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봄은 아이가 흩날리는 벚꽃을 손에 품고 들어온 날부터 시작된다. 식물을 좋아하는 작은 아이는 나뭇가지나 꽃을 꺾는 것을 정말 싫어한다. 하굣길에 벚꽃이 날리다 손안에 내려앉으면 그제야 안심을 하고 가져와 "엄마, 벚꽃이에요. 너무 이쁘죠!" 한다. 어려서부터 몸이 유난히 차서 꽁꽁 싸매고 다니는 나에게는 벚꽃이 사방에 뿌려질 만큼 따뜻해져야만 두터운 외투를 벗을 수 있는 것이다. 아이가 가져온 꽃을 작은 용기에 물을 담아 동동 띄워 두면, 이 작은 생명은 며칠간이나마 아름다움을 나누어준다. 몸도 마음도 따뜻해져도 괜찮다며.
대학생 때 엄마가 종용해서 문화센터에서 꽃꽂이를 배웠다. 여자애가 꽃도 모르고 어떡하냐며 등 떠밀려 갔던 것이다. 강좌명은 유러피언 스타일 꽃꽂이였고, 꽃을 배우는 일은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꽃 이름을 하나하나 익히고, 손질법을 배웠다. 한 줄기씩 묶어 꽃다발을 만들거나 화병에 꽂는 법은 마치 미술 시간에 구도를 공부하고 색채 배열을 학습하던 것과 비슷했다. 당시에는 이름난 선생님을 필두로 이루어진 꽃협회 차원에서의 교육이 주를 이루었고, 유러피안 스타일의 방식은 도입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지금은 국내뿐 아니라 유학파 플로리스트들도 많이 양성되어서 활발히 활동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선생님은 주기적으로 유럽에 다녀오셔서 새로운 것을 배워왔다고 전파해주시곤 했다. 방학 두 달간 배워보고는 선생님이 꽤 마음에 들어서 엄마가 배우시는 게 좋겠다며 꽃수업은 엄마에게 토스했다. 나는 학기 중에도 갈 수 있는 저녁 수업인 칵테일 수업으로 갈아탔다.
덕분에 꽃이름을 제법 알게 되었는데, 당시 남자친구였던 남편이 아는 꽃이라곤 단 세 개였다. 노란 건 개나리, 싫어하는 핑크색이지만 예뻐서 용서가 되는 벚꽃, 그리고 하얀 건 안개꽃. 다른 꽃들은 모두 무슨 무슨 색 꽃으로 퉁치는 사람이었다. 벚꽃만큼은 좋아했으니, 봄이면 해운대 달맞이길을 걸었다. 차는 어림도 없는 학생일 때라 걷고 걷고 또 걷다가 발길 닿는 갤러리에 들어가 구경을 하곤 했다. 지금만큼 카페가 많던 때도 아니어서 그저 꽃을 보다가 그림을 보다 걷는 그 일상이 좋았을 뿐이었다. 신혼 시절 차를 사고서 처음 간 시외가 창원이었다. F3가 열렸던 해, 창원에 지내는 지인들을 만나 함께 종일 길에 서서 경기를 보고, 더불어 벚꽃맞이도 했다. 어른들만의 날인가 했는데, 여섯 살 꼬맹이가 따라 나왔다. 동그랗고 뽀얗고 뽀송한 이 아이는 낯을 많이 가렸다. 아기만 낯을 가리나. 나도 낯을 가리는 걸. 우리는 서로 몇 마디 못하고, 곁에 있기만 했는데, 헤어질 무렵이 되어 인사를 하자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그새 정이 든 걸까. 아이가 예뻐 보이는 게 처음이었다. 언니들이 아이를 가져도 될 때가 된 거라고 말해주었다.
매년 이맘 때면 달맞이길로 드라이브를 간다. 세월이 흘렀어도 이 도로만큼은 변화가 없어서 좋아한다. 물론 몇 년에 걸친 데크 공사가 완료되어 산책하기도 아주 좋아졌다. 왕벚나무 벚꽃 터널이 시작하는 초입에 장산생태터널이 생겼다. 야생동물을 위한 것이리라. 날이 포근한 주말이라 가벼운 차림으로 산책 나온 이들로 붐볐다. 아직은 만개하지 않아 핑크빛 물결이 넘실거린다. 꽃이 피어있는 때는 한정적이다. 벚꽃은 유난히 짧게 느껴진다. 작고 가녀린 꽃잎.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후드득 다 날려버린다. 꽃비가 내리는 그 순간, 우리는 마법에 걸린다. 그 어떤 상황이든 영화 속의 한 장면이 되어 저장된다.
손에 담겼던 봄처럼.