션을 다양하게 갖추고 있어서 이것저것 추천해 주는 것을 즐기는 묘미가 있다. 이번에는 바에 앉아서 난감한 것을 요청하는 진상을 부렸다. 메뉴에도 없는 논알콜 칵테일을 주문하며, 단맛은 별로 나지 않으면 좋겠다고 한 것이다. 뭐 어쩌겠어, 금주 상태인걸. 이번에 새로 들어온 바텐더는 잠시 고민을 하더니 오렌지를 착즙하고 패션프루트 주스에 섞었다. 그런데도 크게 달지 않아 레시피를 물어보니 레몬과 시나몬을 넣어 단맛을 눌렀단다. 사장님은 그런 직원을 보며 뿌듯한 얼굴로 보았다. 남편이 좋은 숙소를 찾아서 다행이라며 자랑을 했다. 사장님이 호텔 이름을 듣더니 살짝 난색을 했다. 거기가 음... 새벽에 좀 곤란할 수 있어요. 밤에 배 들어와서 조업을 하거든요. 전에 한 손님이 탁탁탁 소리가 꽤 난다더라고요.


남편이 기분 좋게 위스키 몇 잔을 마셨고, 나도 차가운 칵테일을 비운 터라 쌀쌀한 밤기운을 맞으며 숙소로 돌아갔다. 그리 늦지 않은 시간이지만, 해운대와는 다르게 주말인데도 조용하고 어둡다. 남편 역시 나처럼 잠을 많이 자진 못했던 상황이라, 바로 잠들었다. 반면 나와 아이는 이것저것 하느라 시간이 꽤 흘렀다. 책도 읽었고, 글도 썼고, 이제 자볼까. 기온이 많이 떨어진 날이라 암막커튼을 제대로 치고서야 누웠다. 소음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그건 정말 순간적인 오해였다. 사장님이 이야기해 준 것처럼 곧이어 큰 배가 정박하는 소리가 들렸다. 먼바다에서 조업했던 물고기들을 하역하는 작업이라고 했지. 한 15분간은 엄청 시끄러웠고, 다음 15분 정도는 큰 소리는 좀 줄었지만, 잠이 들기에는 충분치 않았다. 어랏! 이젠 작업이 끝났나 보다. 다시 자볼까? 얼마나 지났을까. 또 다른 배가 들어온다. 이번에도 대략 30분 정도 작업을 한다. 아이도 이불을 얼굴까지 덮어쓰고 누웠다가 벌떡 일어났다. 두시, 세시, 네시. 거의 매 시간 정각마다 차례차례 배가 드나들었다. 다섯 시쯤 되자, 위층에서부터 총총거리는 소리가 나며 얼리버드들이 호텔을 빠져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지. 여긴 여객터미널 근처지. 이웃 섬에 가려는 사람들은 이른 아침부터 서두를테지.


자는 둥 마는 둥, 내 애플워치와 연동된 수면 항목에는 수면시간이 1시간 정도가 기록되었다. 우리가 못 잔 동안 세상모르고 잤던 남편이 퀭한 나를 보더니 체크아웃까지 시간이 있으니 조금이라도 자라고 했다. 그러나 아침 햇살이 이미 커튼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고, 일출 직후의 윤슬이 반짝반짝 예쁜데, 그냥 누워있을 수 만도 없었다. 그 풍경을 남기고 싶어서 일어나 사진을 찍고서야 침대에 널브러졌다. 너무 지친 우리는 아점을 먹고, 활어시장에서 몇 가지를 사고는 예정보다 일찌감치 돌아왔다. 운전을 하던 남편이 좀 자라고 했지만, 역시나 차에서 자는 것도 쉽지 않다.


잠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는 이미 알고 있다. 남편은 수면시간을 의도적으로 늘리고, 수분 섭취를 많이 했더니 한동안 안 빠지던 체중이 줄었다며 자랑스레 말했다. 나도 알아. 나도 세상모르고 푹 자고 싶다고. 누군가를 챙길 필요 없으면 그냥 졸릴 때 자면 되지. 그게 어디 쉽나. 나는 아이가 난 이후로 아이가 잠들기 전에는 제대로 자 본 적이 없다니까. 비단 야행성 인간 이어서만이 아니라, 초민감한 귀를 어떻게 할 수도 없는 거라니깐. 잠을 못 자면 온 정신이 안드로메다로 간 것 같아서 집중력도 떨어지고, 나도 힘들어. 나도 누군가의 방해 없이 푹 잘 수 있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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